시련을 지나 봄을 기다리는 시간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나게 된다.
빅터 프랭크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과 시련 없이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게 시련이란 무엇이었을까. 과거 고통이나 슬픔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 있었는지 잠시 떠올려본다. 사람마다 시련의 결은 다르지만, 결국 그 감정의 뿌리는 외로움에 닿아 있다.
20대 때 주말 만을 기다리는 타인의 삶을 비관한 적이 있다. 사실 그때 나는 충족한 자아실현을 하며 날짜와 요일 개념 없이 살았기 때문에 휴일이라고 크게 다르게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나는 그때 그 타인의 비관했던 삶을 살고 있다.
관계의 흐름은 천천히 굳어가고, 개방성은 서서히 닫혀간다. 사람과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는 이 감정은 무뎌진 소통 탓인지, 혹은 나 스스로가 벽을 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세상을 이기적으로 살라는 말을 떠올려보지만, 결국 세상도 사람이 뒤엉켜 사는 곳이라 현실에 대입하기 어렵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는 중이다.
이 시기를 터널처럼 생각한다. 어제와 내일이 반복되는 가운데, 변한 건 주변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 모른다.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듯, 나 역시 타인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의 진심에 무뎌져 살아간다.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는 이유는, 어쩌면 자격지심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시기도 지루해질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그냥 나의 일을 묵묵히 해내야 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삶은 누구에게나 복잡하고 버겁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시기로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되새긴다. 이 고요한 시련 속에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자문을 해본다. 나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다만, 불안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작은 불안들이 불티처럼 흩날리다 행복에 내려 앉아 불행으로 번져갈때, 우리는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라 단정짓는다. 하지만 진짜 시련의 가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다. 이 눈보라 같은 시련 속에서도, 나는 묵묵히 한 걸음씩 내 딛는다. 결국 그 끝엔 따뜻한 볕과 잔디밭이 기다리고 있노라 희망하기 때문이다.
만약 시련을 헤쳐나갈 힘이 없다면, 그곳에서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