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의 필요

안식년은 사치가 아니다

by 블루센스


어느 정도 규모가 있거나 복지가 잘 갖춰진 회사들을 보면 ‘안식년’ 제도를 도입한 곳들이 있다. 보통 5년 주기를 기준으로 일정 기간 동안 근로자에게 휴식과 재정비의 시간을 부여한다.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한 이 제도는, 이제 많은 조직에서 점차 시행 중이다.


나 역시 실무자로 15년 이상을 달려왔다. 실무를 배우고, 적용하고, 반복하고, 효율을 높이고, 후배를 이끄는 과정 속에서 어느 순간 ‘한계’라는 단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때는 성장의 고점을 찍었고, 그 고점을 유지하느라 힘을 쏟았지만 이제는 다음 단계를 스스로 설계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조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속한 회사는 안식년 제도가 없다. 구조도 불균형하다. 젊은 인재는 빠르게 나가고, 남은 이들은 점점 고령화된다. 역삼각형 구조는 자연스러운 교체와 재정비를 막고 있다. 매너리즘에 빠진 채 새로움을 꿈꾸지 못하는 조직은, 개인에게도 지침이 된다.


그렇기에 더욱 안식년이 필요하다. 단순히 휴식을 위한 제도가 아니다. “만약 근로가 보장된 안식년이 주어진다면, 언젠가 다가올 퇴직을 미리 경험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나의 다음 챕터를 준비하는 훈련일지도 모른다. 근로 중이던 자리를 잠시 비운다는 것이 조직에는 단기적인 손실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역량 회복과 재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전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안식년을 정의한다면, 조직도 개인도 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안식년 후 퇴사를 선택한다고 해도 그것이 꼭 손실일까? 비워진 자리는 새로운 인재가 채운다. 그 과정에서 세대교체, 역할 재편, 업무 방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이는 조직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순환 구조가 된다. 고인 물이 썩듯, 인사 순환이 없는 조직은 결국 변화에 둔감해진다.


그리고 퇴사자의 행방도 중요하다. 그들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시장과 영역으로 이동하는 ‘전달자’다. 새로운 기업에 들어가 경험을 전파하고, 창업하거나 프리랜서가 되어 또 다른 고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누군가는 교육자나 멘토가 되어 자신의 노하우를 사회로 환원한다.

조직 안에서 축적된 시간은 결국 사회 전체로 흐른다.


이렇게 보면 안식년은 단지 개인을 쉬게 하는 장치가 아니다. 조직의 리듬을 만들어내고, 사회의 경험 밀도를 높이는 순환의 출발점이다. 붙잡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잘 흘려보내기 위한 구조이기도 하다.

조직에서의 이탈이 때로는 더 큰 순환을 낳고, 개인의 퇴장이 사회의 다른 장면을 채우기도 한다.

결국 안식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다음을 준비하는기획된 멈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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