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가깝고 작은 스승
현재 7살과 4살 된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듬직하고, 둘째는 애교가 많아 첫째에게서 느끼지 못한 자식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종종 "큰아들이 아니었다면 둘째 계획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 큰아들이 어디서나 사랑받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큰아들은 성격이 유별나지 않았다. 말을 잘 듣고 속 썩이는 일이 없었으며, 순하고 유치원을 몇 번 옮기면서도 적응을 잘했다. '이런 아이라면 둘째도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둘째를 계획했지만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둘째는 예민하고 자주 울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내는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둘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고, 그러자 둘째는 사람을 보며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큰아들은 이제 7살이 되어 내년에 학교에 간다. 가능한 것들은 스스로 하게 하고 좋은 습관들을 몸에 배게 했다. 완벽한 아이는 아니지만 우리 부부 사이에서 참 잘 자라주었다고 믿고있다.
둘째가 4살이라 우리는 아직 육아기 부부지만, 적어도 보통의 육아기 부부들보다는 자율성이 있는 것 같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 큰아들 덕분이다. 보통의 부부들처럼 육아기를 육아만으로 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부부만의 시간도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고, 키우기 힘든 성격이 아니라 육아에 대한 거부감이나 어려움이 일반적인 부부들보다 훨씬 적다고 생각해왔다. 큰아들은 체력 소모가 많은지 어릴 때부터 잠자리에 들면 금세 잠들었다. 일명 '육퇴'가 빨라서 우리에게 자유시간이 그만큼 많이 빨리 보장되었다. 덕분에 육퇴 후에는 부부들만의 시간과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작은 여유들이 모여 육아의 스트레스를 많이 덜어주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는 육아를 해본 사람만이 안다.
육아를 하면서 세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고 들었다. 첫째는 수면욕, 둘째는 식욕, 셋째는 소통이다. 잘 못 자고, 잘 못 먹고, 옹알이만 하는 아이와 하루 종일 있으면 제정신으로 살기 어렵다. 언제 일어날지, 언제 쉬어야 할지, 언제 먹어야 할지 항상 아이 눈치를 보며 살게 된다. 앉지도 못하고 후다닥 먹는 밥은 식사라기보다 사료에 가깝다. 우리 부부도 이런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고점을 지나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내 성격이 취향이 강하지 않고 무던해서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산후우울증 없이 그 시기를 잘 보냈다. 그 이유는 분명히 아이 때문이었다. 큰아들이 잘 먹어주고, 잘 자주고, 순해서 옹알이를 해도 반갑게 다가왔다. 힘든데 행복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힘들지 않으면 행복하기는 조금 더 쉽다. 이 간단한 진리를 큰아들이 가르쳐주었다. 처가집이 근처라서 대략 7:3 정도로 육아를 도와주시고 부부의 합도 잘 맞았으며, 무엇보다 아이가 순해서 내 육아 기억은 만족 이상으로 남아있다.
최근 키즈카페에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해보았다. 아이들을 맡기고 점심 겸 차 한 잔을 마신 후 다시 찾으러 갔는데, 키즈카페에서 부모의 부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형이 있으니 두 형제 모두 책임감과 안정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큰아들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한 지원군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전부 기피하는 시대다. 그 모든 전제가 두려움이다. 우리도 겪기 전엔 '과연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항상 앞섰다. 그런데 그 물음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 시절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지금 그 물음이 다시 생각났다는 것은 한 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증명이다. 앞으로 두 아이는 부모 손을 점점 덜 탈 것이고, 그만큼 우리 부부의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나는 두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부부의 은퇴를 병행해서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은 키우면 키울수록 더 신경 쓰이고 손이 많이 간다고 하지만, 우리는 철저히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과보호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고 싶다.
큰아들을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깨달음이 있다. 순한 아이 하나가 온 가족에게 주는 평안함과 여유로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덕분에 둘째도 용기 내어 낳을 수 있었고, 육아의 즐거움도 발견할 수 있었다. 부모의 최종 목적은 아이의 독립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모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큰아들이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