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걸 하기 전에, 좋지 않은 걸 멈춰야 한다
나는 술을 꽤 좋아한다. 이 '좋아한다'는 개념이 공포로 바뀐 순간도 술 때문이었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제동이 걸린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3년째 음주일지를 쓰고 있다. 매일 아침 전날 마신 술을 기록하며 반성하지만 기적적인 변화는 없다. 한 달에 70%가 넘게 술을 마신 기록도 있다. 좋아서 한잔, 기뻐서 한잔, 슬퍼서 한잔, 심심해서 한잔… 의지를 가지고 참는 날이면 고작 5% 정도 줄어들 뿐이다.
40이 넘어가면서 건강 걱정이 시작됐다. 좋은 것을 하기보다 좋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 없는 기록만 채워가던 중,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집착'이다. 집착은 없앨 수 없고, 강한 강박관념은 집착을 더 강화할 뿐이다. 잊으려고, 끊으려고하는 강한 강박은 역으로 강한 집착만을 남긴다.
내가 담배를 어렵지 않게 끊은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신이 주신 선물 '망각' 하지만 강박과 집착은 망각을 방해한다. 나는 망각으로 담배를 잊었다. 해로움이 주는 즐거운 점을 말이다. 지금의 와이프와 연애하면서 어렵지 않게 끊었고, 10년 넘게 금연 중이다.
이 원리로 술도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가족과 건강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들은 매번 소원을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라고 빈다. 나 역시 가족의 건강을 기원한다. 과거의 모든 기억도 건강과 함께 한 것이고, 앞으로의 좋은 일도 건강이 기본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모두가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가운데, 부모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다. 내겐 술이 그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망치는 부모를 보는 자녀의 안타까움과, 자신의 건강을 망치는 자녀를 보는 부모의 안타까움은 똑같은 아픔일 것이다.
식탁에 술병과 잔이 자주 올라온다. 아이들은 이제 국과 반찬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 부모의 음주에 익숙해진다. 이런 상황들이 애석하게 흘러가는게 이제서야 미안하고,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70이 넘으신 아버지는 아직도 술을 좋아하지만 정량을 지키신다. 절대 과음하지 않고, 무조건 건강을 먼저 챙기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내 잠재의식 중에 '나는 아직 젊어'라는 생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생각 때문에 건강에 대한 자만이 생겼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간수치 주의 소견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의 술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이렇게 가다가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아버지와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올라온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책임감도 커져간다. 좋은 걸 해주는 부모보다 나쁜 걸 하지 않는 부모 쪽으로 내 마음이 기운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부모를 선택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그 선택권 없이 주어진 부모라면 건강하고 좋은 부모가 되어주는 게 맞다.
최근 며칠 사이에 술에 대한 의식이 조금 바뀌었다. 우선은 내 건강이고, 가족이고, 삶이다. 이것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필요하다. 건강하려면 좋은 것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지 않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집착을 버리고 망각의 힘을 빌려, 담배를 끊었듯 술도 잊어가려 한다. 그것이 주는 즐거움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올 미래를 생각하며 조금씩 거리를 두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