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에 나타난 아버지

내 아버지가 오지 못한 입학식

by 블루센스

“라떼는 말이야, 자식 졸업식 한 번 못 가봤어. 회사가 먼저였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묘했다. 그 시대엔 당연했을지 모른다.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던 시절. 하지만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 자식은 아버지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버지는 또 얼마나 가고 싶었을까.


최근 유치원 졸업식에 다녀왔다. 하루 전 연차를 냈다. 아이가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리에 오길 잘했다.’


다음 주엔 입학식이 있다. 오전 11시. 이번엔 오전 반차를 낼 생각이다. 솔직히 하루를 통째로 쓰고 싶다. 그날 하루를 온전히 아이에게 주고 싶다. 하지만 팀 상황을 생각하면 그건 또 다른 부담이 된다.

내가 속한 팀엔 아이가 있는 사람이 나 혼자다. 대부분 미혼이고, 자녀가 없다. 아이가 아파 조퇴를 하거나 연차를 쓰는 일에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직접 불만을 말하진 않지만, 나의 부재가 누군가의 업무로 이어지면 그 감정은 언젠가 쌓일 수 있다.


세대는 달라졌다. 결혼도, 장례도, 경조사 문화도 변하고 있다. 보여주기식이거나 비합리적인 관행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 변화를 응원하는 어른도 있고,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다.

회사와 가정 사이의 저울질은 여전히 어렵다. 과거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나는 ‘회사에 덜 헌신하는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질문이 나를 붙잡는다.


‘훗날 이 순간을 떠올릴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생계를 위해 가족을 미루던 시대를 지나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긴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 GDP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그 영광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가장들도 많다.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삼켜야 했던 감정들이 뒤늦게 터져 나오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목격해왔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르게 해보려 한다. 가정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는 아이러니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이 선택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다만 지금의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내린 결론이다.

연차 하루, 반차 몇 시간. 회사의 시간으로 보면 작은 공백이다. 그러나 아이의 기억 속에서는 오래 남을 장면일지도 모른다.


나는 입학식에 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가 자라 이 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는 기억할 것이다.

그날, 나는 회사가 아니라 가족을 선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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