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낮선이에게 받았던 존중받는 느낌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놀랄 때가 있다. 특히 대화 중에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나이에 비해 조금 어려운 단어를 꺼낼 때, 혹은 아이가 어떤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가 느껴질 때.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아이들 선글라스를 맞추러 안경점에 갔다. 큰아이 것은 벌써 세 번째 구매다. 두 번이나 잃어버렸다. 이번엔 둘째도 함께였다.
과하지 않은 모양과 색을 추려 이것저것 써보고, 아이 의견도 물으면서 골랐다. 큰아이는 무광 브라운 안경테를 골랐다. 안경테 교정 작업이 시작되자 직원이 큰아이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사이 둘째 안경을 골랐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둘째 얼굴에 여러 안경을 씌워보는 재미가 생각보다 컸다.
안경을 다 맞추고 나서 4시쯤, 집 앞 산책로로 벚꽃을 보러 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강한 직사광선 아래에서 선글라스를 쓰자, 큰아이는 안경이 무엇을 해주는지 몸으로 느꼈는지 평소와 달리 불평 없이 쓰고 다녔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먹고, 집에서 남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잘 준비를 하면서 큰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어땠어?" 물어보니, 아이가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어."
'존중'이라는 단어가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다. 언제 그런 느낌이 들었냐고 물었더니, 안경점에서 직원이 안경테를 교정해 줄 때라고 했다.
아이에게 존댓말로 묻고 답하며 친절하게 맞춰줬던 그 시간. 나는 둘째 안경을 고르느라 그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는데, 아이는 그 짧은 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것이 아니야." 그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도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엄마도, 아빠도, 가족도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네가 있으니까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가족도 있는 거야.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대할 수 있다고.
지금은 육아에서 가장 힘든 고비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힘든 순간이 있다. 서로 원하는 게 다를 때, 그 간극이 잘 좁혀지지 않을 때. 그럴 때 나도 내가 기억 못 하는 고성이나 과격한 행동이 튀어나와 아이들 기억에 새겨지는 일이 생긴다.
오늘 아이가 한 말을 다시 떠올리면, 내 언행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나 스스로도 고쳤으면 하는 성격이나 습관이 있다. 조심한다고 해도, 정신을 놓는 순간 몸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서로를 자주 격려한다.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고 잘 자라고 있다고. 그 말이 위로도 되고 힘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보며 자란다. 오늘 아이가 먼저 알고 있었다. 존중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그리고 낯선 어른에게서도 그걸 느낄 줄 안다는 것.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어른으로서 어떤 하루를 보여주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