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신데렐라’,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외
2025년 새해 첫날,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오전 10시 15분 ‘신데렐라 제작 과정 투어’로 하루를 열었다. 매년 500회 이상의 공연과 100여 개의 이벤트가 열리는, 런던에서 가장 바쁜 극장다운 첫날이었다.
영국은 크리스마스를 큰 명절로 여겨 성탄 전후로 2주 가량의 휴가를 보낸다. 이에 따라 로열 오페라와 로열 발레는 2024년 12월 17일부터 2025년 1월 22일까지를 페스티벌 기간으로 정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페스티벌의 프로그램은 발레 ‘신데렐라’,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과 ‘라 보엠’, 댄스 시어터 ‘루이네이션 Ruination’을 비롯해 백스테이지 투어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이 중 ‘신데렐라’(2024.12.3~2025.1.16)와 ‘헨젤과 그레텔’(2024.12.22~2025.1.9), ‘라 보엠’(2024.12.13~2025.1.17)은 모두 메인 극장에서 공연됐다.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무대 뒤와 옆에 주무대의 크기와 비슷한 전환 공간이 있고, 세트가 세워진 무대 팔레트를 들어 옮길 수 있는 기계로 공연의 전환이 가능해 동시에 네 개 작품을 올릴 수 있다.
가장 먼저 매진된 작품은 발레 ‘신데렐라’로, 친숙한 이야기로 언어의 장벽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작품이다. 로열 발레와 캐나다 국립 발레가 공동 제작한 ‘신데렐라’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 Sergey Prokofiev의 음악에 프레더릭 애슈턴 Frederick Ashton(1904~1988)이 안무 한 1948년 프로덕션을 발전시켰다. 프레더릭 애슈턴은 능청스럽고 코믹한 동작과 고전적인 동작을 조화롭게 안무해 허영심이 많고, 지위에 집착하는 이복자매가 분위기를 주도하도록 만들었다.
이복자매 역할은 두 남성 무용수가 맡아 더욱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표현됐다. 정원에서 펼쳐지는 무도회 장면은 우아하고 화려했다. 신데렐라가 마차를 타고 등장해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동화 속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 환상적이었다. 놀라웠던 장면은 자정이 되자 화려했던 신데렐라의 드레스가 순식간에 누더기로 변하는 순간이었는데, 영상 디자이너와 일루셔니스트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로열 오페라와 로열 발레는 누구나 예술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격대의 좌석을 제공한다. 무대 일부가 보이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관람하는 8파운드(한화 약 1만 4천 원)부터 175파운드(한화 약 31만 3천 원)까지 마련되어 있다. 관객은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에게 화답하듯 뛰어난 매너로 공연을 즐겼다. 5개 층으로 이루어진 극장의 객석 2천 256석이 빈틈없이 가득 찬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신데렐라 어드벤처 어린이 투어’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부대 행사였다. 긴 재킷을 입은 안내자의 인도로, 참가자들은 출입이 제한된 공간에 들어가 숨겨진 발레 슈즈나 요정 대모의 마법 지팡이를 찾고, 간단한 게임에 참여했다. 투어에서는 아홉 명의 신데렐라가 있다는 점을 비롯해, 각 무용수의 피부색에 맞춘 의상이 제작되었다는 점, 그들의 키에 맞춰진 빗자루가 세 개씩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반짝이는 요소로 장식된 발레 슈즈가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로 설정되었는데, 단연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12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신데렐라 제작 과정 투어’ 등 공연에 맞춘 특별 투어 외에도 건물과 공간, 보유하고 있는 의상과 소품, 인적 자원 등을 활용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의상 작업실을 들여다보고, 자신만의 디자인을 스케치할 수 있는 ‘의상 디자인 투어’,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명곡을 노래할 수 있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노래하기’, 웅장한 홀에서 로열 오페라하우스 댄스 밴드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차와 비스킷을 즐길 수 있는 ‘티 댄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극장 건축 양식과 변화를 소개하는 ‘건축 투어’도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관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모두에게 열려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임을 느끼게 한다.
가족 단위 관객을 위해 마련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은 앤서니 맥도널드 Antony McDonald(1950~)가 연출과 디자인을 맡아 2018년에 초연한 작품을 영어 노래와 자막으로 재공연 했다. 마녀의 진저브레드 집은 거대한 칼에 찔린 모습으로 묘사되어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숲에서 잠든 헨젤과 그레텔 주위로는 동화 속 캐릭터들이 노래와 발레로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그림 형제의 원작에서 아이를 버리는 부모는 절망적인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숲에 보낼 수밖에 없는 부부로 재해석되었다. 이러한 설정은 이야기에 현실적이고 감정적인 깊이를 더했다.
고군분투하는 젊은 보헤미안의 삶을 그린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다. 리처드 존스 Richard Jones(1953~) 연출의 2017년 무대를 발전시킨 이번 프로덕션은 이탈리아어로 부르고 영어 자막을 제공했다. 2023년 로열 오페라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임명된 스페란자 스카푸치 Speranza Scappucci(1973~)는 푸치니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번 프로덕션에서 섬세한 감정적 뉘앙스를 끌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메인 극장에서 펼쳐진 세 작품 외에도 “‘호두까기 인형’ 없는 크리스마스는 상상할 수 없다”는 관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2023년 프로덕션을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로열 오페라하우스에는 로열 발레의 ‘오네긴’, 로열 오페라의 ‘아이다’ ‘투란도트’ ‘일 트로바토레’ 등 굵직한 작품들이 예정돼 있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아치형 크리스털 천장이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코번트 가든이 내려다보이는 바도 있어 공간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사진 로열 오페라 로열 발레 Royal Ballet and Opera 제공
월간 객석 2025년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