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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엔드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뮤지컬 ‘올리버!’

by 정재은

1985년 시작해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오랫동안 상연 중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공연되는 손드하임 극장 바로 옆에서 뮤지컬계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으로 예상되는 ‘올리버!’가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영국 뮤지컬의 위대한 유산

‘레 미제라블’이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면, ‘올리버!’는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원작으로 삼은 철저히 영국적인 뮤지컬이다. 작품의 각색·음악·작사를 맡아 뮤지컬로 제작한 라이오넬 바트(1930~1999)는 미국 뮤지컬로 채워져 있던 웨스트엔드에 영국 뮤지컬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상징적인 뮤지컬은 1960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 후, 여러 차례 재공연됐다. 라이오넬 바트는 차기작에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이후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캐머런 매킨토시(1946~)에게 ‘올리버!’의 저작권을 넘겼다.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프로듀서이자 웨스트엔드에서 8개의 극장을 운영하는 매킨토시는 1994년 새로운 ‘올리버!’를 무대에 올렸다. 그는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매튜 본(1960~)과 손잡고, 역동적인 장면 전환과 짜임새 있는 연출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원작을 단순화해 이야기의 흐름이 직관적으로 전달되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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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해 전하는 메시지

보육원에서 자란 올리버는 “더 주세요!”라는 말로 벌을 받은 후, 장의사에게 팔려 간다. 그곳에서 도망쳐 헤매던 올리버는 거리의 소년 도저를 만나 페이긴의 소굴로 들어가고, 소매치기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다. 올리버는 부유한 신사 브라운로우의 주머니를 털려던 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히지만, 브라운로우의 연민으로 그의 집에서 보호받는다. 편안한 생활도 잠시, 갱단의 두목 빌은 올리버가 자신들의 존재를 발설할까 두려워 그를 다시 납치해 소굴로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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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없이 배고픔에 허덕이는 잔혹한 운명 속에서도 올리버의 순수함은 빛을 발한다. 그가 부르는 ‘Where Is Love?’는 맑은 목소리로 울려 퍼지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소매치기단을 이끄는 페이긴 역의 사이먼 리프킨(1986~)은 교활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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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2025년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뮤지컬 남우주연상, 뮤지컬 재연, 안무, 조명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특히 조명 디자인은 1830년대 런던의 음울한 분위기를 극적으로 살려내며 작품의 감성을 배가시켰다.


KakaoTalk_20250403_193514514.jpg 뮤지컬 올리버!가 공연중인 기엘구드 씨어터


캐머런 매킨토시는 ‘레 미제라블’과 ‘올리버 트위스트’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빅토르 위고와 찰스 디킨스가 사회적 통찰을 담은 작가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약자를 조명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품들의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공감을 끌어낸다. 그 힘을 바탕으로 뮤지컬 ‘올리버!’는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의 역사를 만들어갈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델폰트 매킨토시 극장


* 월간 객석 2025년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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