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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 극장의 문을 닫는 마지막 작품

연극 ‘유리동물원’

by 정재은

야드 극장은 ‘유리동물원’을 마지막으로 지금의 공간과 작별하고, 2026년 현재 객석의 두 배가 넘는 220석 규모의 공연장을 런던 동부에 개관할 예정이다. 그동안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여 온 야드 극장이 마지막 작품으로 ‘유리동물원’을 택한 것은 예상 밖의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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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의 마지막 기억을 담으며

런던 동부의 야드 극장은 2011년 설립 당시 3개월 동안 운영할 목적으로 창고를 개조해 만든 팝업 극장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재활용 목재를 활용해 단을 쌓고, 야외경기장에서 볼 법한 플라스틱 의자 98개로 객석을 만들었다. 철거 예정이었던 극장은 14년 동안 운영되며 지역 문화의 거점이 되었다. 야드 극장은 ‘극장을 새롭게 구상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며, 세상을 다시 상상한다’라는 사명으로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었다. ‘극장처럼, 클럽처럼’이라는 신조 아래 극장과 바 공간을 활용해 다

양한 예술가의 모험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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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드 극장 외부, 로비 겸 바, 극장 내부 | 이미지 출처_야드 극장 홈페이지


야드 극장의 창립자이자 예술감독인 제이 밀러는 “‘유리동물원’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는지 탐구하는 연극으로, 극장을 기억하기에 완벽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유리동물원’은 1944년 초연된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의 자전적 희곡으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로 이어지는 주제와 스타일을 형성한 작품이다. 과거로부터 떠나고 싶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기억 속에서 펼쳐지는 연극으로, 어머니 어맨다(샤론 스몰 분)와 내성적인 여동생 로라(에바 모건 분)를 부양하며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하는 톰(톰 베리 분)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로라 역 에바 모건 ©Yard Theatre / Manuel Harlan


무대와 연출 역시 기억의 불완전함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무대는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 사이를 떠도는 공간처럼 느껴지도록 구성됐다. 흐릿한 기억 속 장면이 불완전하게 떠오르는 듯, 실을 사용한 막을 활용해 관객들이 막 너머로 장면을 엿보게 했다. 고전을 선택했지만, 전환 없이 나열된 무대와 과감하고 장식적인 의상으로 야드 극장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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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짐, 로라와 어맨다©Yard Theatre / Manuel Harlan


움직임 감독을 맡은 안무가 허성임은 대사가 중심이 되는 작품에 섬세한 움직임으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극 중 내성적인 성격의 로라가 한때 짝사랑했던 짐(제이드 세이에그 분)을 만나 둘이 춤을 추는 장면은 그녀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장면으로 빛났다.


유리동물원_로라와 짐.jpg 로라와 짐


야드 극장은 이제 기억 속의 공간이 된다. 공간은 사라지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진 공연과 경험들은 관객과 예술가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마치, 톰이 가족을 떠났지만,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글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야드 극장 / Manuel Harlan


* 월간 객석 2025년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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