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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Dec 08. 2023

런던에서 굴 까먹기

굴 껍데기 까본 적 있나요

런던 윔블던 언덕에는 일요일마다 장이 선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바비큐, 햄버거 푸드트럭과 싱싱한 과일 채소 매대, 패스츄리나 마카롱을 파는 천막들이 가득 찬다. 커다란 공원 옆이라 산책하러 나온 가족들과 개와 강아지들로 활기가 넘친다. 해산물을 파는 점포는 천막 두 개를 이어 꽤 큰 규모로 물건을 펼쳐 놓는다. 대형 마트에 가면 해산물 코너가 따로 있지만 우리가 자주 다니는 마트에는 없어서 해산물은 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장터에서 만난 해산물 가게가 유난히 반가웠다.


한 번은 영국 마트에서 손질된 고등어를 샀다. 아이들이 간고등어를 좋아해 반갑게 mackeral을 샀는데 포장을 뜯을 때부터 비린내가 너무 심했다. 팬에 노릇하게 구워주었는데 아이들은 지금까지 먹던 맛이 아니라며 다 못 먹고 남겼다. 다행히 지금은 한국마트에서 냉동 간고등어를 발견해 잘 먹고 있다. 한국마트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된다. 그런데 들고 올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무엇을 장바구니에 담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갈 때마다 커다란 배낭에 무거운 것들부터 차곡차곡 넣어 짊어지고 양손에 바리바리 장을 봐온다. 두부며 떡볶이 떡 어묵 냉동만두 등이 단골 먹거리이다.


생연어나 훈제연어, 새우는 영국 마트에서 구하기 쉬웠지만 비싸게 느껴졌고 간혹 대구나 다른 저민 생선이 있었지만 손이 안 갔다.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버터와 같이 들어있는 것도 있었고 반 조리된 것도 있었다. 생선 겉면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피시 핑거나 피시 케이크도 종종 사 먹긴 했다.

규모가 큰 대형 마트 waitrose 해산물 코너


해산물에 대한 간절함이 커진 것은 회를 못 먹기 때문이다. 서울에선 마음만 먹으면 쉽게 회를 먹을 수 있었다. 횟집도 많았고 배달시켜 먹을 수도 있었다. 수산시장도 가까워 차로 쓱 가서 단골집에서 회를 떠 오거나 재료를 손질해 왔다. 커다란 솥에 김을 올려 각종 갑각류를 쪄주는 가게 앞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리비는 저기 어느 바닷가에 계신 분께 전화로 주문하고 송금하면 잘 포장되어 택배로 도착하곤 했다. 집에서 가장 큰 냄비를 꺼내고 접이식 스테인리스 찜기 위에 가리비를 쪄냈다. 잘 익은 동그란 가리비를 껍질에서 똑똑 떼내어 쫄깃한 맛을 즐겼다.


크리스마스 축제가 있어 마을 장터에 간다고 하니 남편이 조개가 있으면 좀 사 오라고 했다. 봉골레를 못 먹은 지 한참 되었다면서. 뭐가 먹고 싶다고 말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신기해하며 그러겠다고 했다.


생선 매대에는 커다란 분홍빛 연어 토막과 말린 생선들이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가운데에 그물망에 담긴 조개 한 무더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굴이 있었다! 조개는 딱 하나 남아있어 얼른 그것부터 집어 들었다. 그리고 굴을 가리키며 얼마인지 물었다. 한 개에 1.2파운드(거의 2천 원)인데 열두 개를 사면 개당 1파운드에 주겠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할인까지 해준다기에 열두 개를 달라고 했다. 점원은 얼음 속에 묻혀 있는 굴 열두 개를 세어 파란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한국 같았으면 남은 거 마저 다 주시고 얼마에 해주세요 하고 흥정했을 텐데 영어로 떨이가 뭔지 떠오르지 않아서 딱 열두 개만 샀다. 흥정은 못했어도, 비닐봉지가 꽤나 무거웠어도 그걸 들고 신나게 집에 왔다.


여섯 개는 일하고 있는 남편 내일 먹으라고 남겨두고 여섯 개를 꺼내서 찬 물에 씻었다. 울퉁불퉁한 겹겹의 껍질이 단단하게 굴을 지키고 있었다. 짧은 칼을 꺼내 껍질 사이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런데 겹겹으로 이루어진 껍데기에서 어디가 ‘사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그 사이로 칼날을 넣어 어떻게 해볼 텐데 다부지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굴을 어떻게 까는지 검색했다. 준비물은 굴을 잡을 행주 혹은 장갑, 그리고 끝이 뾰족한 칼 같은 도구. 영상 두어 개를 보고 우선 행주로 굴을 감싸 쥔 뒤 한쪽 중앙을 칼끝으로 공략했다. 칼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이리저리 찔러봤는데 굴 껍데기가 부서져 떨어졌다. 몇 차례 반복 끝에 드디어 그 단단한 껍데기를 열 수가 있었다.


처음 시도한 것은 칼에 껍데기가 부서져 껍질 가루가 내 소중한 굴 위로 뿌려졌다. 그러나 어렵게 깐 굴을 포기할 수 없지. 물에 헹구어 드디어 생굴을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바다의 맛이 퍼졌다. 와 이맛이었지. 다음 굴도 열심히 까서 아이들에게 맛 보여주었다. 껍질을 까기가 너무 힘들어서 나머지 네 개, 겨우 네 개를 찜기에 쪘다. 생굴보다는 껍질 까기가 수월했지만 그래도 힘들었다.


찐 굴을 하나 까놓고 냉장고에서 초장을 꺼냈다. 런던에 여행 왔던 지인이 남기고 간 것이다. 어렵게 깐 굴을 초장에 푹 찍어 먹었다. 새콤 달콤하면서 매콤한 맛이 입맛을 확 돋웠다. 그러나 남은 굴은 세 개뿐이고 그마저도 까는데 한참이 걸렸다.


굴을 직접 까보기 전에는 몰랐다. 초장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가 올라가 있던 석화 한 접시도 누군가가 까준 거였음을. 호로록 먹었던 생굴도, 굴짬뽕에서 찾아먹던 그 굴도 누군가가 단단한 껍질을 힘들여 열어줬던 것이다.


감질나게 굴을 먹으며 대학로 성대 앞에 한 가게 생각이 났다. 추운 겨울 김 서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테이블마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굴찜집. 굴찜을 시키면 생굴을 푸짐하게 서비스로 내어주던. 그 집이 몹시도 그리웠다.


외국에 살면 요리에 관심 없던 사람도 요리를 잘하게 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만들어서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껍질 까기가 힘들어서 굴은 내년에나 다시 먹어야지 했는데 글로 적다 보니 다시 먹고 싶어 졌다. 껍질 까는 도구를 마련해서 기술을 연마해야겠다.

어렵게 맛 본 생굴과 찐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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