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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Mar 25. 2019

와 닿는 말

-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고등학교 3학년 때라고 생각된다. 그 당시 매일같이 어울렸던 한 친구가 있었다. 여느 때처럼 수업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학교 근처 벤치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흔히 말하는 모태솔로였다. 키도 크고 잘생긴 그 친구가 연애를 못(안?)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성적인 성향과 소심한 성격이 가장 큰 이유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즈음 그의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당연히 그 날 역시 우리의 주된 대화 주제는 그녀였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긴 생머리를 자랑하는, 우리 학교에서 꽤나 돋보이는 친구였다. 당시 그와 그녀의 관계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의 친구인지 썸인지 단정하기 힘든 모호한 사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을 그녀가 알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고, 가장 중요한 그녀의 마음에 대해 그는 감히 어떠한 추측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관계는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하는 것으로 발전된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적절한 순간이 지금임을 직감했다. 더 이상 끌었다가는 관계가 점점 퇴보하기 시작할 것만 같았다. 따라서 그녀가 그에게 선을 명확히 긋기 전에 나는 친구로서 그에게 확실히 마음을 전하도록 해야 했다. 


 30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정력적인 설득이 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행동을 망설였다. 공갈과 협박, 회유와 설득에도 그는 행동하지 않았고, 점점 답답해진 나는 생각나는 모든 말을 입 밖에 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아지경으로 그에게 말을 내뱉고 있는데 그가 말했다. 


“그건 도저히 못 참겠다. 알겠어. 얘기할게.”


 갑작스러운 그의 결심에 나는 방금 내가 내뱉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너 OOO도 자기 좋다는 건 표현하고 여자 친구 잘만 만나는데 너는 걔보다 못한 거냐?’


 그가 왜 이 말을 듣고 행동을 결심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내뱉었던 모든 말 중에 이 말만이 그로 하여금 행동을 하게 했단 사실이 중요하다.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는 닿는 말이 있다. 말이 닿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람마다 와 닿는 말은 다 다르지만 분명 우리 모두에겐 행동을 이끌어내는 말들이 존재한다.


-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는 처음으로 여자 친구를 사귀었고 나는 학교가 끝난 뒤 쓸쓸히 혼자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순간을 후회하지 않았고,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그녀와 데이트를 한 뒤 나를 만난 그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야 너는 매일 이랬어? 여자 친구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이렇게 행복하고 발걸음이 날아가듯 가벼웠어? 진짜 나 너무 좋은데?”


 그렇게 행복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자, 벤치에서 내가 그 친구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나의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꽤나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느껴졌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약간의 후회가 있었다.)


 -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란 참 힘들다.


 나도 그렇고 내 주위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행동은 변화를 이끌어내고 변화는 꽤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문제는 이걸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행동으로 이어지기가 힘들다는 것인데, 내 친구가 그러했던 것처럼 옆에서 누군가 와 닿는 말을 해준다면 행동할 수 있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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