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처음 책장을 넘길 때만 해도 온갖 묘사들로 얼룩진 문장으로 인해 이야기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더해, 메타포로 점철된 문장들은 이야기에 빠지게 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를 이겨내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 속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마지막에 급작스럽게 무거워지는 이야기 속 배경과 작품 해설에서 언급되는 정치적 상황을 알게 되어 심각한 표정과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기는 했지만….
이 책에 대한 감상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장을 넘기다 어느 순간 웃고, 감탄하고, 울컥했다가 미간을 찡그리고 입을 굳게 다물어 오므린 채 조심스럽게 책장을 덮었다‘라고 할 수 있다.
20살 이후로 세계문학전집을 꾸준히 읽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작가의 이름도, 작품의 이름도 생소했다. 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당차게 책장을 펼쳤으나, 개인적으로 어려워하는 장르인 ‘시’와 ‘시적 표현’이 중심 소재를 이루는 것을 보고 살짝 움츠러들었다. (니체의 난해한 메타포적 표현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러다 어느 순간, 작가의 문장 표현에 꽤나 익숙해져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게 되었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가 연결되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격변하는 정치적 상황과 배경에서 현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렸는데, 작품 해설을 읽고 나서야 네루다가 실존 인물이었고 묘사된 칠레의 배경이 결코 허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알게 된 뒤에는 이 책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작품 속에 나오는 여러 이데올로기는 잠시 제쳐놓고 순수하게 문학작품 자체만을 놓고 느꼈던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자면, 첫째로 이 책에서 짙은 남미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열정이라는 단어로 함축되는 남미의 문화적 특색이 잘 반영된 이 냄새는 언젠가 여행하게 될 남미에 대한 부푼 기대를 한껏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둘째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라는 작가가 ‘네루다‘라는 한 인간에 대해 가지는 애틋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네루다는(실제 그의 모습이 어떠했든 간에) 이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인간적이면서도 위대한 시인처럼 느껴지게끔 만들었다. 이것이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든 상상에서 만들어진 것이든, 스카르메타는 이 시인의 위대함과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오히려 격상시키면서), 친밀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지게끔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도, 심지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 속에서도, 그들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일상을 지겨워하고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도망치려고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발버둥 쳐도 우리가 살아있는 한, 우리의 삶은 일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죽음 이외에는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숭고함. 나는 그 숭고함을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