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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기성세대를 이해하는 방법

영화 '1987과 책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

by 잼 매니저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나는 이 책이 기성세대가 90년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을 읽는다고 했을 때, 90년생인 우리는 무엇을 통해 기성세대인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공부하고, 경험하는 것이 —비록 간접 경험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잘 만들어진 영화 ‘1987’과 잘 쓰인 책 ‘나의 한국현대사’가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94년생인 나는 한 때 그 누구보다 기성세대들을 싫어했다. 물론 모든 어른을 다 싫어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고 새치기하는 것이 싫었고, 내 앞에 난 자리를 얌체같이 빼앗아 앉는 것이 싫었고, 초면에 반말하는 것이 싫었고, 자신이 아는 것이 진리인양 강요하는 것이 싫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 게 뭘 알아?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말들을 혐오했다. 그들이 고집부린다고 생각했고, 그들은 합리적이지 못하며 꽉 막히고,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반말을 하고, 새치기를 하고, 자리를 얌체같이 뺏어 앉아도 속으로 욕하며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그들을 향해 얼굴에 미소를 띠운다. 그들이 살아낸 삶에 대해 경의를 갖고, 현재의 사회를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또한, 기성세대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수긍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내게 있어 공감은 ‘나 같아도 그렇게 할 것이다.’이고 이해는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생각이 지금처럼 변하게 되었는지 영화 ‘1987’과 책 ‘나의 한국현대사’를 통해서 알아보자.





영화 ‘1987’


영화가 거의 끝날 때까지 슬프지 않았다. 영화니까 현실보다 과장하고, 극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리가 없다고 믿었다. 내가 보고 살아온 대한민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와 닿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기 전, 영화의 장면들과 실제 그 당시 찍었던 사진들이 함께 화면을 채웠을 때, 나는 오열했다. 내가 본 영화의 모든 장면이 그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슴이 뜨거워졌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그 당시의 대학생이 공권력의 고문과 폭행으로 죽는 상황이 내가 태어나기 7년 전인, 1987년에는 현실이었다. 이런 극단에 치달은 공권력의 무자비한 횡포가 일어날 수 없는 현재의 세상은 결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기성세대가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당시 목숨을 걸고 쟁취해낸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뜨거운 열망, 목숨을 건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그 당시 그곳에서 정부의 옷을 입은 자식, 친구, 형, 동생에게 맞고, 막히고, 좌절당했을 그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려 볼 수조차 없다.


모든 기성세대가 그 속에서 지금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희생하고 투쟁한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 시절을 겪어냈고 지금에 이르렀다. 허구와 과장으로 느껴질 정도의 영화 같은 현실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존경을 표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 ‘나의 한국현대사’


영화 ‘1987’이 6월 민주항쟁을 영상으로 재현함으로써 효과적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유시민 작가의 책 ‘나의 한국현대사’는 글을 통해 전체적인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책은 작가의 정치적인 성향을 떠나 모든 독자로 하여금 객관적으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잘 쓰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했다. 쿠데타를 통해 독재를 했으며, 자기 부하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런 그를 그리워하는 것도 모자라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왜? 대체 왜 독재자를 그리워하고 찬양하는 것일까?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나의 한국현대사, P.99)


작가는 이렇게 추측했다. 북한보다 못 살았던 최빈국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을 만들기 위해 쏟았던 열정과 세계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큰 폭으로 뒤처지지 않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는 성취감. 나는 느껴보지 못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가 생각했던 그냥 독재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대단히 잘못 알고 있었다. 유시민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커다란 선과 지독한 악을 행한 극단적인 호오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명과 암이 워낙 뚜렷해서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건, 그는 선악을 떠나 엄청나게 현실적이며 똑똑하고,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를 영웅으로 여기고, 뛰어난 지도자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그처럼 뛰어난 지도자이자 영웅이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청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원래 거기 있던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한국 경제의 50년 궤적을 몸으로 밀어왔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보면서 꿈을 꾸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나의 한국현대사, P. 119)


이 구절을 읽고 90년생과 기성세대는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그들의 말과 행동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내가 이루어 낸 것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자랑스러워할 것 같았다. 성과와 성취에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린 게 뭘 알아?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말들은 여전히 듣기에 좋지 않지만,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함께 세상을 어울려 살아가기에 우리는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다른 것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우리에겐 당연한 세상이 그들에게는 성취해낸 경험이고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삶에서 추구하는 것 또한 극명하게 다르다. 그들은 먹고살기 위한 욕구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했으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살았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에서 태어나 자랐다. 우리는 그것들이 해결된 뒤의 것들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성세대가 '생존', '최소한의 자유'같은 모두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살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모두 다른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안정을 추구하고, 다른 이는 균형을 추구하며, 어떤 이는 자아실현을 꿈꾼다. 기성세대가 바라고 좇았던 가치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하며, 90년생은 이런 세상을 만들어준 것이 기성세대라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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