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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 Aug 22. 2019

한 달 살기 대신 사량도에 왔다.

 전역을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버텨냈다. 그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고, 다채로운 사람을 겪었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조금 덧붙여 2년 반이 조금 안 되는 군 생활을 절반으로 뚝 잘라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보자면, 전반은 그동안 살아왔던 나를 죽이는 시간이었고 나머지 반은 군이라는 조직의 체제와 시스템에서 원하는 나를 새로 만들어내는 시간이었다. 기존의 나를 부정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은, 순간순간이 고통이었고 괴로움이었다. 그 순간들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두운 터널 속 ‘전역’이라는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빛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빛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온전히 내 의지로 앞으로의 삶과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속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다. 즉, 내게 있어 초ㆍ중ㆍ고등학교를 거쳐 꼭 가야 할 것만 같았던 대학교를(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졸업하고 한국 국적을 가진 일반적인 남자라면 필히 가야만 하는 군대를 만기 전역했다는 것은, 당위에서 벗어난 세계로 첫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필히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 모두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역을 한 후에 그간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하나의 여행 테마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한 달 살기’가 이를 위해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발리, 치앙마이 등 한 달 살기로 유명한 도시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허나, 전역이 다가오면서 예기치 못 한 가정사와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해외에 나가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때마침 한 친구에게 친구네 가족이 운영하는 펜션이 성수기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또 우연찮게 성수기 시즌이 내 전역 시기와 엇비슷하게 겹쳤기 때문에 펜션에 있는 친구의 큰 형에게 혹시 전역한 후에 섬에 가서 일을 좀 도와주면서 그곳에서 지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친구의 부모님과 큰 형과는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한 달 살기 대신 사량도에 왔다.


사량도


 +) 사량도는 친구네 가족이 운영하는 펜션이 있는 섬으로 통영이나 삼천포 등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섬은 상도와 하도 두 개의 본섬과 몇몇의 부속 섬들로 이루어져 있고 상도와 하도는 사량 대교라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량도에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 중 하나인 지리(망)산과 고동산 둘레길, 대항해수욕장 등의 관광명소가 있으며 등산, 낚시, 해수욕, 캠핑 등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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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섬에서의 하루는 정해진 일을 하는 시간과 그 외의 자유로운 시간으로 나뉘었다. 정해진 일을 하는 시간에는 방 청소, 빨래, 숯불 세 가지를 했는데 자세한 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방 청소는 묵었던 손님의 방을 정리해서 손님이 사용하기 전으로 원상복구 시키는 작업으로 침구류 교체, 주방ㆍ화장실 정리 및 청소, 새 수건 비치, 테라스 청소, 분리수거 등의 일을 한다. 보통은 퇴실 1시간 전인 오전 10시 즈음부터 청소를 시작해서 오후 1~2시쯤에 끝이 난다. 방 청소는 정리해야 하는 방의 개수에 따라 4~8명이 함께 했고, 가끔 청소해야 하는 방의 수가 많거나 일 하는 사람의 수가 적으면 점심을 먹은 후 오후 3~4시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빨래는 사용한 침구류를 세탁기에 넣어 빨고, 세탁이 다 된 빨래를 널어서, 그게 다 마르면 차곡차곡 개서 창고에 넣는 작업이다. 특별히 정해진 시간이 없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일을 했다. 가끔 갑작스럽게 비가 오면 다 같이 “빨래!!”라고 외치며 후다닥 달려 나가 널어둔 빨래를 걷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숯불은 저녁 시간에 요청하는 손님에 한해 숯불에 불을 붙여 바비큐 준비를 해주는 것으로 보통 저녁 5~8시 사이에 진행된다. 미리 시간을 정해서 요청하는 손님은 많지 않고 보통 필요한 그때그때 전화해서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언제, 몇 번을 갈지 사전에 알 수가 없는 특징이 있다.


 위에 설명한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시간 외의 시간들은 자유 시간으로, 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 주로 독서, 낚시, 등산, 물놀이, 요리, 낮잠, 대화, 침잠, 운동, 글쓰기 등을 했는데, 이 중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 하는 몇 가지를 항목별로 정리해보았다.


#독서


 나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이번에 사량도에 올 때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2를 비롯해 총 4권의 책을 챙겼다.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 이곳저곳에서 책을 읽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해먹에 누워 책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카페 겸 부엌 옆 공간에는 파라솔을 꽂을 수 있는 나무로 된 벤치 2개가 있고 그 옆에 알록달록한 줄무늬가 인상적인 해먹이 3개 매달려있다. 그 앞에는 바다가, 뒤에는 산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날의 기분 혹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산과 바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 바라보며 누울 수 있다. 해먹에 누워 바다 혹은 산을 앞에 두고 재즈를 배경음악으로 책을 읽고 있으면, 모든 걱정근심이 사라지면서 평온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해먹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산


#낚시 1


 친구의 큰 형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방이 온통 낚싯대를 비롯한 낚시 용품으로 채워져 있고, 낚시를 위한 보트를 보유하고 있을뿐더러, 생방송 투데이에도 낚시하는 것이 방송된 적이 있을 정도의 프로 낚시꾼이다. 이 형님 덕분에 펜션에는 다양한 낚시를 할 수 있는 *채비가 마련되어 있다. 그중엔 낚시의 ㄴ자도 모르는 나도 쉽게 할 수 있는 낚시가 존재했는데, 바로 그 이름하여 *들낚이다. 형님은 70~80살 먹어서 힘 떨어지면 할 만한 낚시라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그 나름의 재미가 있어 종종 밤에 혼자 나가 낚시를 하곤 했다.


 들낚의 채비는 정말 간단하다. 세팅이 끝난 *민장대, 미끼 그리고 잡은 고기를 넣을 통만 있으면 된다. 펜션 근처 방파제에서 낚을 수 있는 고기는 풀치(갈치의 새끼)와 손바닥만 한 고등어, 전갱이 새끼 세 종류이다. 풀치는 머리를 잘라서 내장을 제거하고 비늘을 벗겨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 기름에 튀기듯이 구워서 먹으면 바삭바삭한 것이 맥주 안주로 그만이고, 고등어는 등 따기를 해서 내장과 아가미를 제거한 뒤 소금을 쳐서 다음 날 구워 먹으면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전갱이 새끼는 너무 작기 때문에 버리거나 놓아준다.)


 

들낚으로 잡은 고등어와 손질한 뒤의 모습


 나는 보통 저녁을 먹은 후 오후 8시 정도에 나가 12시 전에 들어왔다. 나갈 때마다 1~3마리 정도씩 잡아서 돌아왔는데 이렇게 잡은 고기는 다음 날 반찬이 되거나 손질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아주 가끔은 이 펜션에서 키우는 고양이인 치즈의 밥이 되기도 했다.


 혼자 나가서 낚시를 하면 심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시간이 정말 잘 간다. 입질이 오는지 계속해서 찌를 확인 해야 하고 오랜 시간 입질이 없다 싶으면 미끼를 확인하고 새로 갈아줘야 한다. 입질이 언제 갑자기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가끔 입질이 너무 없을 때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으면 그 광활한 아름다움 속에 깃든 평화와 안정이 나에게 전해진다.


*채비: 낚시를 하기 위한 준비물. 또는 준비물을 챙기는 것.


*들낚: 들어서 하는 낚시의 준말.


*민장대: 가장 기본적인 낚싯대로 대나무 낚싯대와 같은 모양이지만 편리성을 높여 평소에는 짧게 줄여서 보관하다가 낚시를 할 때 안테나처럼 늘여서 사용할 수 있다.


#낚시 2


 낚시는 장소, 방법, 낚고자 하는 물고기 등에 의해 다양한 이름이 붙으면서 구분되는데, 내가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낚시는 장소에 의해 구분된 선상 낚시이다. 배 위에서 하는 선상 낚시는 잡은 물고기를 *어창에 넣어둠으로써 오래 살릴 수 있고, 레이더로 물고기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으며, 포인트(위치)를 비교적 쉽게 옮길 수 있는 등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연비가 1Km/L 정도라는 엄청난 단점이 있지만...) 선상 낚시를 하려면 보통 꽤 큰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나는 정말 감사하게도 개인 보트를 가진 형님의 배려로 사량도에 머무는 동안 2번이나 선상 낚시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형님의 *주 종목인 무늬오징어를 목표로 출항했는데, 형님은 무늬오징어가 낚시하는 사람들만이 먹을 수 있는 아주 귀한 물고기(넓은 의미의) 중에 하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갑오징어는 들어보고 먹어 봤어도, 무늬오징어는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오징어였다.


 무늬오징어 낚시는 루어(가짜 미끼)를 이용해 액션(일련의 동작)으로 입질을 유도하는데, 이를 다른 말로 ‘에깅 낚시’라고도 한다. 낚시 왕초보인 내가 이 에깅을 하기 위해서는 (비록 흉내 정도에 불과했지만) 형님이 내뱉는 몇 번의 한숨과 짜증 섞인 질책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히 어복은 있는지 선상 낚시를 한 2번 모두 손바닥만 한 무늬오징어를 한 마리씩 잡을 수 있었다.


 형님은 배를 타고 나온 김에 서울에서는 못 먹는 갈치 회의 맛도 보여준다며 집으로 돌아가기 전 풀치를 몇 마리 잡아가자고 했다. 포인트를 이동해 집어등을 켜고 루어를 바꿔 던졌더니 바로바로 입질이 왔다. 이에 고무된 우리는 신나서 열심히 낚싯대를 던져댔다. 그 결과 짧은 시간 내에 7마리를 어창에 넣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바라본 지평선
내가 잡은 풀치와 무늬오징어


 +) 무늬오징어는 회, 볶음, 튀김, 통 찜 등 여러 방법으로 먹을 수 있는데, 모두 맛있기는 했지만 이 중 최고는 단연 무늬오징어 회였다. 회로 먹을 때 무늬오징어는 부위 별로 그 맛과 식감이 조금씩 다른데, 귀 부분은 조금 더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있고 몸통 부분은 귀 부분보다 부드럽고 단맛이 좀 더 짙다. 바싹 구운 김에 와사비를 푼 간장을 찍어 싸서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회를 먹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갈치 세꼬시도 분명 그 나름의 맛은 있었으나, 무늬오징어 회를 맛 본 뒤라서 큰 감흥이 없었다.)


갈치회 - 무늬오징어 통 찜 - 무늬오징어 회


*어창: 잡은 물고기를 보트 안에 넣어 살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닷물이 순환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수족관에 넣어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진다.


*주 종목: 목표로 하는 물고기에 따라 채비가 달라지기 때문에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보통 한두 가지 정도의 주된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맞는 채비를 갖춘다.


#등산


 펜션에는 종종 외국인 손님들이 오곤 했는데,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닌 것을 알고 계셔서 그런지(친구도 태국에서 만났다.) 그때마다 친구의 아버지는 내게 안내를 맡겼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어떻게든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고 몇 번의 픽업 서비스도 하게 됐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 섬을 외국인들이 배를 타고 찾아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묻곤 했는데, 대부분이 론리 플레닛이나 블로그를 보고 하이킹을 하러 왔다고 답했다. 이 질문을 할 당시의 나는 사량도를 방문하는 것이 3번째였지만 평소 등산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등산이 아니더라도 할 것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이 섬의 산에 오른 적이 없는 상태였다.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드는 산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친구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손님들이 정말 좋다고 하는 얘기도 왕왕 들어왔기 때문에 한 번 가보면 좋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꼭 가봐야 한다는 필요성은 못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국인 손님 중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네덜란드에서 온 가족이 등산을 끝내고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방청소를 하고 있던 나와 마주쳤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그들에게 등산은 어땠는지 물었다. 그들은 세계의 수많은 산을 가봤지만, 오늘 오른 산이 최고이며 나도 꼭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을 등산 시작 지점까지 태워줄 때 나는 아직 등산을 하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말했었다.) 대화를 마치고 난 뒤 나는 꼭 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며칠 내로 등산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대화 내용보다도 말을 하는 그들의 표정과 눈빛에 마음이 움직였다. 정말 행복한 경험을 하고 난 뒤의 표정과 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열정 어린 눈빛이 너무 좋아 보였고 나도 같은 경험을 하고 싶게끔 만들었다.


 새벽 4시 10분. 3시간 정도를 자고 일어난 몸 상태는 4시간이 넘는 산행을 하기에 그렇게 적합하지 않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함께 산행을 하기로 한 이모님을 기다렸다. 각자의 가방에 물과 간식을 챙겨서 친구의 아버지가 우리를 데려다 주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는 차에 올랐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며 올라가기 시작했다. 새까만 산을 헤드랜턴의 빛에 의지하며 조심조심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산에 괜히 온 건 아닌가 싶은 후회가 마음속 가장자리에서 싹트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태양의 붉은빛이 지평선 아래에서부터 어두운 세상을 서서히 푸르게 바꿔가는 것을 보고는 싹트던 후회가 오길 정말 잘했다는 확신이 되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은 오르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힘듦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해발 400m도 안 되는 산이지만 그 정상에서 바라보는 섬과 바다는 살면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과 그 사이로 세상을 비추는 태양의 빛을 포함해 풍경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4시간이 조금 넘는 산행 동안 몇 번이나 발걸음을 멈추고 풍경에 감탄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산을 타는 내내 구름이 태양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적절히 식혀주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산행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고지에 있는 바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틀어 놓고 물과 간식을 먹었는데 그 어느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았다. 지리(망)산 위에서 보냈던 시간은 대한민국에서 보낸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 중에 하나였으며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 했던 마음속 울림이었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지리(망)산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


 +) 사량도에 있는 지리(망)산은 날이 좋을 때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서 지리망산이라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보통 지리망산이라는 이름보다 사량도 지리산이라고 많이 불린다. 위에서도 적었듯이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드는 명산이다.


#물놀이 1


 나는 물놀이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그럼 싫어해?라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그저 찾아서 하지 않되, 하게 되면 마다하지 않는 정도의 기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는 펜션에 있으면서도 물에 들어가 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이 일하는 동생 중 한 명이 ‘인터스텔라’는 무조건 해봐야 한다고 하면서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물에 들어가자고 했다. 그게 뭐냐 묻는 내게 그 동생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며 막무가내로 어둠이 깔려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으로 나를 끌고 갔다. 잔잔한 파도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그 동생과 친구의 형님은 웃통을 벗으며 내게도 옷을 벗고 따라 들어오라고 말했다. 어리둥절한 나를 두고 둘은 첨벙첨벙 한 발씩 바다를 향해 들어갔다. 엉거주춤하며 나도 윗옷을 벗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물이 가슴 높이께 까지 올라오는 곳으로 간 뒤 그들은 천천히 뒤로 눕기 시작했다. 단어 그대로 몸을 서서히 뒤로 뉘어 눈, 코, 입만 내놓은 채 둥둥 떠있었다. 그들은 내게도 몸에 힘을 쭉 빼면 저절로 몸이 뜰 것이니 천천히 힘을 빼고 누워보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나도 힘을 빼고 누워보았으나 잘 되지가 않았다. 내가 혼자 낑낑거리며 못 하고 있자 형님이 도와준다며 등을 받쳐주었다. (받쳐주는 손이 있었지만)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눕자 마치 우주 어딘가 무중력 공간 속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귀에서 타닥타닥 하는 바닷속 소리가 들렸다. 이 상태에서 밤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 행성과 행성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뭍으로 나올 때까지 혼자 떠있지는 못 했지만, 동생이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물에 들어간 것이 전혀 후회스럽지 않았다.


펜션 앞에 펼쳐진 대항해수욕장


#물놀이 2


 한 번은 스노클 장비와 살림망을 챙겨 바닷가로 나갔다. 형님과 나는 물놀이 겸 혹시나 주워올 것이 있으면 주워 가자는 마음으로 물속에 들어갔다. 시야가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운이 좋게도 문어 몇 마리와 참소라, 고동, 해삼을 조금 잡을 수 있었다. 형님에게 삼시 세 끼를 찍는 것 같다고 말하자 이런 게 섬 생활의 묘미 아니겠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는 돌아와 고동과 소라를 삶아 그 쫀득한 식감으로 입맛을 돋우고 버너를 가져와 물을 끓여 문어를 데쳤다. 내장을 제거한 해삼과 데친 문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초장과 생 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 먹은 후 문어를 데친 물에 라면을 끓였다. 핑크색과 보라색 사이의 빛깔을 띠는 면발은 정말 추운 겨울 극한에 치달은 배고픔을 느낄 때 먹었던 라면만큼 맛있었다.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며 언제든지 서울에서도 문어와 소라, 고동, 해삼을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겠지만, 분명 이 맛을 다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요리


 사량도에서 배달 음식은 언감생심이고 몇 개 있는 식당도 대부분이 관광객 위주이기 때문에 아주 가끔의 외식이나 육지에 나갔다가 먹을 것을 사 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세 끼 전부를 직접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한다. 식재료는 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나(해산물, 미역, 생선 등) 지인이나 손님이 주고 가는 것들, 낚시나 물질로 잡아온 것들, 트럭으로 오가며 섬에 식재료를 파는 분에게 부탁한 것들과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한다. 요리는 보통 어머니나 형님이 맡았고 나는 가끔씩 일손을 거들다가 필요한 경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을 경우 이따금씩 직접 요리를 하기도 했다. 스지(소 힘줄)를 이용한 수육, 볶음, 조림과 뭇국, 볶음밥, 냉면, 스테이크, 파스타 등등 많은 요리를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요리는 스지를 이용한 음식들이다.


 스지(소 힘줄)는 사량도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부위다. 형님이 가장 좋아하는 소의 부위로 가격도 싸고 맛도 정말 좋지만, 손이 꽤나 많이 가는 재료이다. 도축업 관련 일을 하는 형님의 친구 분이 보내준 스지를 언제 먹어야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중 형님이 감기에 지독하게 걸렸다. 3일을 앓아누운 형님은 내게 스지를 먹으면 나을 것 같다며 요리를 부탁했다. 저녁 9시가 넘었지만,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산을 가야 했지만, 형님을 위해 인터넷에 스지 삶는 법과 손질하는 법을 검색한 후에 요리를 시작했다. 먼저 스지를 끓는 물에 한 번 데치고 하얀 기름을 제거한 뒤 대파, 통마늘, 통후추, 무, 양파, 월계수 잎을 넣은 물에 2시간 정도를 삶았다. 그러자 딱딱하게 굳어 있던 힘줄이 말랑말랑 해지면서 쫀득쫀득한 식감이 되었다.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넣은 간장 소스를 만들어서 말랑해진 스지를 수육으로 몇 점을 먹고 나서 남아있는 일부와 네모나게 썬 무를 참기름에 들들 볶아 뭇국을 끓였다. 둘이 배부르게 수육과 뭇국을 먹고도 스지가 많이 남아 냉장실에 넣어 두었다가 그 다음날 수육과 볶음, 조림을 해서 다른 사람들과 다 같이 반찬으로 먹었다. 처음으로 먹어본 소 힘줄은 도가니와는 또 다른 맛으로 느끼하지도 않고 어떻게 요리해 먹어도 맛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스지를 먹고 형님은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수육 - 볶음 - 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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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로 돌아가는 기찬 안, 이제는 더 이상 잠이 덜 깬 상태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카페 라떼로 아침을 시작하지도, 형님과 붉게 노을 지는 하늘을 보며 하는 낚시를 하지도, 아버지가 종종 던지는 외설스러운 우스갯소리를 듣지도, 어머니와 편안한 상태에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도, 이모가 발산하는 끝없는 에너지를 보면서 감탄하지도, 일이 끝난 후 식당 겸 카페에 다 같이 둘러앉아 사소한 이야기들로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지도, 위에 적었던 모든 것들과 그 외의 섬에서 했던 모든 것들을 못 한다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집을 앞에 두고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잘 챙겨줘서, 행복한 기억을 많이 남겨줘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평소 오그라든다며 감정 표현을 잘 못 하는 형님은 술을 조금 마셨는지 내게 답했다. 와 줘서 고마웠다고, 이제 너 없는 방에서 자면 참 쓸쓸하겠다고, 그리고 너에게 사량도는 도피처이니까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면 형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울컥 감정이 밀려 올라왔다.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오라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고, 도망칠 곳이 있으며, 꺼내 볼 추억이 있다는 것이 튼튼한 지지대처럼, 든든한 버팀목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절에 가서 생활을 해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나는 섬에서 그것을 깨달았다. 도시에서, 지금까지의 내 삶에서 욕망했던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는 필요치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살아갔고 주어진 것에 맞춰 살아갔다. 이런 섬의 생활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를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가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한 달도 안 되는 3주 남짓한 짧은 시간 속에서 섬 생활의 전부를 알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겪지 못 한 불편함과 고충이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이 곳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말인 즉, 그런 불편한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은 단지 삶을 조금 더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사량도에 있으면서 삶의 방식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많은 것에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고, 주위에 있는 사람은 경쟁해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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