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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웃으며 배려하는 사회

- 교통약자를 위한 정책으로 만드는-

by 잼 매니저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 오를 때면 이미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숨부터 짓게 된다. 연인을 제외하고 내 옆을 이렇게까지 가까이 내주는 사람은 출퇴근 시간에 만나는 이름도 알지 못 하는 이 낯선 사람들뿐일 것이다. 겨울에는 큼직한 백팩과 두꺼운 겉옷이, 여름에는 퀴퀴한 땀내와 더위가 더해져 이 낯선 동행을 보다 괴롭게 만든다.


전동차 안 많은 사람들 중에는 넷플릭스를 보다 잠을 푹 자지 못한 사람, 전날 새벽까지 이어진 회식으로 인해 숙취가 덜 풀린 사람, 연인과 밤새 전화통화를 해서 피곤한 사람 혹은 미처 집에서 용변을 보지 못 해 화장실이 급한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여러 사정들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교통약자들 또한 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건장한 체구의 나도 힘들어하는 이 출퇴근길 지하철을 어떻게 버텨내고 있을까?


*교통약자: 고령자, 장애인, 임부와 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환자와 부상자 등


물론, 이들을 위한 교통약자석과 임산부 배려석이 존재하기는 한다. 하지만 교통약자석은 이름이 무색하게도 고령자들의 전유물이고 임산부 배려석은 ㅡ특히 출퇴근 시간대에ㅡ 비어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노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양 끝의 12석과 유명무실한 임산부 배려 2석. 지금 지하철에서는 배려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배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하여 매일같이 출퇴근 시간을 지옥철에서 불편함과 때로는 불쾌함까지 겪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통약자라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무릇 배려라 함은 여유와 이해, 공감 등이 전제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출퇴근길 대중교통 안은 배려를 하고 받기에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보다 성숙한,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통약자들이 지금보다 좀 더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장 교통약자가 아닌 이들을 만족시키면서 배려가 필요한 이들이 불편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나는 알맞은 정책 혹은 캠페인을 통해 배려자의 불만과 교통약자의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서있다.


현재 서울 지하철 이용 시 만날 수 있는 교통약자를 위한 정책과 캠페인에는 핑크 카펫과 임산부 배지, 배려하기 방송과 노래, 홍보 영상 등이 있다. (버스는 커버를 씌우는 것 외의 노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과연 이 노력들이 유의미한 결과를 낳고 있는지 실로 의문스럽다. 여전히 교통약자석에는 노인들이 앉아 있고 임산부 배려석에는 임부와 산부가 아닌 이들이 앉아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때로는 과도한 캠페인으로 인해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면서 배려하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은 존재할 수 없을까? 여기, 하나의 좋은 선례가 있다.


부산 김해경전철의 핑크 라이트 캠페인이 바로 그것인데, 핑크 라이트 캠페인이란 비콘을 소지한 임산부가 배려석 근처로 가면 좌석에 부착된 핑크 라이트가 켜지고 이때 배려를 하게끔 하는 캠페인이다. 시민들은 부담 없이 비어있는 좌석에 앉을 수 있고 임산부 역시 보다 마음 편하게 배려석을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캠페인은 시민들의 협조도 순조롭고 일본 도쿄 메트로에서 직원을 보내 벤치마킹하는 등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출퇴근 시간 고령자의 무료 이용을 제한하여 교통약자석을 조금 더 여유롭게 한다든지, 많은 시민들이 교통약자들의 불편함에 공감할 수 있는 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한다든지, 교통비를 올려 인력을 충당하고 전철의 운행 횟수를 늘리는 등의 정책들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보다 유의미하면서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보다 나은 정책들이 시행되어 서로 웃으며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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