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집, 넷플릭스의 스페인 범죄 드라마, 나는 이 드라마를 지금껏 보았던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사랑하게 됐다. 연기ㆍ배우ㆍ연출ㆍ전개ㆍ음악 등 드라마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눈부시고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시청자로 하여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존나 재밌다.
어느새 드라마 속 범죄 집단에게 마음을 뺏겨 그들이 화를 내면 나 역시 분노하고, 그들이 슬퍼하면 나 역시 울컥함이 치밀어 오르며, 그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찰ㆍ보안요원ㆍ정보부 요원들이 마치 악당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강도짓을 하는 그들이 나쁜 쪽이라는 것을 알지만, 드라마 속 스페인 은행을 둘러싼 시민들처럼 범죄자 집단인 그들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종이의집: 신드롬이 된 드라마)에서 주지시켰다시피 이 드라마의 인기비결에는 긴장감ㆍ공감ㆍ캐릭터ㆍ블랙유머ㆍ사실성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 속에서 캐릭터들에게 매력과 공감을 느끼고, 그들의 블랙유머에 미소 짓고, 사실성에 감탄한다. 그러나 유럽ㆍ미국ㆍ아시아 등지에서 달리 가면을 쓴 채 행진을 하고, 레바논ㆍ이라크ㆍ터키ㆍ프랑스 등에서 인권운동을 할 때 달리 가면을 쓰는 이유는, 구조선박인 오픈 암즈가 난민을 구하고 안전한 곳에 도착하자마자 벨라 차오를 소리 높여 부르며 환희에 찬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그들이 보여주는 ‘상징’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상징.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정해져 있는 체제 속에 갇혀 살아가게 된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 순응 혹은 낙인뿐이다. 이미 누군가 정해놓은 법과 규칙ㆍ규율에 따라 체제 속에서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순응하며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갈 것인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 범죄자ㆍ패배자ㆍ쓰레기ㆍ낙오자와 같은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만 한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합리와 비합리를 떠나서 말이다.
체제를 이루는 수단들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평등하게 적용되는가 하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그렇지 않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듣고, 접하는 상황 속에서, 내부 고발자ㆍ폭로자들이 그간 이야기해왔던 것처럼, 세상은 공평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소위 권력자라고 불리는, 힘을 가진 이들은 우리와 같은 체제 속에서 온갖 것을 누리고 향유하며 살아간다. 순응한 채 살아가는 이들을 가축처럼 취급하고, 낙인찍힌 이들을 비웃으며 말이다. 이들처럼 체제 안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과 불만 없이 당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드라마의 상징이 그렇게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 드라마에 매력을 느끼고 열광하는 나는, 지금의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래, 어쩌면 내가 이 드라마에 사랑을 느끼는 이유는, 거대한 세상에 맞서 저항하는 이들을 동경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 하는 나의 욕망을 이 드라마가 해소해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낙인찍힌 이들이 거대한 정부와 맞서는 이 가상의 이야기는 바라던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체제에 저항했던, 현실의 파르티잔(저항군)들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에 맞섰던, 독재에 저항했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목숨을 불살랐던 우리의 모든 영웅들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고, 전 세계에서 달리 가면을 쓴 채 벨라 차오를 노래 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세상은 더 변할 필요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뤄줄 또 다른 저항군들을 (혹은 영웅들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파르티잔들을 위해 벨라 차오를 노래 하며 이 글을 마친다.
"벨라 차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20년 02월 08일 수정, 2020년 04월 09일 접속, https://ko.wikipedia.org/wiki/%EB%B2%A8%EB%9D%BC_%EC%B0%A8%EC%98%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