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보고 난 뒤 생긴 몇 가지 의문
'이게..... 뭐지?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기생충을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분명 중반까지는 웃으면서 배우들의 연기와 개그에 감탄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져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뿐인데 지쳐버렸다. 머릿속을 맴도는 몇 가지 의문들과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같이 영화를 본 모임 사람들과 하나하나 정리해봤다.
* 모든 답은 자체적으로 내린 하나의 가능성이며 정답이 아님을 밝힙니다.
세 가족의 일상이 파괴되었다. 목숨까지 잃었다. 이 비극의 시작은 어디이며 왜 일어난 것일까? 단순 사실적으로 보면 기우가 과외를 받아들이면서 숙주 가족의 집에 자신의 가족들을 하나 둘 끌어들인 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단지 이뿐일까? 우리는 조금 더 고민해봤다.
기생충 가족 1이 살아가는 방식은 말 그대로 기생충처럼 누군가에게 빌붙어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숙주가 필요한 것이다. 피자집에 빌붙어 살아가든, 부잣집에 빌붙어 살아가든 숙주가 필요하다. 그들 자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에 맞춰 노력을 하고 행동을 했다. 방법이 틀렸다고 말하기에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기생충 가족 1이 비극의 원인이 아니라면, 대체 이 비극은 어디에서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어울려 살아갈 수 없는 계층이 어울려 살아가려 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여기에 예기치 못 한 돌발상황이 더해져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기생충 가족 1이 숙주 가족의 집이 빈 틈을 타 계급에 그어진 선을 넘었고 문광이 그 집을 방문함으로써 예기치 못 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비극이 일어났고 모든 가족에게 회복되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기생충 가족 1 중에서 기정만이 죽었다. 왜일까?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정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는 가족들과 조금 다르다. 재능이 있고 기우가 이야기했듯이 숙주 가족의 욕실에서 위화감이 전혀 없다. 또, 기생충 가족 2를 대하는 방식도 다르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고 계획을 세우려 했다. 이를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홍수로 집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이다. 기택이 물건을 밖으로 빼고 기우가 돌을 안고 있을 때 그녀는 변기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른 계층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말하자면, 기정은 기생충 가족과 어울리지 않는다.
기생충 가족 1에서 기정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면, 동인은 죽지 않을 수 있을 존재였다고 생각된다. 숙주 가족 중에 누구라도 기택의 칼에 맞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택의 살인은 계급을 인식하고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데에 대한 포효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계급을 '냄새'를 통해서 서서히 알게 되고 같은 존재인 근세를 대하는 동인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계급을 직시하게 된다. 불공평하고 분명하게 분리된 계급을 절감하고 같은 계급의 존재가 벌레처럼 취급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마치 자신이 벌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냄새는 분명하게 계급을 상징한다. 흥미로운 것은 다송이는 기생충 가족의 냄새를 동일하게 맡고 동인과 연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느끼고 어른들은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낀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들은 사람 자체를 보고 어른들은 환경을 본다. 과외 선생님과 운전기사, 가정부는 어른들에게는 다른 존재들이다. 감각을 뛰어넘는 인식을 보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냄새는 계급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냄새의 원인은 '반지하'이다. 즉, 사는 곳이다. 그렇다면 사는 곳은 계급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기우가 마지막 장면에서 숙주의 집으로 이사할 것을 다짐하는 것은 계급 이동을 다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사는 곳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이던가?
난데없이 나타난 섹스씬에 사람들이 당황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계획했던 캠핑을 취소하고 숙주 가족은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는 난리가 난다.
거실 탁자 밑에는 기택의 가족이 숨어있고 마당에는 다송이가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있다. 이 와중에 소파에서 동익과 연교는 사랑을 나눈다. 나는 이 장면이 두 계급의 완벽한 대비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부부에게 섹스는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인 행위이다. 기생충 가족 1은 걸리지 않기 위해 숨을 죽이고 탈출의 기회를 엿본다. 기생충 가족 2는 파멸했다. 숙주 가족은 일상을 보낸다. 천재지변(폭우)이라는 돌방 상황에서 두 계급은 정반대의 상황에 있다.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과 망가져 회복이 안 되는 삶. 체육관에서 기택이 기우에게 무계획이 계획이고, 계획은 항상 실패하게 되어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웃어넘길 말이 아니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계급이라는 말이다.
이 영화는 분명 한국적이다. 한국인이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할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그럼에도 국제 영화제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결코 대한민국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인 것 같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에서 새롭게 생겨난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점점 더 견고 해지는 계급의 벽으로 분리되는 사회.
이 영화는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침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