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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 매니저 May 10. 2020

황금연휴에 사량도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는-


 찌그러진 일상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한, 이 나라를 지탱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여 전세계를 놀라게 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여전히 안심하기에 이른 시기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가장 위험한 국가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에 하나가 된 것 또한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일별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나가 이제는 10명 안팎을 오가는 상황에서 석가탄신일, 근로자의 날, 주말, 어린이 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화창한 날씨와 함께 찾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가만히 집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간 억눌려 있던 자유를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전국 이곳저곳을 향해 떠나기 시작했다.

 제주도와 강원도를 비롯한 국내 주요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리는 모습에 우려와 걱정 어린 시선이 이어졌지만, 이미 만들어진 거대한 흐름을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그에 따라 작년 여름 성수기에 일을 했던 남해의 작은 섬, 사량도에서도 때 아닌 특수를 맞아 갑작스럽게 일손이 필요한 사정이 생겼다. 도움을 구하는 전화를 받고 친구와 함께 섬을 향해 가는데, 놀라운 광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량도에 들어가는 선착장에 늘어서 있는 차들과 북적북적 모여 있는 사람들.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 한 엄청난 차량 행렬과 인파였다. 여기에 더해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름 아닌 배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해맑은 웃음을 띠는, 너무나 밝은 얼굴의 사람들. 모두들 처음으로 소풍을 떠나는 아이처럼 신난 얼굴을 하고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그 기운에 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해 피곤에 찌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좋아진 기분으로 섬에 발을 딛자, 얼마 안 있어 결혼을 하고 형수님과 함께 섬에 자리를 잡은 탁형이(돈키호테) 좀 더 듬직해진 모습으로 우리를 마중 나왔다. 차에 짐을 싣고 그리웠던 대항해수욕장 앞, 원탁(圓卓)이 놓인 세 개의 펜션을 잇는 허브(hub)이자, 카페 겸 주방에 도착하자 여전히 인정 넘치는 어머니(단디해)와 어김없이 개성 넘치는 아버지(로시난테)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순간, 고향 집에서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정겨움이 몸을 감쌌다.

 황금연휴를 사량도에서 머물며 3개의 펜션을 꽉 채운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떻게 이 먼 곳의 섬을 알고 찾아왔을까? 그리고 또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마침 두 아이와 함께 약 3주를 보낸 부부가 떠날 때가 되었기에 정중히 인터뷰를 요청해보았다.  



- 나: 사량도를 어떻게 알고 오게 되었나요?
 
- 아내: 저보다 먼저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던 엄마가 있어요. 그 엄마가 여기 사장님(돈키호테)의 인스타그램이랑 브런치에서 글을 읽고 왔는데, 저도 그 이야기를 듣고 브런치에 있는 글이랑 인스타그램을 본 뒤, 좀 더 알아본 다음에 오게 됐어요.

- 나: 결정적으로 여기다! 싶은 부분이 있었나요?

- 아내: 음, 그건 사장님의 인스타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이 여기 다 같이 사는 걸 보고.

- 나: 어떤 느낌일 것 같았나요?

- 아내: 가족적이고, 사람 별로 없으면서 자연 친화적이고,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뒤에 산도 있고. 아이들 데리고 가면은 즐길 거리가 있겠다 싶었어요.

- 나: 이곳에서 약 3주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셨는데, 오랜 기간을 이곳에서 머물렀던 이유가 있을까요? (+아이들과 아내 분이 먼저 섬에 와 있었고, 남편 분은 연휴 기간에 맞춰 섬에 들어오셨다.)

- 아내: 네. 3주 좀 넘게. 일단 머물기에 되게 편했어요. 생활하기에 편했고. 그리고 할 수 있는 게,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게 되게 많았어요.

- 남편: 펜션이 바다 바로 앞에 있으니까. 항상 바다에 가서 놀 수 있고. 지리적인 위치가 정말 좋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바다에) 왔다 갔다 하기 편한 것도 있고요.

- 나: 아무래도 섬이다 보니 불편한 부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근처에 편의점도 없고 어디를 가려고 하면 일단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니까요.

- 아내: 맞아요.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오기 전에는 그런 불편함이나 편견이 있었죠. 섬이기 때문에. 또 일단 배를 타고 들어와야 하고. 그런 게 다 부담이었는데 막상 와서는 그런 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 그걸 상쇄할 것들이 많았어요.

- 나: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 아내: 일단 여기 사장님이 이것저것 챙겨주셨고. (원탁에 놓인 음식들을 가리키며) 뭐 이렇게 잡아도 주셨고. 생선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고. 공기도 좋았고, 날씨가 궂으면 궂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재밌는 게 많았어요. 톳이나 미역도 따러 가고, 고동도 줍고, 고동산 둘레길도 걷고, 물놀이도 하고, 꽃게도 잡고.

- 나: 그 기간 동안 아이들이 지루해하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 아내: 네.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어요.

- 남편: 아이가 전에 “아빠, 여기는 매일 바다에 갈 수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도시에 살면 바다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행사고, 굉장히 어려운데 여기는 뭐 생각나면 바로 갈 수 있으니까.

- 아내: 아, 그리고 또 재밌었던 게 이 앞에서는 조그만 꽃게를 잡을 수 있고. 또 해수욕장이니까 모래사장이고 약간의 물놀이를 할 수 있었어요. 근데 여기에서 소개받고 간 다른 곳에서는 벽화나 이런 것도 볼 수 있고, 또 다른 곳에 가면은 쪽빛 바다도 볼 수 있고. 그리고 방파제마다 낚시하는 사람들 봤을 때 잡히는 물고기들도 다르고, 그런 걸 아이들이 봤을 때 재미있어하고요.

- 나: (아이들에게) 너희도 여기서 좋았어?

- 첫째 아이: 네.

- 나: 뭐가 제일 좋았어?

- 첫째 아이: 바닷가에서 놀 수 있는 거.

- 둘째 아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잖아. (전원 웃음)

- 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어서 좋아?

- 둘째 아이: 네. 서울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무 데도 못 가잖아.

- 나: 도시에서는 집에만 있었는데 여기 와서는 계속 돌아다니고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게 좋았구나.

- 둘째 아이: 네.

- 첫째 아이: 그리고 밤에 소고기 먹으면서 불꽃놀이도. (전원 웃음)

- 남편: 바비큐 해서 좋았다고?

- 첫째 아이: 응.

- 나: 서울에서 먹을 때랑 맛이 좀 달랐어?

- 첫째 아이: 아니요. (전원 웃음)

- 나: 맛은 똑같아?

- 첫째 아이: (끄덕끄덕)

- 남편: 그래도 맛있었지? 여기에서 먹는 거?

- 첫째 아이: 응.

- 나: 여기서는 식재료 사는 것도 그렇고 지근거리에 식당이 없어서 끼니를 해결하는 데 불편한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아내: 맞아요, 맞아요. 우유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우유가 하나로 마트에 4시에 들어온대요. 그래서 그걸 사러 가면은 저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 우유를 사고 싶어 해요. 제 앞에 뭐 한 세 명. 제 뒤로도 한두 명 있고요. 그럼 같이 기다려요. (웃음) 그래서 우유가 풀리면 같이 사고. 근데 그걸 못 사면 (마트가) 5시에 문을 닫는데, 다음 날 가면 아침에 조그만 늦게 가도 사기가 쉽지 않거든요. 신선한 우유. 뭐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벤트 식으로 (생각되어서) 재밌었어요. 그리고 식재료는 약간 서울에서 먹던 거랑 당연히 다르죠. 신선하고 다양한 종류의 나물, 뭐 이런 건 없을 수 있죠. 그렇지만 다른 게 많았어요. 되게 싼 가격에 생선도 먹을 수 있고. 가끔씩 많이 사시면 어머님(단디해)이 그냥 주시기도 하고 하니까. 그걸로 구워 먹거나 지리 끓여 먹거나 하면 아이들도 맛있게 잘 먹었어요.

- 나: 서울에서랑 메뉴가 많이 달랐나요?

- 아내: 네. 아예 달랐죠.

- 나: 새로 해 본 음식도 있으시고 그런가요?

- 아내: 많죠. 저는 원래 서울에서 이렇게 생선국을 잘 안 끓여 먹었는데 여기서는 많이 끓였어요.

- 남편: 그리고 자연에서 바로 잡은 거나, 얻은 것을 바로 먹는 이런(것도 있고요).

- 아내: 맞아요. 선도가 너무 좋으니까 어떻게 해도 사실 맛있더라고요.

- 나: 섬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 여자: 저는 계속 다시 오고 싶어요. 근데 사실 (저를 포함해서) 주변에 아이 있는 집들이 섬에 오는 게 내키지 않거든요. 일단 언제, 어느 때 (아이가) 열이 나거나 약간의 사고가 있을 수 있는데 섬에는 병원이 없으니까. 그리고 거리도 거리가 (머니까). 좀 부담감이 있죠. 근데 그거를 다 넘어서서 올 만큼의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 나: 그렇다면 보다 가까운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나 바다도 있었을 텐데, 굳이 먼 곳에 있는 섬을 선택하신 이유는요?

- 아내: 사실 일단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덜 가는 곳을 가고 싶었던 것이 있었어요.

- 남편: (저는) 아이들 친화적으로 놀 때는 산보다는 섬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바다라든지, 모래사장이라든지, 갯벌이라든지. 이런 채집 활동 같은 것들도 더 하기 쉽고, 먹을 것도 산보다는 섬이 많으니까. 해산물 정도는 기본적으로 제공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하니까.

- 나: 그런 것들이 아이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나요?

- 남편: 그런 것을 계산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 아내: 아니지만, (아이들이) 감성이 풍부해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날씨가 어떻든 오후에 항상 드라이브를 다녔어요. 거의 매일. *하도도 가고 염소도 보러 가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다녔는데 애들이 좀 감성적으로 성장을 한 건지 약간 시적인 말들, 뭐 (이를테면) 비유 표현들이 많이 늘었고.

*하도: 사랑도는 상도와 하도, 두 개의 섬으로 나뉜다. 두 섬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 나: 서울에서는 하지 않았던?

- 아내: 네. 서울에서는 전혀 할 수 없었던. 예를 들어 꽃게를 많이 보고 왔어요. 바다 밑에 게들을 많이 보고 왔으면 “엄마, 나뭇잎도 다 게로 보여.”, “초록색 게처럼 보여.” 이런다던지. 아니면 날씨가 궂은날 호포 쪽을 한 번 돌았는데 거기에 작은 섬들이 조금 보여요. 근데 그걸 보고서 “버섯들이 많은 것 같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또 재밌는 걸로는 “산이나 풀들도 다 고향은 바다 같다.”, “이렇게 바다 위에 섬이 있고, 그 위에 나무가 있고, 산이 있는 거다.”, “산도 어쩌면 그냥 산인 줄 알았지만 바다에서 온 것 같다.”, 이런 얘기를 막 하게 돼서. 첫째가 8살인데 그런 얘기를 해서 되게 놀랐거든요. 그래서 “너 시상이 넘치는구나.” 막 이러고. 교육적으로 생각을 하고 온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적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요.)

- 나: 평소에 여행을 자주 다니시나요?

- 아내: 네. 많이 다녔죠.

- 나: 그러면 지금까지 다녔던 곳들이랑 이곳(사량도)의 차이가 있을까요? 사람이라든지, 펜션이라든지. 이곳만의 독특한 것들이 있었나요?

- 아내: 만약에 요정도 바다에 꽃게를 이렇게 파면은 나오는 바다가 강원도에 있었다면 거기는 애들이 진짜 많았을 거예요. 근데 여기는 일단 기본적으로 섬이기 때문에 찾는 관광객이나 어린아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편하게, 여유 있게 즐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염소가 지나갈 때 차를 잠깐 세울 수밖에 없잖아요? 염소가 도로 위에 있으니까. 그럴 때도 (도로 위에) 저희 차 밖에 없어요. 뒤에 차들이 없어요. 설령 뒤에 차들이 있어도 그냥 다 같이 (염소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요. 그런 여유로움이 편했던 것 같아요.

- 나: 그 말인즉슨 오히려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에 더 좋았다는 말인가요?

- 아내: 네, 맞아요. 반대로.

- 아내, 남편: 불편함 속에서 얻는 재미가 또 있었어요.

- 나: 아이들의 변화 말고 본인들도 변화가 있었나요? 스스로 느끼기에. 혹은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기에?

- 남편: 어..., 제가 왔을 때는 훨씬 더 (아내가) 현지인스럽다는.... (전원 웃음) 약간의 이질감도....

- 나: 원래 적응을 잘하시는 편인가요?

- 아내: 그런 것도 있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너무 재밌었고. 와서 쑥 캐러 여기 뒤에도 많이 갔고, 저랑 여기 사모님(단디해)은 쑥 같이 캐고, 애들은 그냥 무당벌레 잡고, 놔주고, 잡고, 놔주고 그러고. 뭐 그런 식으로 별 거 안 해도 너무 재밌었어요.

- 나: 시간은 빨리 갔나요?

- 아내: 시간 빨리 갔어요.

- 나: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오실 생각이신가요?

- 아내: 아, 기회가 되면이 아니라 진짜 그냥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다시 오고 싶고. 저는 이미 주변에 애기 엄마들이나, 좀 아는 친구들한테 많이 소개했어요. 사실 많이들 이번 연휴에 오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좀 늦게 얘기를 한 건지 방이 다 차 가지고 못 온 경우도 있거든요.

- 남편: 처남도 왔다 갔잖아.

- 아내: 아 맞다. 제 동생도 지난 주에 다녀갔어요. 애가 두 돌도 안 됐는데. 19개월짜리 애 데리고. 저는 약간 병원이 없으니까 말렸는데 그래도 사진으로 너무 예쁘다고, 제가 사진을 좀 보냈었는데, 예쁘다고 막 오고 싶다고 그래서 다녀갔어요. 3박 4일. 2박 3일 있는다고 왔다가 너무 좋다고 3박 4일 멍 때리고 갔죠. 재밌게 있었어요. 여기 꽃게 잡고, 회 떠주시는 거 먹고, 뭐 구경하고, 드라이브하고.
 


 느닷없는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허물없이 진솔하게 답변을 해주었고, 이를 통해 나는 사량도를 찾는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쯤 되니 이 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이 섬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이번에는 탁형(돈키호테)과 어머니(단디해), 그리고 아버지(로시난테)를 인터뷰해봤다.



- 나: 이곳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 탁형(돈키호테): 그냥 일반 다른 펜션이면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와서 방 안내받고, 자고 그냥 가. 가면 끝이야. 많은 펜션들이 그래. 우리 집은 좀 달라 근데. 왔다가 재방문율이 거의 50%야.

- 나: 이유가 뭔가요?

- 탁형(돈키호테): 소통을 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 나: 어떤 방식으로요?

- 탁형(돈키호테): 제일 큰 건 소주 한 잔이지.

- 어머니(단디해): 대화 많이 하고.

- 탁형(돈키호테): 바비큐 할 때 소주 한 잔 먹고 가라고 하는 손님들이 있으면 그걸 거부 안 하고 가서 한 잔 먹고. 그러기 전에 형님이랑 소주 한 잔 먹으러 왔다 하면서 술 먹고 있으면 그냥 가서 옆에 앉아 버리는 거지. 그러면 누가 싫다 그래. 얼마 전에 101호도 그랬잖아.

- 나: 놀러 온 손님들이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데도 먼저 가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 탁형(돈키호테): 그렇지. 상황은 좀 봐야지 근데.

- 나: 의도하고 그런 건가요? 영업적인? 아니면 자연스럽게 하시는 건가요?

- 탁형(돈키호테): 영업은 아니야. 마음이 가서 그렇게 가는 거지.

- 나: 손님들이랑 계속 연락도 해요?

- 탁형(돈키호테): 그렇게 그냥 친구가 된 사람들이 나는 너무 많아.

- 어머니(단디해): 연락도 하고, 탁이한테는 (생선) 뭐가 잘 잡히냐고 계속 연락 올 거고. 나 같은 경우에는 지금 가면 뭐가 좋냐. 뭐 할 수 있냐. 안부 묻는 사람도 있고.

- 나: 그냥 손님이 안부를 물어요?

- 어머니(단디해): 어어. 오늘 1호에서 5호로 옮긴 사람 있잖아. 그 손님은 올 때마다 섬에 뭐가 아쉽냐고 오기 전에 항상 문자를 줘. 그럼 나는 괜찮다 하지. 그런데도 많이 사 왔었어. 어묵 있잖아. 부산에서 사니까. 제일 맛있는 어묵 가게 가 가지고 사 오고. 그래서 내가 갈 때 있잖아. 쑥 뜯은 거. 쑥떡 해 먹으라고 주고 그랬거든.

- 탁형(돈키호테): 그래서 친구 된 케이스잖아. J형님.

- 어머니(단디해): 그래. 처음에 (낚시에 관해) 묻더라고. 그래서 우리 아들이 잘한다 하니까, 탁이를 불러냈지. 앞에서 탁이가 낚싯대 채비랑 무슨 줄을 쓰는지 설명을 하는데, 참 유심히 듣더라고. 그러다가 이제 서로 (친해졌지). 이제 잠은 거의 탁네서 자지.

- 탁형(돈키호테): 나 서울 갔을 때. 프러포즈할 때. 호텔 잡아주고. 첫날에.

- 어머니(단디해): 그리고 감자 있잖아. (식탁에 있는 요리된 감자를 가리키며) 이거. 다 그 집 감자다. 택배로 계속 보내준다. 지금까지 한 4박스 보냈지.

- 탁형(돈키호테): 또 근데 어떤 이에겐 우리가 그냥 펜션일 수가 있어. 소통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 나: 특징이 있나요? 잘 통하는 손님의 유형이라든지.

- 어머니(단디해): 조용하게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보다는 뭔가 좀 어울리고 싶어 하는 사람하고 맞긴 맞지.

- 탁형(돈키호테): 먼저 와서 (말 걸어주고) 해주는 사람한테는 우리가 또 해주기가 쉽지.

- 어머니(단디해): 손님도 다 인연이 있더라. 자기 집에 맞는 인연이. 아무리 그 집이 좋다고 해도 안 오는 사람은 절대 안 오고. 아무리 집이 헐어도 늘 그 집에만 가는 사람들도 있고.

- 아버지(로시난테): 그렇다고 너무 이쪽 (탁형, 어머니) 생각만 해서는 안 돼. 기본적으로 여기는 상업적인 공간이니까. 돈 받고, 하루 재워주고, 보내고. 단골이 와서 좋지만 그렇다고 단골이 와서 같이 사는 게 아니니까. 손님하고 주인 하고. 그런 거라면 서로가 냉정하게. 정을 나누는 거야 좋지만 너무 많은 걸 원해서도 안 되고, 너무 많은 걸 줄 수도 없고. 그런 적당한 거리. 항상 그걸 가슴에 새겨야지 서로가 상처가 안 생겨. 지금 당장 막 가까워지는 것보다 상처가 조금 생기더라도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오히려 더 낫고, 오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왜, 우리는 펜션이기 때문에. 한 집에 사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과 우리의 관계. 호스트와 게스트의 관계.

- 어머니(단디해): 아버지 말도 맞다. 그래서 기억은 나지만 아주 더 절친한 관계는 맺는 사람은 없어.

- 나: 선이 있다는 말인가요?

- 어머니(단디해): 선이 있고, 단계가 있지. 이 단계에서 저 단계까지는 가지 않고, 이 단계에서 안 오는 거지.

- 나: 어느 정도 거리는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정을 주고받고 하는 건가요?

- 어머니(단디해): 그렇지. 정을 주고받지. 여기 왔을 때는 또 더 그렇고. 중간에도 연락이 오기도 하고.

- 나: 마지막으로, 사량도가 어떤 섬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 어머니(단디해): 나는 사량도가 이대로라면 좋겠어.

- 나: 이대로라면?

- 어머니(단디해): 이대로. 더 이상의 큰 변화도 싫고, 더 이상 침체되는 것도 싫고. 이 약간 부족한 듯한 자연 상태에서 (있는 거). 자기의 작은 안식처로서 가끔씩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곳.

- 탁형(돈키호테): 나도. 나도 바로 생각하기를 휴식처라고 생각했다. 뭐 낚시하러 오고 싶으면 낚시하러 오고. 쉬고 싶으면 쉬러 오고.

- 아버지(로시난테): 통영에 ktx 뚫리고 하면 서울 자본들이 들어올 수 도 있고, 변할 수 있는데. 변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우리) 가족들의 마인드라고 할 수 있겠지. 나도 그렇고, 어머니도 그렇고, 우리 탁이도 그렇고.

- 탁형(돈키호테): (변하게 되면) 변화를 따라가야지. 또.


 사량도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맞이하는 이들의 솔직한 심정. 손님도, 주인도 아닌 입장에 서서 내가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




 대항해수욕장을 향하는 길목에는 정호승 시인의 ‘바닷가에 대하여’란 시의 한 구절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혀있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게 좋다.’



  살기 대신에 사량도: https://brunch.co.kr/@jungjam/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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