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트 사장이다. 여러 일을 전전하다 여차저차 이 자리에 이르게 됐다. 생각했던 것보단 일이 고되지만, 나름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맞지 않는다고 두세 달 만에 때려치운 직장이 벌써 여럿, 어쩌면 드디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까지 일이 술술 풀렸다고만은 할 수 없다. 주위에 하나 둘 생기는 편의점에 손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청과물을 들여와야 했고, 5만 원 이상 구매하면 집까지 무료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해야만 했으니까. 거기에 더해 폐점 시간을 10시에서 12시로 늘리면서 직원을 한 명 더 채용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최저시급이 올라 직원을 한 명 더 구하는 것이 망설여지긴 했었다. 근데 뚜껑을 열어보니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다. 우리 마트의 새로운 식구가 된 이놈이 일도 깔끔하게 잘하면서 손님들에게 싹싹하게 하는 게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종종 늦게 온다는 흠이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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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트 직원이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 처음부터 이 마트에서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목적으로 찾은 일이었으니까. 반년 정도 빡세게 벌어 스펙 쌓을 학원을 다니면서 다시 취업준비를 할 요량이었다. 매일 아침 잘 빠진 양복을 입고 출근길에 올라, 회사 1층 카페에서 사원증으로 할인받은 커피로 잠을 깨우고, 정신없이 일하다 사수 손에 이끌려 옥상에 올라 푸른 하늘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 태우고는, 동기들과의 가벼운 맥주 한 잔으로 업무 스트레스를 잊은 뒤, 충만한 하루를 보냈다는 만족감에 휩싸여 잠에 빠지는 나날들을 고대하며.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재미는 물론 보람까지 느끼는 나 자신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취업이 아닌, 이곳에서 일을 배워 언젠가는 내 마트를 갖겠다는 것으로. 사장님도 이런 내게 많은 응원과 조언을 해주고 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좋은 사람이다. 쓸데없는 걱정과 말이 많아 좀 피곤할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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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느 종교의 말마따나 종말이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전염병이 창궐해서 마스크를 끼지 않고서는 밖을 돌아다닐 수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 버스 안에서 기침이라도 한 번 했다간 날카로운 시선에 몸이 베일 지경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마트 매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진 않지만, 혹시 모른다. 전염성 높은 이 병에 걸린 어떤 사람이 자각 없이 우리 마트에 한 명이라도 왔다 간다면…, 그게 인터넷에 퍼져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낙인이라도 찍힌다면…. 아찔함에 신경이 곤두선다. 진열한 마스크는 금세 동이 나버렸고, 이제는 발주를 넣어도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직원들이 사용할 마스크는 조금 쟁여놓긴 했지만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다. 지금껏 여러 위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불안에 떨며 매일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하루라도 장사를 못 하게 되면 대체 손해가 얼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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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틀면 온종일 전염병과 사이비 종교 얘기뿐이다. 사이비 종교가 전염병을 전국적으로 퍼트렸다나 뭐라나. 누가 무엇을 믿든 자유지만 뉴스에 나오는 정보들을 보면 확실히 저 종교는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교리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나이 또래 수만 명이 그 말도 안 되는 것을 신봉한다는 사실이 더 괴상하게 느껴진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다양성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런 유형의 사람들까지 다 품어야 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다양성 이야기가 나왔기에 하는 말인데, 같이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참 가지각색이다. 우리 마트는 사장님을 포함해서 총 5명이 함께 일하는데 그 개성들이 얼마나 뚜렷하고 제각각인지, 가만히 앉아 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코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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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생겼다. 직원 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이모가 코로나 검사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연락해 왔다. 혹시 지금 매일같이 뉴스에서 나오는 사이비 종교냐 물으니 다행히 그건 아니란다. 그냥 갑자기 열이 나고 기침이 나서 불안해서 받는 거란다.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이틀 정도가 걸리는데 마트에 못 나갈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일단은 걱정 말고 몸이나 잘 간수하시라고 했다. 실제로 못 나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며칠 정도 내가 이모 대신 일을 더 하면 되니까. 진짜 문제는, 이모가 양성으로 결과가 나와서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전염병 검사를 받고, 그 기간 내내 장사를 접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고민을 해보았다. 내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모든 것을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이모의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사를 접는 것, 또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입 다물고 장사를 계속하는 것. 직원들에게 이모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장사를 계속하다가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최고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사를 접었는데도 양성으로 나오면 최악이 될 것이었다. 혼자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동생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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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트 직원이자 사장의 동생이다. 형이 내게 고민이 있다며 찾아왔다. 순옥 이모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게를 계속해야 할지, 잠시 쉬어야 할지 고민이라며 내 의견을 물었다. 요새 들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안 좋아졌기에 마침 잘됐다 싶어, 이 기회에 조금 쉬는 게 어떠냐고 형에게 제안했다. 형은 내 표정을 보더니 “쉰다는 얘기가 나오니까 아주 웃음꽃이 폈구나. 사장인 형은 속이 썩고 있는데. 너 가게 하루 문 닫으면 손해가 얼마인지는 알고 쉬자고 하는 거냐?”라고 쏘아붙이며 한숨을 쉬고는 자리를 떠났다. 아니, 동생이라고 월급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가게도 가끔 가다 얼굴이나 비추러 오는 주제에 왜 화를 내는 거지? 나는 그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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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한테 괜히 물어봤다. 그냥 직원도 아니고 동생이라는 놈이 하루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으니…. 그렇게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대체 언제쯤 철이 들지 모르겠다. 혼자 고민해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가게 문을 닫았을 경우의 후폭풍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나뿐인 것 같다. 동생마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직원들의 생각은 오죽할까. 생각을 해보자. 그 괴상한 종교가 아닌 이상 순옥 이모가 전염병에 걸렸을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가족 중에 확진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모는 종종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가게를 쉴 필요는 없다. 이모가 음성 판정만 받는다면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좋아, 당장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직원들에게는 내가 대충 둘러댈 테니 결과가 나오면 즉시 알려달라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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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이 가장 뚜렷한 사람이라고 하면 단연 사장님과 사장님 동생인 영찬이 형이겠지만, 가장 특이한 사람으로는 순옥 이모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이 일했음에도 이름 외에는 이모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근무 시간이 많이 겹치지 않아 그런가 싶었지만, 나 이외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마트 초창기부터 거의 4년을 넘게 본 사장님도 나보다 크게 나을 게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적잖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냥 애초에 말이 없고 어울리기 싫어하는 성격의 사람인가 싶었지만, 우연히 들었던 통화를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어딘지 음침한 구석이 있는, 언젠가 돈을 빌리고는 연락이 두절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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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문제가 복잡해졌다. 이모가 양성이 나왔다. 아니 대체 어떻게 양성이 나온 것이냐 끈질기게 물으니 사실은 자기가 그 사이비 종교의 신도란다. 망할! 이제 나를 포함해서 모든 마트 직원들이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밝히고 당장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모가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는 걸 내가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다. 이 상황에 괜히 분란만 더 일으키게 될 것이다. 일단 모든 직원들에게 내가 알고 있었다는 것은 숨긴 채 상황을 설명하고 절차에 따라 정부기관에 신고를 했다. 다행히 직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순옥 이모는 역시 뭔가 좀 이상했다며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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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갑자기 직원들을 불러 모으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순옥 이모가 지금 횡행하는 전염병 양성 판정을 받았으니 우리도 전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거기에다 실은 이모가 사이비 신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덧붙였다. 뭐? 처음에는 너무 급작스러워서 다들 얼빠진 얼굴이었다. 아니 근데 잠깐, 만약 내가 양성이라면 요 며칠 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당장 가족들과 여자친구, 같이 밥을 먹었던 여자친구의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 마트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생겨서 나도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 격리를 하셔야 될 것 같다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어가는 목소리로 사과까지 해가며 말을 전했다. 순옥 이모가 전염병에 걸린 것도 모자라서 사이비 신도였다니….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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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모든 직원의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한 명이라도 양성이 나왔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4년을 봐온 사람이 사이비 인지도 몰랐다니, 스스로가 한심하다. 앞으로 직원을 뽑을 때 조금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이모가 일은 성실하게 곧잘 했는데…. 그런데 다시 마트를 열고나서부터 직원들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 나한테 뭔가 화가 난 듯한 느낌이다. 평소처럼 장난을 쳐도 반응이 영 시답지 않다. 같이 일했던 순옥 이모가 사이비 신도였다는 것이 큰 충격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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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영찬이형 말로는, 사장님은 순옥 이모가 전염병 검사로 마트에 못 나오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한테는 이모가 교통사고가 나서 잠시 못 나온다고 말해놓고 말이다. 거기에다, 뭐? 직원들이 쉴 생각밖에 안 한다고? 믿었던 사장님이었는데 이젠 꼴도 보기 싫어졌다. 대체 어떻게 직원들의 건강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 있지? 만약 그 사실을 알자마자 마트를 닫고 우리한테 알려줬다면, 나 때문에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가족들이 자가 격리를 할 필요도, 그들에게 내가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배울 점이 많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저 돈 밖에 모르는 속물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 밑에서 좋다고 헤실헤실 일을 배우고 있었다니. 병신같이…. 배신감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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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이가 마트를 그만뒀다. 배신감에 더 이상 일을 같이 할 수 없다나? 특별히 신경 써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하여간 요새 어린애들은 너무 예민해서 탈이다. 서운하고 섭섭한 것도 많고 배신감 느낄 것도 참 많다. 사회에 나가면 더 한 일이 쌔고 쌨는데, 그걸 모른다. 뭐 직원이야 또 뽑으면 그만이니 상관없지만. 우려와 달리 순옥 이모 사건은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참 다행스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