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A가 오랜만에 연락을 하더니, 다짜고짜 내게 사과를 한다. 5년 전 아버지 장례식 때 운구를 부탁했었는데, 그걸 거절한 게 계속 마음이 쓰인다고 한다. A는 늦은 새벽,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자리를 지켜주며 잠시나마 슬픔의 억누름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게 나를 웃겨주어 고마웠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A는 내게 거듭 사과를 한다. 이 전화를 계기로 우리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잘 지냈니, 어떻게 지내니, 가족들은 잘 있니,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자연스레 근황을 주고받는다. 그때는 어려 몰랐다고 너는 주장하지만, 나는 네가 지금도 어리고 철이 없다, 고 생각한다. 아이고, 이놈아.
금요일,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뒤 지친 심신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나와 같이 지쳐있는 사람들. 지쳐있는 삶 속에서 오랜 친구 B의 전화를 받았다. 부고 소식이었다. C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B와 C가 아버지 장례식장에 함께 찾아왔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부고를 전하기 얼마 전 만났을 때까지 본인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며 C는 내게 원망 섞인 눈초리를 보냈었다. B를 만나 이번엔 C의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함께 찾아간다. B와 C는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트리고, 나는 조금 떨어져서 애써 눈물을 참는다. 휑한 장례식장, 마주 앉은 C에게 1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몰라왔던 가정사를 듣는다. 너도 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뎌왔었구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속 깊이 C를 위로하며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다. C가 조금이나마 슬픔의 무게에서 벗어나 숨을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다음 주에는 D의 결혼식이 있다. 후배지만 나이는 같아, 연이 계속되는 몇 안 되는 대학교 인연 중 한 명이다. D는 본인은 오지도 않으면서 동기 단톡방에 우리 아버지의 부고를 올려 잘 알지도 못하는 후배를 오게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든 전적이 있다. 집도 잘 살고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삶의 예민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밤에 대리운전을 할 정도로 골 때리는 자식을 만나 결혼을 하는 예비 신부는 일면식도 없지만, 좋은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선다.
어느덧 결혼식도, 장례식도 많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연락이 반갑지만은 않은 나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계속해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친구의 슬픔을 진심으로 나누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계속해서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