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오영광이 중국 마켓 입구의 승려들을 관찰하다
앙드레 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3. 오영광이 중국 마켓 입구의 승려들을 관찰하다
여배우 사건 이후 신도들은 칼같이 시간을 지켰다. 오영광도 예배시간이 될 때까지 차 안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대형 중국 마켓 건너편은 오영광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였다. 그곳에 주차하면 장바구니를 들고 길을 오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지루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켓 입구 양쪽으로 기둥처럼 서있는 승려 두 명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영광의 나라 승려들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나라에서는 승려들이 폭넓은 재색 바지저고리를 입고 긴 장삼을 걸치며 점잔을 떠는데 마켓 앞 승려들은 한쪽 어깨를 다 드러내는 튜닉 비슷한 것을 걸치고 맨다리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복장과 체면을 중요시하는 오영광의 눈에는 그 모습이 몹시 궁색해 보였다. '모름지기 종교인이란 좀 있어 보이게 차려입어야 폼도 나고 신도들의 존경도 받는 법인데 차림새가 저리 허접하니 누가 우러러보겠는가?' 오영광은 혀를 끌끌 찾다.
오영광이 처음 그곳에 왔을 때는 승려 한 명만 마켓 앞에 서있었다. 승려는 무슨 항아리 같은 것을 껴안고 있었는데 마켓을 출입하는 손님들이 그 안에 돈을 넣어 주었다. 그러니까 항아리는 시주단지였던 것이다. 가만히 지켜보니 돈을 넣는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 이 중은 가만히 서서 꽤 괜찮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저 놈이 승려를 가장해 쉽게 돈을 버는 사기꾼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 중에게서는 도를 닦는 스님이 풍겨야 할 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영광은 자신이 종교인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의 승려나 사제 심지어 무당이나 점쟁이에게서 뿜어 나오는 영적인 기를 감지 할 수 있었다. 그의 느낌에 따르면 항아리를 들고 서 있는 남자는 불력이 한참 모자란 땡중이거나 아니면 머리를 빡빡 깎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았다.
그 땡중이 홀로 신나게 돈을 벌고 있던 어느 날 또 다른 승려가 항아리를 받쳐 안고 나타났다. '왜 갑자기 시주승이 둘이 된 걸까?' 오영광은 의아했다. 항아리를 두 개로 늘린다고 해도 마켓 손님들은 어느 한쪽에만 돈을 넣을 것이니 사찰의 수입은 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는 갑자기 시주승이 둘이 된 의아한 상황을 놓고 여러 가지 가정을 해 보았다.
첫 번째 가정은 두 승려가 각각 다른 절에서 파견된 시주승이라는 것이다. 중국 마켓 입구의 시주 항아리가 큰 수입을 가져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두 번째 절에서 질세라 그들의 시주승을 파견한 것이다. 오영광은 이 가정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모순이 있었으니 그가 아는 한 빠리 시내에 불교 사찰이라고는 딱 한 곳뿐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찰은 빠리의 동쪽 끝 벵센느 숲에 자리 잡고 있는데 캄보디아, 스리랑카, 네팔 등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기일마다 모여 축제를 벌리기도 한다. 오영광도 한 번 구경 간 적이 있는데 신도들이 사찰 마당에서 닭고기와 소고기 꼬치를 즉석구이로 파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심지어 부화 직전의 알을 삶아 먹는 그 말로만 듣던 괴기한 음식이 버젓이 사찰 마당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에서 고기와 생선은 물론 계란까지도 금하는 오영광의 나라 불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두 번째 가정은 사찰이 현재 지독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급한 마음에 시주승을 한 명 더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쪽 단지에 모두 돈을 넣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보아 항아리를 추가한 것이 효과는커녕 사찰의 물욕만 드러내 보이는 듯했다. '도를 닦는 승려들이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일까?' 저들을 파견한 지주승은 불공이 높은 자임이 분명할 텐데 항아리 두 개의 역효과를 가늠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따라서 이 가정도 설득력이 떨어졌다.
결국 오영광은 세 번째 가정에 도달했다. 그것은 저 두 놈이 모두 머리만 빡빡 깎은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한 놈이 중노릇을 하며 돈을 잘 벌자 다른 한 놈이 질세라 반대편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실망스러운 가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몇 가지 증거를 잡아 낼 수 있었다.
한쪽이 시주돈을 받을 때면 반대편 사기꾼이 안 보는 척하며 힐끔힐끔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그의 표정에 나타난 미세한 시기심을 오영광은 놓치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틈을 타서 두 사기꾼은 잽싸게 자신들의 항아리 속에 시선을 꽃아 수입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게다가 단 한 번도 그들이 서로 말을 섞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영광은 두 사기꾼 중 한 놈과 똑같이 생긴 민둥머리 남자가 번들번들한 줄무늬 와이셔츠를 입고 어떤 여자와 시시덕거리며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영광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갔지만 분명 그 땡중의 얼굴이 분명했다.
그날 이후로 마켓 앞의 두 땡중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더 이상 가정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영광은 정의로운 성직자였기 때문에 저 몹쓸 놈들이 종교인 흉내를 내며 서민들의 정성이 담긴 돈을 갈취한다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저들의 반들반들한 목탁같은 민머리를 손바닥으로 '딱!' 때리며 혼줄을 내주고 싶었으나 개신교 목사가 길에서 사람을 때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오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두 시주승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항아리를 들고 마켓 입구를 지키더니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제 이곳에서 벌만큼 벌었으니 꼬리가 더 길어지기 전에 일을 접은 것이 분명하다. 사기꾼 치고는 절제를 아는 꽤 똑똑한 놈들이었다. 오영광은 늘 배경처럼 서있던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