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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Jun 21. 2016

행복이 묻어나는 집안일

계속 반짝이길



    요즘 부쩍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남편 출근하고 나면 뭐해요?"이다. 나 같았어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있다면 비슷한 질문을 던졌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이 질문에 답만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있을까 싶어 머뭇거리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싶다.


    결혼을 하고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지방에 신혼집을 얻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퇴사를 했고, 당분간은 쉬며 적응하기로 함께 결정하였다. 당장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집 정리를 하며 갈 바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며 옷가지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새로 사 온 청소기가 소리를 내며 제 할 일을 척척 해냈다. 인터넷으로 익숙지 않은 요리 정보를 찾아 밑반찬을 만들어두었다. 햇볕에 바삭하게 마른빨래를 차곡 개어 넣기도 하고 선물로 받은 다리미로 남편 셔츠를 다리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근처 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녀오는 날에는 오히려 바쁜 기분마저 들었다.


    생각보다 집안 구석구석을 돌보는 일은 꽤나 많은 손을 필요로 했다. 자연스레 엄마가 떠올랐다. 청소를 하거나 밥을 지을 때에도, 화분에 심긴 다육이를 돌볼 때나 침대 위 이불을 정리할 때에도- 어디 하나 엄마의 손이 안 간 곳이 없겠구나 싶었다. "집안일은 해도 끝도 없는데, 티는 잘 안나지"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엄마 얼굴이 그려졌다. 그때는 대충 짐작하며 끄덕였더랬는데, 이제는 제법 며칠 사이임에도 무슨 말인지 알듯 했다. 그리고 초저녁인 시간에도 곤히 잠들었던 엄마가 이해도 되었다.



    집안일에는 많은 생각과 계획이 필요했다. 밑반찬 한 가지를 만들더라도 육수를 낼 시간이며 채소를 손질하는 일에도 순서를 정하고 계획해야 했다. 전체적인 집안일에도 일련의 과정을 세우는 일이 필요했다. 출근해야 할 남편을 위해 준비하는 아침식사는 전날 밤에 생각해두고 시간을 계획해야 했다. 아침을 분주히 준비하면서 남편의 알람 소리에 남편을 깨우는 일도 잊지 않았다. 세탁기를 돌려두고 설거지를 해야 기다리는 시간 없이 집안일들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두식구 살림하는 것도 꽤 많이 신경 쓰고 계획하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우리 엄마는 두 아들과 두 딸, 여섯 식구 살림을 어떻게 그 긴 세월 동안 구멍 한 번 없이 메워왔을까 싶었다.


    분명 집안 곳곳을 돌보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한상을 차려내는 일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나 싶었다. 나른한 오후 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며 남편 셔츠를 다리는 일도 근사했다. 지금 쯤 무슨 일을 하고 있으려나 저절로 남편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 옷보다 더 정성껏 다림질을 해 나갔다. 바삭하게 마른 빨랫감에 향긋하게 배어있는 섬유유연제 냄새도 좋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창틀이며 선반을 닦고 정리하는 일도 즐거웠다.


    우리 엄마도 분명 이러한 행복감이 있었을 거다. 다만 좀 더 세심하게 같이 해주지 못했던 것에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오래 쓴 청소기를 바꾸어야겠다던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혼집에서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녀석과 같은 것으로 더 구매를 했다. 통화하며 슬쩍 이야기를 하자 시집 간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기어코 돈을 부치시겠단다. 이사를 앞둔 어머님 것도 하나 같이 구매했으니 걱정 말라고 재차 이야기하자 그제야 웃으며 "고마워 딸, 사위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줘"하신다. 친정집에 새로 온 청소기 돌릴 때면 멀리 시집보낸 딸 생각이 나겠다 싶다.



    어렸을 때 하교 후엔 늘 엄마가 반겨주는 것이 좋았다. 집 문을 열면 베어 나오는 간식 냄새도 좋았다. 또각또각 칼질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일도, 엄마가 돌보는 화분에 새로운 꽃이 피거나 잎이 생기는 걸 보는 게 좋았다. 계절이 바뀔 때면 새로운 옷들이 옷장을 메우고 있는 게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손때 묻은 집안 곳곳이 반짝 빛이 났던 것 같다. 그 빛이 우리 네 남매 곳곳에 묻어있겠구나 싶다. 엄마의 손떼가 구석구석 묻어난 우리 집이 계속 계속 행복하게 반짝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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