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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Jun 06. 2016

당분간은 이중생활

세상에 있는 많은 소리

    세상에 이토록 많은 소리들이 있는 줄 몰랐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다른 감각보다 청각을 많이 사용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달그닥소리에 옆 집 누군가의 출근을 알게 되고, 창문 밖 차들이 움직이는 소리로 집 앞 횡단보도가 초록불로 바뀌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우리 집 어딘가에서 나는 소린가 싶어 몇 번이고 소리의 근원을 찾던 집 근처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때때로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는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가 퇴근 즈음 걸어 들어오는 남편의 발자국 소리에는 반가운 마음이 넘치는 걸 보면 소리라는 녀석이 퍽 신기하게 느껴졌다.


    혼자 있는 시간에 내가 만들어 내는 소리들이 꽤 컸다. 혼자 집안을 거닐 때 들리는 발자국 소리마저 크게 느껴졌으니 청소기를 사용할 때나 세탁기라도 돌리는 날이면 엄청난 소음이 밖으로 세어 나가는 것 같아 창문조차 쉬이 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작게나마 라디오를 틀어두거나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어두어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들을 줄여보려고도 했다. 그럼에도 소리들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졌다.

    안개를 머금은 날이나 화창한 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임에도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했다. 음식을 만들 때 들리는 온갖 소리에도 귀기울이게 되었다. 재료마다 사각사각 서걱서걱 저마다 내는 소리가 달랐다. 심지어 옆에서 새근새근 잠든 남편의 숨소리도 피곤한 정도에 따라 다른 소리를 만들어내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동안 몰랐던, 그리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상의 많은 소리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결혼 후 타지 생활을 시작하고 주고받는 문자보다 짧게라도 통화하는 것이 더 풍요롭게 느껴졌다. 수화기 건너편 들려오는 소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대면하고 마주하며 이야기하던 그네들이었는데, 수화기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의 작은 헹간에도 여러 감정들이 섞어있었구나 싶어 더욱 고맙기도, 또 미안하기도 했다. 아마 당분간은 혼자 만들어 내는 소리들이 민망해 발뒤꿈치 살짝 들며 걸으면서도, 반가운 당신들의 이름이 핸드폰에 울릴 때면 큰 소리에 언제 민감했냐는 듯 수화기를 붙들고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이중적인 생활을 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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