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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Mar 26. 2016

마산행 버스

따뜻한 봄 볕에 그리워지는 엄마냄새

      세탁소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겨우 내 입었던 코트를 정리하고, 세탁소에 맡겨두었던 트렌치코트를 걸쳤다.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하던데….'싶어 걸쳤던 트렌치코트를 거울 옆 의자에 걸쳐두곤 다시 두툼한 겨울 코트를 걸쳤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 이내 다시 트렌치코트를 입는다. 안에 도톰한 카디건을 껴 입었으니 괜찮겠지 하며 미리 챙겨둔 짐을 들고 현관으로 향한다.


     엄마의 배웅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마산 행인데, 엄마도, 나도 여전히 퍽 익숙하지가 않다. 엄마는 행여 먼길 다녀오는 딸이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스카프나 목도리라도 챙겨가지 않겠느냐며 거듭 묻는다. "카디건이랑 이거 저거 챙겼으니까 괜찮아, 다녀올게요."라고 말하고는 인사를 건넨다.


     아홉 시도 되지 않은 토요일, 동네는 퍽 조용한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고속터미널은 꽤나 분주하다. 반짝이는 햇빛에 더욱 생동감이 넘친다.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조금 고민하다 티켓 발권 창구 맨 끝에 조심스레 섰다. 줄은 생각보다 빨리 줄어갔다. 내 차례가 되어 조심스레 상황을 이야기하자, 간단하다는 듯 시간이 바뀐 티켓을 내민다. 바쁜 걸음으로 승차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었다. '후아- 긴 여정의 시간이군.'


     한 달 전쯤, 결혼을 앞두고 퇴사를 했다. 한 번의 이직 후 마음을 잡고 다니던 곳이었다. 지난 직장과 마찬가지로 일은 바빴지만, 신기하게도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은 너무도 편했다. 출근 길이 싫지 않았고, 때로 대학교 때 품었던 흐릿했던 마음이 선명하게 되살아나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시간들도 늘어갔다. 그런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했지만, 이런 직장을 그만두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산이란 곳에 남편을 따라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아쉬워하였지만 서로의 앞길을 축복하며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퇴사 후 명분 있는 두 달여간의 휴가가 주어졌다. 그리고 어영부영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손때 묻은 책들과 계절 지난 옷을 정리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줄 청첩장에는 작은 메모를 적어 넣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채워갔다. 특히 엄마와의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별히 노력이랄 것도 없지만,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엄마와의 시간들을 채워갔다. 함께 장을 보고, 틈나는 대로 엄마에게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함께 새벽기도를 가기도 하고, 간식을 만들어 먹고는 함께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렇게 엄마와의 시간을 늘려갔다. 시간이 늘어가면서 헤어짐의 서운함도 덩달아 커져갔지만, 누구 하나 서운함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였나, 그냥 오늘따라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나나, 배웅해주는 엄마나, 퍽 어색했던 것이.


     분명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삶에 익숙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겨울 코트가 한창 익숙했다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듯, 엄마나 나나 나의 결혼으로 인해 바뀌게 될 생활에 곧 익숙해질 거다. 그러니 담담하게 주어진 남은 한 달여간의 시간을 함께 복닥거리며 채워가야지. 마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이다 보니 창 밖은 이미 봄기운이 가득하다. 따뜻한 봄 볕에 금세 엄마 냄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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