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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Dec 18. 2021

유모차 없이 나서는 길

엄마가 되어가나 봐



“여보,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오늘 장 보러는 나 혼자 얼른 다녀올게! 소망이랑 좀 놀고 있어요.”


   끙차, 양손에 힘을 주고 유모차를 밀며 나서야 할 것 같은 길을 유모차 없이 빈손으로 나서고 있는 게 퍽 어색해 갈 곳 잃은 양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아파트 입구를 나서니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겨울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상쾌한 찬바람이 반가웠던 게 얼마만인가 싶어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소망이가 혹여 감기에 걸릴까 찬바람이 불어오면 종종걸음으로 걷기 바빠 겨울이 다가온지도 모르고 있었구나 싶었다. 모처럼 이어폰도 꽂았다. 귓가에는 동요가 아닌 내 감성이 머물러 있는 어느 시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괜히 들뜬 발걸음으로 육교를 건넜다.


   필요한 물건들을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장바구니에는 소망이 이유식에 필요한 재료들이 하나 둘 쌓여갔다.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손에 들린 장바구니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핸드백과 아메리카노가 들려있던 양 손에 이제는 이유식 재료가 담긴 장바구니가 들려있는 걸 보니 제법 엄마가 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달이면 돌이라니..’

‘이 정도 추위 즈음에 출산을 위해 병원 입원 수속을 밟았던 것 같은데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또다시 겨울의 문 앞이라니.’

   평소에는 소망이에 대해 생각하느라 좀처럼 생각조차 못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다투듯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와, 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만큼 나름 치열하게 육아하며 지내왔구나 싶어 코끝이 괜스레 찡해졌다.



  나는 여전히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유모차 없이 나서는 길이 낯설고 양손에 기저귀 가방과 장바구니가 익숙해진 걸 보면 제법 엄마가 되어 가는구나 싶다. 그리고 그런 지금의 내가, 조금은 어설프고 부족해도 소망이의 엄마여서 참 좋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엘리베이터를 올라가 대문을 열면 따스한 온기와 함께 소망이의 미소가 햇살처럼 쏟아지겠지- 아, 얼른 따뜻한 소망이 꼬옥 안고 싶다!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했던 생각들은 미처 돌아볼 틈 없이 다시 저 수면 아래로 다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머리에는 온통 소망이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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