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과 CSV에 관한 한 흥미로운 논쟁 전반부
얼마 전 런던에서 강렬한 주제의 한 토론회가 열렸는데, 마침 전 세계에 스트리밍 되어 나도 집구석에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영국계 글로벌 금융회사인 Barclays가 후원한 이 토론회의 주제는,
“Is CSR Dead?”
말 그대로 “CSR은 죽었나 아니면 아직 살아 있나?”였다. (위 링크에서 풀영상 시청 가능. 다만, 동영상도 이 요약글도 이 분야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 많음.)
주 토론자는 Triple Bottom Line(이하 TBL) 개념을 전 세계에 퍼뜨린 CSR의 대가 존 엘킹턴(John Elkington), 그리고 마찬가지로 CSV 개념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CSV의 개척자 마크 크레이머(Mark Kramer)였다. 여기에 네슬레의 Public Affairs 글로벌 책임자인 자넷 부트(Janet Voûte)와 화학 업계의 혁신적인 회사 Covestro의 대표인 패트릭 토마스(Patrick Thomas)가 기업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의 강렬한 제목만큼 토론자들의 아우라도, 이 분야의 또 다른 전문가인 사회자도, CSR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일부러 이분법적으로 끌고 간 토론회의 진행 방식도, 그리고 이미 CSR과 CSV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보유한 것 같은 십 수명의 청중 토론자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CSR과 CSV, 그리고 오늘날 비즈니스가 처한 현실에 대해 이렇게 치열하고 수준 높은 대화들이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연말만 되면 럭셔리한 호텔에서 아나운서들이 사회를 보고 주최기관의 설익은 기획 아래 섭외된 패널들이 적당히 피상적인 발표와 토론을 하다가 반나절이나 하루가 가버리는 몇몇 국내의 CSR 관련 컨퍼런스들과 비교도 좀 됐다.
여하튼 영어로 심도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던 지라 모든 내용을 100% 옮겨 적기는 시간 상 무리고, 토론자와 다른 참가자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개인적인 생각과 함께 정리해보련다. 존 엘킹턴과 마크 크레이머의 주장은 이 글에서, 네슬레 책임자 자넷 부트의 주장은 다른 글에서 정리해 올릴 예정.
사회자는 이 토론회가 개최된 계기를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포터 교수와 CSV 지지자들이 CSR은 죽었고 CSV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CSR의 이점이 기업의 평판 정도인데 반해, CSV는 비즈니스 전략으로 기업이 사회, 환경적 가치를 만들어 내면서 경쟁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크 크레이머는 이 입장을 대변한다.
반대로 존 엘킹턴은 CSR을 방어한다. CSR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주장과 함께 CSV는 또 다른 ‘점진주의(incrementalism)’ 방식에 불과하며 CSV로는 지속가능성과 TBL을 달성할 수 없다는 논지로 토론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시작부터 재미난 점은 사회자가 청중들에게 ‘CSR은 죽었나?’에 대해 투표를 하게 한 것이었다. CSR을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CSR을 변호하는 존 엘킹턴 쪽을 지지하는 것이고, CSR이 죽고 CSV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CSV를 변호하는 마크 크레이머 쪽을 지지하는 것이다.
토론회 시작 시점에 진행한 투표 결과는 55:45로 존 엘킹턴이 약간 우세했다.
투표는 네 명 패널들의 발언과 청중토론을 모두 거친 후 토론회 마무리 시간에 또 한 번 진행해서 최종 투표 결과를 확인하고 존 엘킹턴과 마크 크레이머 중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아래부터는 각 패널들의 발언을 요약한 내용이다. 물론, 요약은 자의적으로 했다.
마크 크레이머는 먼저 두 가지를 분명히 하면서 토론을 시작했다. 먼저, 서로 간에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 있지만 TBL의 아버지이자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이끈 존 엘킹턴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음으로, 자신은 CSV에 한 표를 던지지만 그것이 CSR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마크 크레이머의 주장 요지.
- CSR은 필요하다. 그러나 CSR로는 충분하지는 않다. 왜냐면 CSR은 사회에 더 적은 해를 끼치는 것 — doing less harm — 을 핵심으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업은 사회의 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CSV가 CSR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지만 CSV가 CSR보다 사회변화를 위해 더 파워풀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 기업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니즈를 충족시키고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막대한 자원과 역량을 모을 수 있다. 이것은 기업이 성장하고 수익을 얻기 위한 위대한 전략적 기회이기도 하다.
- 수익(profit)의 역할과 정의에 대해 존 엘킹턴과 나는 다르다. 존 엘킹턴은 우리가 자연자원 사용이나 사람들의 복지와 같이 현재 재무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가치들을 다룰 수 있는 새로운 회계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만약 기업이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사회에도 좋고 멋진 일이겠지만, 솔직히 말해 이런 회계 방식은 허구에 가깝다.
- 기업은 현실에 그리고 진짜 수익(재무적인 수익)에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CSV는 사회적 니즈에 맞는 새로운 제품과 시장을 통해 진짜 수익과 Bottom Line을 증가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주장한다.
- 마이클 포터가 말한 대로 ‘profit’은 ‘magic’이다. 왜냐면 기업에게 수익을 가져다주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다면 정부 보조나 자선에 의지할 필요 없이 규모를 키우고 사업을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새로운 자본을 활용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존 엘킹턴의 관점이 가진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직 재무적인 용어로 시장에서 인정되지 않는 가치들을 기업들이 도입하도록 시도하는 데 있다. 그가 주장하는 내용은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무언가를 설득시키려는 것과 다름없다.
- 새로운 회계 시스템이나 기업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브랜딩이나 다른 멋있어 보이는 것들과 진짜 현실을 구분해야 한다. 기업을 실제로 추동하는 진짜 인센티브를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회계 시스템과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이 긍정적인 사회변화에 지금 바로 기여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들이 존재한다.
- 소수의 앞서가는 리더들이 이끄는 변화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NGO/NPO는 미션에 부합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벤처를 만들 수 있고, 기업이라면 사회적 니즈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시장과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정부는 공유가치를 촉진시키는 정책으로 민간기업의 힘을 배가시킬 수 있다.
- CSV는 완벽한 솔루션은 아니고 모든 사회문제가 CSV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기업의 수익성 특히, 단기 수익성은 사회와 세상에 좋은 가치들과 상충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가진 인센티브 시스템을 활용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엄청난 기회들이 있다. 사회, 환경 이슈들을 기회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CSR이 죽었다고 생각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CSV에 한 표를 던지겠다.
존 엘킹턴은 마크 크레이머의 주장을 이어받아 회계 시스템과 경제가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고 짧게 반론하면서 토론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CSR이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다음은 존 엘킹턴의 주장 요지.
- CSR은 비즈니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대화이다. 이 대화는 뿌리가 깊고, 계속해서 진행 중이며,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 1800년대에 노예제 폐지 운동이 일어날 때 CSR 용어는 없었지만 ‘기업을 어떻게 계몽된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가’에 대한 논의가 이미 있었다. 이런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아주 먼 미래에까지 지속될 것이다.
CSR은 단지 회계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해관계자 참여나 보고도 우선이 아니다. CSR은 투명성(Transparency)과 책무성(또는 설명책임; Accountability), 그리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것이다.
- 이런 관점에서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현재 CSR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 최근의 폴크스바겐 문제와 이런 기업을 지속가능성 리더로 선정한 DJSI(다우존스 지속가능성지수), 피에스코와 존웨스트와 같은 부정적 사례들이 그 증거다.
- 그러나 이런 현상들이 CSR의 의미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몇몇 실패들만으로 ‘아기를 욕조 물과 함께 내다 버리려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 위에 언급한 기업들의 경쟁기업 중에서만도 반대로 탁월한 지속가능성 성과를 보이는 기업들을 찾을 수 있다. 기업시민정신, CSR, CSV, 지속가능성 등 자신의 활동을 뭐라 부르든 기업들이 SDGs와 COP21을 위해 매진하는 인상적인 사례들도 현실에서 존재한다.
- ‘CSR은 죽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며 정말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바로 ‘CSR이 그 목적대로 실행되고 있는가?’이다. CSR이 어떤 부분에서는 문제가 존재하지만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논의도 좀 더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문제의 일부는 CSR의 주류화에 있다. CSR은 이제 비즈니스에서 주류적인 개념이 되었고 이런 현상이 벌어지면 되려 희석되기 마련이다.
- 둘째, 포터와 크레이머는 CSV를 진전된(way forward)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이클 포터는 종종 CSV가 어떻게 CSR과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나는 이에 대해 반대한다. CSV는 기껏해야 양쪽 모두에 좋은 ‘윈윈 성과(win-win outcomes)’를 내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속가능성을 TBL 등으로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사실 지속가능성은 그저 양쪽에 좋은 결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성은 성과가 아닌 시스템 차원의 변화이며 파괴적인 변화이다. CSV로는 이러한 변화를 담지 못한다.
- 시스템 변화가 필요한가? 필요하다. 더 나은 자본주의라는 점진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획기적으로 혁신(breakthrough)해야 한다. CSV는 매우 중요한 툴킷이지만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내기에 충분치 않다.
- 마지막으로,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either’ 또는 ‘or’의 세상이 아니라 ‘both’ 또는 ‘and’의 세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직면한 도전과 기회들에 대응할 다양하고 차별화된 방법들을 가져야 한다. CSR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지난 몇 년간 CSR 분야에서 UNGC나 B Corporation 같은 다양한 노력들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CSR이 더 전진하는데 있어 B Corporation의 모토를 강조하고 싶다.
세상 안에서 최고가 되지 말고, 세상을 위해 최고가 돼라. (Don’t just be the best in the world, but be the best for the world.)
존 엘킹턴과 마크 크레이머 모두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사실 좀 익숙한 면이 있었다. 그보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글에서 정리할 네슬레 책임자의 주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평소 네슬레에 대해 리서치 해보고 추측하던 내용들에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정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자넷 부트의 주장을 중심으로 청중의 의견 중 인상적인 부분들과 패널들의 클로징 발언 그리고 최종 투표 결과를 정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