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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노마드 Nov 30. 2015

CSR은 종말을 고했나 — 2/2

CSR과 CSV에 관한 한 흥미로운 논쟁 후반부

존 엘킹턴과 마크 크레이머의 주장을 요약한 앞의 글에 이어 이 글에서는 네슬레의 Public Affairs 글로벌 책임자인 자넷 부트(Janet Voûte) 그리고 Covestro 대표 패트릭 토마스(Patrick Thomas)의 주장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여기에 몇몇 청중들의 발언도 덧붙이고, 토론회 결과를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자넷 부트의 주장

마크 크레이머 편에 선 자넷 부트 역시 한 가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그으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자신은 CSV를 지지하는 주장을 하겠지만, CSR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것. 즉, CSV가 CSR을 대체한다는 식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렇게 말머리를 시작한 자넷 부트는 세계 최초로 CSV 개념과 전략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실행 중인 네슬레의 입장에서 CSV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주었다. 다음은 자넷 부트 주장의 요지.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공을 유지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이것이 CSV에 대한 네슬레의 정의이다.   


- 네슬레는 영양(nutrition), 수자원(water), 농촌지역개발(rural development)에 특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영양에 있어서, 네슬레는 장기적으로 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예방적 관점의 새로운 영양 공급 솔루션에 투자한다.  


- 수자원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가 세계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미래의 농업이 유지되기 어렵고 이는 우리에게 제품을 공급할 농부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농촌지역개발을 통해 성공적이고 지속가능한 농업공동체를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위한 공급원을 잃는 것이다.


- 네슬레에게 이런 분야에서의 사회적 도전과제들은 회사의 성공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비즈니스 안에 녹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들이 그리고 직원들이 네슬레에 기대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우리의 제품들이 어디서부터 오고 이 제품들이 영양 공급 측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 네슬레의 CEO는 지난 20–30년 간 자본주의와 그 시스템 속에 있는 기업들이 가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CSV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먼저 분야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분야를 정하든 CSV는 반드시 국가 법규, 국제 규범, 그리고 자사의 비즈니스 원칙을 준수하는 컴플라이언스의 견고한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 네슬레의 CSV와 모든 활동은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10 원칙을 토대로 수립된 네슬레 비즈니스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네슬레는 CSR과 CSV가 나뉠 수 없다고 생각한다. CSV의 성공은 환경, 사회 및 경제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회사의 책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견고한 컴플라이언스와 지속가능성 기반 없이 CSV가 그저 어느 부서나 부분에서 실행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 네슬레의 CSV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네슬레는 CSV 부서가 없다. 왜냐면 CSV는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사회 구성원들부터 각기 다른 실무부서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공유가치, 지속가능성, 컴플라이언스 모두 다 실행되고 있다. 그리고 개선되는 현황을 투명하게 보고한다.


네슬레에서 CSV가 흥미진진한 이유는 CSV가 전사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것이 매일의 비즈니스 활동에 내재화되어 있으며, 미래의 연구개발에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 네슬레에게 CSV는 살아 있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CSR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모두가 자신의 CSV를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슬레는 CSV를 이런 관점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우리의 CSV는 컴플라이언스와 지속가능성의 견고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






패트릭 토마스의 주장

패트릭 토마스는 CSR을 방어하는 두 번째 주자였는데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주장하는 내용이 분명하고 단순해 길게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했다. 7분간 이어졌던 그의 주장은 ‘breakthrough’라는 한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기존의 체계와 시스템 안에서 점진적인 개선을 이루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며,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패트릭 토마스 주장의 요지.  


-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개선을 일으키기 위한 여러 방법론을 신뢰한다. 식스시그마를 통해 그동안 회사에서 많은 지속적 개선을 이루어냈고, 다른 좋은 방법론들도 활용하고 있으며 CSV도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성과도 개선되고 다 좋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는 다른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 점진적 개선을 넘어서는 그 이상을 해야 한다.   


- 코베스트로는 한 해에 2억 유로 규모의 연구를 하는데 연구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평가할 때 3P 즉, 사람(people), 지구(planet) 그리고 수익(profit)을 성과 측정 기준으로 삼는다. 측정 결과 3P 모두에서 양(+)의 임팩트가 측정되어야 하며, 3P 중 하나가 중립으로 나타나는 경우까지만 허용한다. 이렇게 해야 주주와 다른 이해관계자를 위한 우리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설명한 이 TBL(Triple Bottom Line) 관점이 점진주의를 넘어선 다음 단계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여기서도 더 나가야 한다. 오늘날 비즈니스는 획기적 혁신(Breakthrough)으로 나아가야 한다. 획기적인 혁신은 점진주의를 넘어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며, 지구 상의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꿈꾸고 협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개선을 이루어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자신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해 기존과 다른 접근법과 관점을 어떻게 비즈니스에 내재화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코베스트로는 네슬레를 포함한 수많은 기업들에게 독창적인 소재들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소재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탄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스스로 “이산화탄소로부터 탄소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던지고 6년 전에 도전과제를 하나 세웠다. 이러한 질문은 전체적인 사고 프로세스를 완전히 전환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이 새로운 소재 개발을 위해 세계 수준의 연구자 30명으로 새로운 팀을 구성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실패했지만 오히려 실패 축하 파티(failure parties)를 열었다. 실패는 한계를 확장하는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방식에 도전하는데 있어 연이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대로 그러한 실패가 더욱 새롭고 흥미진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자원이 된다.  


- 이 연구를 통해 의외의 결과가 있었는데 연구자들이 다른 소재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산화탄소를 30% 이상 포함하는 쿠션 또는 매트리스용 폴리우레탄 스펀지를 발명했다. 발전소 굴뚝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30% 들어간 매트리스에서 잠을 잔다는 아이디어가 1년 안에 실현될 것이다. 이산화탄소가 더는 폐기물이 아니라, 물건을 만드는데 공급되는 원료가 된다는 사실. 우리는 이를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다는 획기적인 혁신 솔루션을 꿈꾸면서 발견했다.   


- 꿈을 이루고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고 한계를 확장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다르게 사고하는 사람들의 혁신 마인드에 기반을 둔 협력이 아니고서는 비즈니스 그리고 지구에 대한 변혁을 실제로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이며 사고하는 마인드를 전환하는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시스템에서 이어지는 점진주의로는 도달할 수 없다.


이 정도가 패트릭 토마스의 입장인데, 솔직히 그의 발언 전체를 듣고는 그가 CSR을 직접 변호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패트릭 토마스의 토론이 끝나자 자넷 부트는 그가 들어준 사례가 오히려 훌륭한 CSV 사례인 것 같다고 했다. 여기에서 토론 이외의 맥락에 대한 추가 설명이 좀 필요해 보인다.


패트릭 토마스와 자넷 부트가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청중들 사이에서 작금의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 그리고 비즈니스를 둘러싼 시스템적인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들이 오갔다. 그 후 사회자가 한 서베이 결과를 소개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가 그렇다고 대답한 사실을 언급했다.


그리고 토론회 청중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열에 아홉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입장에 손을 들었다.


패트릭 토마스 역시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점진주의적인 관점을 담은 마크 크레이머의 주장을 반박하고, 존 엘킹턴의 시스템 변화 필요성에 힘을 싣는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하고 질 높은 청중의 의견, 그리고 토론회의 결과

한 시간 남짓한 토론회에 이렇게 많은 청중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예상 밖이었지만, 청중들의 면면과 그들이 내보이는 의견의 수준도 패널 토론자들과 견줄만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네슬레의 CSV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고, CSV 개념 자체에 품은 의구심을 내비친 이들도 다수였다. 반대로 CSR 전문가임에도 CSR에 깊은 회의를 전하는 사람, 그리고 비슷한 관점에서 CSR보다는 CSV에 강하게 동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중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던 몇 개의 의견들을 이해한 대로 정리해보면 대략 이 정도다.   


- 마크 크레이머가 ‘혁명’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 비즈니스의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지만, 결국 CSV가 사회적 가치를 추가로 고민하는 것 외에 지금까지의 주주 가치 중심의 비즈니스 시스템과 무엇이 그렇게 다른 것인지 의문이다. BAT — 영국 담배회사 — 같은 회사도 CSV 보고서를 냈는데 이런 보고서의 내용이 정말 기존의 모습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네슬레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가치사슬에서의 공유가치만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스템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 CSR의 기본 요소들인 노동, 인권 같은 요소들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고도 CSV로 갈 수 있는지 우려스럽다. CSV를 통해 사회적인 공유 가치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윤리, 인권, 환경과 같은 기본적인 책임을 어떻게 준수할 것인지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  존 엘킹턴은 CSR이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수술이 필요한가? CSR은 개념적으로는 좋지만 이번 폴크스바겐 사례같이 실제 현실에서 실행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끔찍하다. CSR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실증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 CSV는 비즈니스 인센티브를 해결방안으로 강조하지만, 폴크스바겐 사태를 보면 근본적으로 기업이 잘못된 인센티브를 추구해서 일어난 문제다. 이런 문제는 비즈니스의 사회적 목적과 역할을 깊이 논의하면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CSR이 가장 중요하다. CSR은 비즈니스에 대한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CSV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만들어내고자 하는 가치와 이에 대한 인센티브만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사회적 목적과 사회 속에서의 역할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라야 해결할 수 있다.  


- CSR은 죽었고 CSV가 진짜 변화의 도구가 될 것이다. CSV는 우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치사슬 전반에서 공급자를 돕고 지역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더 나아가면 가장 어렵고 복잡한 시스템 변화를 유도한다. 이러한 시스템 변화는 한 조직이 일궈낼 수 없으므로, CSV라는 이름으로 시스템 변화를 시도할 때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청중들의 의견이 오간 뒤 존 엘킹턴과 마크 크레이머가 마지막 정리 발언을 다시 한 번 진행했다. 존 엘킹턴은 단지 윈윈이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기업들의 근본적이 가치 표류 문제가 비즈니스 내에 존재하며, 이 때문에 CSR 접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 CSR와 CSV 뿐 아니라 모든 개념과 방법들을 잘 결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해피엔딩으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마크 크레이머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을 재강조했다. 진정한 변화를 이루려면 실제로 비즈니스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고,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들어가야 하며 CEO와 이야기를 나누고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CSV 접근법이 CSR보다 기회라는 측면의 아이디어에 기업들이 투자하고 매진할 수 있도록 촉진한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활발한 토론들을 모두 마친 후 다시 한 번 존 엘킹턴의 CSR팀과 마크 크레이머의 CSV팀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존 엘킹턴 75%, 마크 크레이머 25%로 존 엘킹턴 팀의 승리. 즉, 적어도 토론회에서는 CSR이 살아 있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마지막에는 내 생각도 짧게 정리해보려 했으나 글을 간결하게 쓰는 깜냥이 턱없이 부족하여, 한없이 길어지는 글을 어찌하지 못하고 그냥 따로 정리하기로 했다. 다만, 사흘 안에 다시 올릴 내 생각 나눔 글은 사견을 강하게 피력할 예정이므로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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