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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Jun 03. 2023

우울한 하루

오늘이 마지막 우울한 하루이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다른 방법도 없을 뿐 아니라 이미 지금까지 준비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하루빨리 실행에 옮기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이제 미련이나 아쉬움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나버렸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만 남았다.     


그는 요즘 들어서 부쩍 우울증이 심해진 것을 느꼈다. 본인이 느낄 정도라면 증상이 심각하다는 소리다. 그는 우울증의 원인도 알고, 해결 방법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쉽게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오직 돈만이 그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팬데믹 사태가 그를 직장에서 내몰았고, 그나마 믿고 있었던 퇴직금까지도 회사의 파산으로 인해서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고용주가 마땅히 지급해야 했지만, 그것은 이론적인 이야기이고 이미 파산해서 폐업 상태나 마찬가지인 회사로부터는 나올 것이 없었다. 말 그대로 빈손으로 쫓겨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하루 이틀 사이에 경제적으로 사정이 호전될 기미는 전혀 없었고, 그는 그저 하루하루 근근이 연명하면서 그나마 새로운 직장이라도 구하러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서는 아내를 비롯하여 아직도 공부를 마치지 못한 두 명의 아이가 그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 정말 그가 택할 방법은 없었다. 기껏 생각한다는 것이 일단 집을 팔고 셋방으로라도 옮기면서 조금 더 버텨보다가 나중에 취직되어 상황이 호전되기만을 기다리는 방법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가 그것마저도 힘들게 만들었다. 낮은 금액이라도 거래만 된다면 매도해야 하는데, 아예 부동산 경기는 조만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몇 달을 보내다 보니 그도 더 이상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수시로 울컥 솟구쳐 올랐다.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쳐다보는 창밖 하늘은 속절없이 맑았고, 그렇게 맑은 하늘을 바라보자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도대체 그가 세상을 살아온 방법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가혹한 시련을 주는지 알 수 없었다. 돈이 많은 사람이 보기에는 그가 고민하는 액수야 얼마 되지도 않는 금액이었지만, 평생을 직장 생활하면서 여유 있게 돈을 모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어떤 모녀는 건강보험료 몇 달 치가 밀렸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 거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 심정을 모른다. 다행스럽게 아내도 주방에 있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시간이라서 울컥 솟은 눈물을 가족에게는 들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가족의 시선에 포착되는 것은 어차피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그 점이 그를 더욱 우울하게 하고 있었다.  

    

얼마 전이었다. 우울한 마음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그의 눈이 커졌다. 기사에 그와 비슷한 처지의 가장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서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단지 평상시의 지론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인간은 살아남아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가족의 입장을 전혀 생각지도 않고, 단지 괴로운 자신의 생만 정리하려고 하는 이기주의자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댔는데, 그날따라 그 기사가 눈에 들어온 것은 예기치 않은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건에 대해서도 보험금이 지급되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저세상에도 영업사원이 있다면 분명히 이런 순간에 찾아올 것 같았다. 마음의 동요가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갖은 감언이설로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하면 그 영업사원들의 실적은 높아질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그날 이후로 보험 가입 현황을 새삼스럽게 뒤적이기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그저 세금을 납부하듯이 꼬박꼬박 보험료만 자동이체로 납부해서 미처 몰랐었는데, 알고 보니 그에게 만일의 사태가 닥치게 되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론 보험료를 허덕이면서 납부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그는 많은 고민에 휩싸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자신만 희생하면 남은 가족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받으면서 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남은 것은 실천 방법이었다. 사실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 여간 강단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그는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그처럼 겁이 많은 사람에게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기껏 마음먹고 일을 추진했음에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 채 남은 가족에게 평생 짐이 되는 상태로 살아가게 되는 일이다. 그것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가 고민하면서 차일피일 거사 일자를 미룬 까닭이 바로 그것이었다. 워낙 겁이 많다 보니 생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 생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겪게 될 예상치 못한 고통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실행을 못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는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걸어서 옥상으로 향했다. 눈물이 눈 앞을 가릴 정도로 흘러내렸다. 다행스럽게 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주친 이웃은 없었다. 옥상에 도착해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난간으로 향하던 그의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리면서 문자메시지가 수신되는 소리가 들렸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에 사랑스러운 아내가 보낸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여보! 지금 어디야? 집에 있지? 나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갈 거야. 이따 봐. 우리 오늘 둘만 나가서 진짜 오랜만에 밖에서 한잔 하자. 알았지?”    

 

잠시 후, 그는 묵묵히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올라왔던 계단을 다시 내려가고 있었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 출간한 "초여름의 기억"에 실린 글이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937928&start=pnaver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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