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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Feb 12. 2024

무서운 세상

믿을 놈(?) 없다. ㅎㅎㅎ

나른한 카페의 오후, 화영은 얼마 전부터 함께 어울리기 시작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여자 몇 명과 함께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비교적 한가한 시간인지라, 카페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고 마치 그녀들이 전세라도 낸 듯, 이야기 사이사이 큰 소리로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화영은 최근에 이 모임에 합류한지라, 대부분 시간은 듣는 쪽이었다. 나이는 모두 삼십 대 중반 정도였고, 대부분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대화의 주된 주제였다. 물론 아이들의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고, 가족들, 특히 시가 어른들이나 시누이, 시동생 등 시월드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다. 화영이야 뭐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특별한 불만은 없었으므로, 시월드 화제에는 낄 생각도 없어서 그냥 듣기만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한참을 깔깔거리면서 이야기하다가도 가끔은 그런 이야기 말고 다른 일행이 들으면 조금은 낯 뜨거울 만한 화제의 이야기까지 서슴없이 말을 꺼냈다. 여자들이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나면 조금씩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솔직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화영은 별로 끼어들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지혜 엄마는 잘도 입에 올렸다.

     

오늘도 결국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시가 식구들 이야기까지 여자들의 고정 레퍼토리를 넘나들던 이야기의 주제가 예상대로 불륜으로 번졌다. 하긴 요즘 TV만 켜도 여기저기 죄다 불륜에 막장이 시청률도 높고, 시청자의 시선을 끄는지라, 여자들 대화 주제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여자들은 마치 경험담을 이야기라도 하듯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자극적인 상황 설정과 아주 그럴듯한 현실감을 갖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기가 아는 어떤 여자는 이랬다더라, 친구의 남편이 저랬다더라, 또 어떤 여자는 비밀스럽게 털어놓는다고 하면서 본인의 경험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입에 올렸다. 물론 화영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믿지도 않았다. 지금 이 자리 여자들의 말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세상에 순결한 가정주부는 단 한 명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저 자기 앞에 놓인 커피잔만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이야기를 듣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입에 침을 튀기며 무용담에 열을 올리던 옆집의 지혜 엄마가 화영을 보고 물었다. “자기는 왜 한마디도 안 해? 이야기가 재미없어서 그래?” “아니, 아니에요. 저는 뭐 별로 할만한 이야기가 없어서요. 그나저나 모두 대단하세요. 저기, 저 언니는 정말 경험담이래요?” 화영이 잠시 자기도 대화를 귓등으로 듣지는 않았다는 듯이 말을 얹었다. “아냐. 경험담은 무슨, 저 언니 원래 뻥이 좀 세잖아. 어디서 들은 이야기겠지. 안 그래?” 지혜 엄마가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그렇겠죠?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저렇게 당당히 말하기가 좀 그렇잖아요. 저라면 숨기고 싶은 이야기일 텐데 말이에요.” “맞아. 저 언니처럼 저러면 세상 남자들만 불쌍한 거야. 마누라들 어디 믿겠어? 그렇지만 여자도 마찬가지야. 밖에서 바람피우는 남편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집은 여자만 불쌍한 거지 뭐.”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무심하게 말은 던지는 지혜 엄마의 표정에서, 화영은 지혜 엄마의 입꼬리에 걸린 뜻 모를 웃음을 보고 자기도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그냥 따라 웃어주었다.

     

화영은 그저 한낮에 무료함을 잡담으로 날리는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자리만 지키고 앉아 있었다. 잠시 후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므로, 이 자리도 이제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더 같이 앉아 있다가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자들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시들해졌다. 아마 꾸며내기도 지친 모양이었다.


그때, 지혜 엄마가 한마디 했다. “그렇게 바람기 많은 유부남과 유부녀가 가장 사귀고 싶어 하는 불륜 상대가 누구게? 혹시들 알아?” “그런 것도 있어? 음, 나 같으면 정우성이지. 호호. 남자들은 김혜수 아니겠어? 글래머잖아.” “아냐. 정우성보다는 마동석이지. 아주 단단해 보이잖아. 그리고 남자들은 요즘 누가 인기가 좋더라? 아니다. 하긴 남자라는 동물은 여자라면 그저 치마만 둘러도 침을 흘린다잖아. 그러니 이쁘건 멋지건 그저 여자이기만 하면 다 좋아하겠지. 그렇지 않겠어?” “겉만 단단하면 뭐 해? 생긴 것 봐, 나는 마동석 별로다. 나는 송중기, 귀엽잖아. 남자들은 요즘 신혜선 좋아하지 않나? 하하하.” 여기저기에서 한 마디씩 거들면서 슬슬 파장의 기미를 보이던 대화 자리가 다시 불이 붙었다.

     

그러자 지혜 엄마가 말을 잘랐다 “아, 이 여자들이 뭘 모르나 보네? 유부들의 버킷 상대는 그저 평범한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라고 하는 말 못 들었어?” 생각지도 못했던 지혜 엄마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들은 말없이 각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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