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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흔 Mar 18. 2024

축구공

그의 별명이 축구공이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축구공, 바로 그 축구공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십중팔구는 그가 얼마나 축구를 잘했기에 별명까지도 축구공이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운동신경이라면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둔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별명은 축구공이었다.     

남중과 남고를 졸업한 까닭에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여학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지냈던 그가 남녀공학인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눈이 돌아간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입학 직후의 대학 캠퍼스에서는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광경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떻게 감히 남녀 학생들이 함께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수가 있을까? 하는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교정 곳곳에서는 화사하고 나풀거리는 옷차림의 여학생들이 남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서 활보하고 있었다. 물론 남녀공학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남학생의 경우에는 여학생과 어울리는 일이 별일도 아닐 수 있었겠지만, 그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같은 학과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미팅에도 따라다녀 봤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당연하게 받아내던 애프터 승낙도 그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혹시라도 한번 다시 볼 수 있겠냐고 들이대 봐도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이 완곡한 거절의 표현뿐이었다. 도무지 친구들은 어떤 재주를 부렸길래 그렇게 애프터도 척척 하는지 그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외모가 남들이 보기에 혐오스러울 정도였냐 하면 절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훨씬 못생긴 친구들에게도 여학생들이 잘만 넘어가던데, 그에게는 도무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입학해서 불과 두 달 만에 미팅도 시들해졌다. 

     

같이 미팅했던 친구들이 다른 학교 여학생들과 곧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그는 전략을 수정하기로 하고, 여학생 회원 비율이 높은 동아리를 공략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뿐이고, 어떤 동아리에 여학생 회원이 많은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학과 친구들의 조언을 받기로 했다. 입학 후 두 달이 지날 정도였으므로, 대부분 신입생은 동아리 가입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주위의 몇몇 친구들을 구워삶아서 드디어 여학생 회원이 많은 동아리 리스트를 확보하고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동아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여학생과 가까워질 기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고르고 고른 동아리의 문을 두드렸다. 뻘쭘하게 문을 열고 기웃거리는 그를 본 회원들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고, 그는 동아리에 들고 싶어서 왔다고 대답했다. 여학생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겠지만, 순간 그의 눈에는 이런 학생들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예쁜 여학생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동아리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입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려던 회원들은 하나같이 그를 환영했으며 졸지에 그는 꽃 같은 여학생들로 둘러싸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골라서 서서히 접근하기만 하면 여학생을 사귀는 일쯤은 간단히 이루어질 것이다. 더군다나 회원의 대부분이 저학년인 까닭에, 재수해서 입학한 그에게는 아주 어울리는 여자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던 그가 동아리에서 불명예스럽게 축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입회 환영식 자리에서 평소 주량을 넘겨버린 그가 기억에도 없는 언행을 사유로 해서 동아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입회 의도가 불건전하다는 것이 그 사유였다. 그로 인해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들이대어 보지도 못한 채 동아리 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기껏 기회를 잡았다가 날려버린 그는 우울한 마음으로 한 학기를 보냈다. 학과에서도 별로 존재 감 없이 지내던 그는 첫 학기가 채 끝나기 전에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함께 강의를 듣던 여학생 중에서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 여학생과 마주쳤다. 둘은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는 각자 공부에 열중했다. 물론 그는 책 안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놓고 도서관 이웃으로 지내기 시작한 지 몇 주 지나서 그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돌려가며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도 웃으면서 단칼에 대답했다. 자기는 가깝게 지내는 남학생이 있노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학생 사귀기 작전에 번번이 실패한 그는 그때부터 아주 대놓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으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접근했다가는 차이고, 또 접근했다가는 차이기를 반복하던 사이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축구공이라는 그다지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도 대학 동창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K대 축구공’으로 불렸고, 지금도 술자리에서 심심하면 놀림을 당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그의 아내까지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여기저기에서 차인 것도 알고 보면, 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거 알아?” 그의 이야기를 들은 아내도 그저 웃으면서 말하곤 했다. 


“어이구, 그러셨어요? 당신이 그때 죄다 차이기를 다행이네요. 당신을 걷어찬 그 여학생들에게 고마워해야 하겠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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