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공약 다 걷어치우고, 이런 거나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이번 선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 같았다. 어떤 면에서 다르냐고 한다면 특별히 콕 짚어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다. 지금까지는 사실 많은 유권자가 선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않다기보다는 솔직히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니 뭐니 하지만, 그 말도 그다지 아름다운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투표율은 적어도 80~90%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 꽃은 무슨 꽃? 그냥 수많은 공휴일 중의 하루를 더하기 위한 무언의 대가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렇기에 선거일은 일주일의 중간인 수요일로 잡는 것이다. 월, 화 이틀 일하고 하루 쉬고, 다시 목, 금 이틀 일하면 주말이 되니까. 그래도 선거일이 다가오면 각종 언론에서는 투표를 독려하는 기사를 많이 올린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하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절은 일부 유권자에게 각성과 참여에 열을 올린다. 아주 고맙게도 선거일에 집에서 편하게 쉬라는 뜻인지, 아니면 놀러 가라는 뜻인지는 몰라도 사전투표라는 제도도 고안해서 정착시켰다. 그렇게 하면 투표율이 오를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 선거가 지금까지의 선거와 다른 점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번 선거가 정책선거가 아닌 상호 비방 선거의 정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아도 정책이나 공약은 없었다. 어쩌다가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들도 죄다 실천 불가능한 헛소리들뿐이었다. 그러니 투표할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역대 선거가 죄다 그 모양이긴 했지만, 그래도 가물에 콩 나듯 그럴듯한 공약이 한두 개씩은 눈에 띄었는데, 그 공약들까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공약으로 내세울 것이 없다면 차라리 직접 피부에 와닿는 공약을 두세 개만 내놓는 것이 유권자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출마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다. 생각해 보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창한 公約의 탈을 쓴 空約보다는 당장 실천이 가능한 공약이 선거운동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법 적용의 공평성과 국민 정서에 맞는 사법부의 판결일 것이다. 누구는 죄가 있고 증거가 넘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지만, 누구는 사소한 행위로 인해서 이해할 수 없는 처벌을 받기도 한다. 누구는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가해자의 인권은 철저히 보장되고 피해자의 생존권은 철저히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국민을 분노케 한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지만,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입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후보를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집행유예라는 제도를 없애버리고 싶다. 하지만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요건을 극히 제한적으로만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례로, 음주 운전을 뿌리 뽑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집행유예의 남발이다. 만일 단 육 개월만이라도 음주 운전은 무조건 실형을 살아야 한다고 하면, 과연 음주 운전을 할 사람이 있을까? 육 개월 무단결근이면 직장이 날아가고 생존의 위협을 받을 텐데,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음주 운전을 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그래도 음주 운전자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적어도 음주 운전에 의한 치명적인 피해자의 숫자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확실한 방법을 왜 입법화하지 않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시 그 후보자들이 나중에 음주 운전을 하려고 미리 처벌을 약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까지도 드는 부분이다. 그러므로 쓸데없는 공약 백 가지보다 음주 운전 처벌 강화법이라도 하나 공약하면 유권자의 진심을 훔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주 운전 처벌과 함께 각종 파렴치범에 대한 판결도 국민 정서에 맞았으면 좋겠다. 성추행범의 경우는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원치 않는 성행위라는 범죄는 오롯이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을 가끔 받기는 하지만, 성추행은 엄연히 다르다. 이 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와 가해자가 단둘만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면 말이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장소든, 아니면 제3의 목격자가 있는 경우에서부터 처벌을 강화해 간다면 일벌백계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가해자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성추행의 경우에도 음주 운전과 마찬가지로 절대로 판결의 경감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않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사소한 추행이라고 우기는 가해자에게 최소 몇 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한다면 잠재적인 성추행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보복 범죄나 재범에 대해서는 아주 강한 처벌을 내린다면 상당수의 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정에 제출하는 반성문이다. 도대체 피고인이 왜 판사에게 반성문을 내야 하는지의 문제는 둘째 치고, 반성문의 효과를 어느 법조문에 정했는지 알 수 없다. 왜 반성문을 수십 장 제출해서 감경된 판결을 받는지, 이 또한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대표적 사례이다. 범죄 행위로 자신을 제외한 타인에게 신체적, 경제적, 도의적 피해를 준 자가 반성문 몇 장으로 그 죗값의 일부를 갚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그렇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권리는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심한 말로 하자면 정말 ‘개소리’이다. 판사들은 왜 자기에게 위임된 법적 권한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인심을 쓰는 것일까? 판결에 대한 정당성이 입증되지 않는 허술하거나 무성의하거나 불합리한 판결에 대해서는 판사에게도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면 과연 그렇게 판결할 것인가? 아니면 판사 자신이나 가족에 당한 범죄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문 몇 장으로 인심을 쓰듯 약한 판결을 할 것인가? 정말 궁금했다.
이렇게 허황한 공약 대신 앞에서 말한 세 가지 공약만 내세우고 확실히 실천할 의지만 있어도 유권자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음주 운전과 파렴치한 성추행범의 100% 실형(신체형) 판결, 그 외의 범죄에 있어서 집행유예의 선고 요건 폐지 혹은 강화, 반성문에 의한 감경 판결 관행 절대 금지, 이 세 가지만 철저하게 이루어져도 이 사회가 조금이나마 살기 좋고, 여러 계층 간 갈등이 줄어드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선거에서는 적어도 그런 의지가 있는 후보자가 최대한 당선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