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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점

by 정이흔

“선생님, 아이들이 진호 몰래 사물함에서 과자를 꺼내 먹었다고 진호가 울어요.”


아이들이 교무실로 몰려와서 말했다. 정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리 중학교 1학년이지만 어떻게 되었길래 조용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연주는 과자를 꺼내 먹은 아이들을 불러 사실확인서를 받고 벌점을 준 후, 진호에게는 학교에 과자를 갖고 오지 말라고 하고 다들 교실로 돌아가라고 했다.


비단 이번뿐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장난으로 그랬다고 하지만, 도둑질과 장난을 구분할 줄 몰랐다. 이런 일에서 더욱 문제인 것은 훔친 아이들 어머니의 적반하장 격 태도였다. 자기 자식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막무가내로 그러게 왜 아이들이 학교에 과자를 갖고 오게 했냐는 식이다. 아니, 다른 아이가 과자를 갖고 오든 말든 남의 과자를 훔치면 안 된다는 가정교육이 먼저이지 않은가? 연주는 이번에야말로 아이들 어머니께 단단히 일러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되잖아요? 학교에서 그런 것은 안 가르치나 보죠?”

“아니 그런 것이 아니고, 제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아이들만 감시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부모님들께서는 본인 아이 한 명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시는데, 저는 아이가 스물여섯 명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지 않나요?”

“집에서 교육하기 어려우니까 학교에 보내는 거잖아요? 선생이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요?”


어머니라는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뻔뻔하고 당당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작 자기 배로 낳은 아이들이 잘못 행동하는 것을 왜 담임선생님에게 추궁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이상 말싸움을 할 수도 없는 일인지라 적당히 통화를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 아이가 약을 제시간에 안 먹어서 그런데, 점심 먹고 나면 아이가 약을 먹을 수 있도록 지도 부탁합니다.”

좀 전의 일로 가뜩이나 마음이 상해 있던 터에 학부모의 문자를 받자, 가슴속 깊은 곳부터 울분이 울컥 솟았다. ‘아니, 정말 너무하는 거 아냐? 이러다가는 자기 아이가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나면 뒤처리까지 해 달라고 하겠네.’ 생각은 그래도 연주는 그냥 수영을 불러 어머니께서 걱정하시니 약을 먹으라고 하고는 수영이 약을 먹은 것을 확인한 후 수영의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수영이 약 먹은 것 확인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회신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알겠습니다. 내일도 계속 약 먹는 것 지도를 부탁합니다.”


마치 아이들 유모라도 된 듯한 기분이 되어 버린 연주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아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이제 초등학생도 아니고, 더군다나 선생님이 너희들 한 명 한 명을 일일이 지켜볼 수 없으니까 각자 할 일은 각자 알아서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는 거야. 부모님들은 선생님이 다 알아서 가르칠 거라고 믿고 계시지만, 선생님도 사람이고 한 명뿐인데 어떻게 다 챙길 수 있겠니?”


말이 없는 아이들을 본 연주는 부모에 대한 반감이 아이들에게 표출된 것 같아서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단단히 말해 두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만 같기에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였다.


교무실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우울하고 어이없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요즘 아이가 한 명인 집이 많다 보니 엄하게 키우지 않는 가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일 줄은 몰랐다. 그러니 아이들이 점점 버릇없고 사리 분별력 없이 자라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옳고 그른 것쯤은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선생님에게 미루는 부모는 어떻게 생각하면 부모로서 자격 미달인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처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교육을 받을 사이도 없이 엉겁결에 부모가 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그렇다고 결혼을 앞둔 남녀에게 결혼 필수 조건으로 일정 시간 이상의 부모 교육을 이수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더욱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에 문자 알림이 떴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상훈이 담임인데요. 갑자기 벌점 통지 메시지가 가서 놀라셨을 것 같아 연락드려요. 혹시 지금 통화 괜찮으신가요?”


지금까지 선생님이었던 연주는 이제 한 아들의 어머니로 돌아가 씁쓸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죄인이라도 된 듯 상훈의 담임선생님 전화번호를 눌렀다. (끝)




어제 현직 교사 중에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직종으로 전직을 원하는 교사의 비율이 40%를 넘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과연 무엇이 그렇게도 교직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했던 선생님들을 교육현장에서 떠나고 싶게 만들었을까? 까짓거 뭐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교직이 요즘 3D를 넘어서 4D, 5D 직종化 된 것에서 기인한 문제는 아닌가 싶은 마음이다. 철없고 기본적인 가정교육이 안 된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무조건 감싸는 부모, 쓸데없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잡무만 양산하는 교육부와 교육청 철밥통 공무원들... 아무튼 이런저런 여건들이 교사로 하여금 교직을 떠나고 싶게끔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사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학생의 부모가 된다. 그렇기에 부모의 입장과 교사의 입장에서 우왕좌왕할 수도 있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건 아니다 싶기에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불철주야 열정을 다하시는 선생님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았다.


자!!! 오늘도 열심히 아이들에게 참 교육을 시전하고 계신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께 파이팅을 외쳐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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