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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땜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겠지?

by 정이흔

모처럼 눈이 부시게 환한 날이었다. 여전히 나는 화물차 운전석에서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번갈아 밟으며 좁은 골목을 휘돌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시원한 교외의 어느 들녘에서 드라이브 중이었다. 유난히 기분이 상쾌한 하루였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좁은 골목에서 운행할 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우선 지금의 내 차가 예전의 차에 비해서 커도 너무 큰 차이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은 항상 불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골목 양옆에 무질서하게 불법으로 주차한 차량 때문에 요리조리 곡예 운전을 해야 한다. 그 정도는 그래도 양반이다. 차들이 눈에 훤히 보이지 않은가? 얼마든지 조심해서 피해 갈 수 있다. 하지만 좁은 골목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귀가 어두운 노인이라도 앞세운다면 골목 안에서 경적을 울릴 수도 없고 해서 그저 어미 닭을 따라가는 병아리처럼 종종걸음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간혹 앞은 보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 안의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다가오는 좀비 같은 사람들도 있고, 차가 다가와도 어린아이를 챙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강한 엄마들도 있다. 모두가 골목 운전의 위험성을 가중하는 요인들이다.

운전을 직업으로 하다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운전 중에 그 어떤 불의의 사고를 겪게 되어도 사고의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느냐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단지 운전자가 모든 잘못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긴 뒤에서 다른 차가 달려와서 추돌하기 전에는 전혀 미리 짐작할 수 없는 각도에서 다른 차량이나 이륜차, 혹은 사람이 다가와서 사고를 일으켜도 운전자는 그 사고의 책임에서 온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 그렇게 운전자가 언제나 잠재적 운행 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전방 주시 태만’이나 ‘주의 운전 의무 불이행’이라는 마법의 용어 탓이다. 한 마디로 운전대를 잡은 죄라고 우기면, 사고 상대방은 운전자의 모든 변명을 물리치고 운전자를 가해자로 만들 수 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쪽으로 흘렀다. 사실 오늘의 사고는 인사 사고와 같은 그런 거창한 사고는 아니다. 단지 돈으로 해결하기만 하면 되는 사고다. 하긴 이런 사고는 그나마 사고 중에 아주 다행스러운 사고이긴 하다.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오늘따라 집에서 먼 거리로 운행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런 날은 될 수 있으면 집으로 가는 방향이 하차 목적지인 화물을 싣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귀가하는 길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단순하게 화물이나 운송 거리 대비 운송료가 조금 높다고 아무 화물이나 덥석 싣고 집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운행했다가는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염없이 길어질 수 있다. 그래서 비교적 운임 가성비는 조금 낮지만, 방향이 집과 같다는 점 하나만 보고 화물을 실었다. 화물을 싣고 목적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후 도착지를 확인해 보다가 갑자기 기분이 싸해짐을 느꼈다. 유난히 골목이 좁고 일방통행로가 많은 지역이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실은 화물이니 조금 더 주의 운행을 해서 화물을 내려주고 골목을 벗어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짐작대로 일방통행로였고 골목 양쪽으로 주차된 차들이 운행을 번거롭게 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지. 그래도 조심스럽게 차를 앞으로 옮기는데, 미리 도착 예정 시간을 말해 주었음에도 목적지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둘러보니 이런! 지금 들어온 골목보다 더 좁은 곁가지 골목 안에서 사람이 나오며 손짓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마치 운전면허시험장의 T자 코스처럼 후진해서 그 골목 안으로 차를 넣고 화물을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출발 전에 느꼈던 싸해짐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골목의 폭은 주차장 주차면의 그것보다 기껏 칠팔십 센티 정도나 넓으려나? 아무튼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손쉬워 보이는 골목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차피 화물을 내려야 일을 끝낼 수 있으므로 조심해서 후진 진입을 시도했다.

일단 골목으로 들어가도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내려야 하므로 차를 최대한 조수석 쪽으로 붙이면서 후진하는데, 갑자기 빡! 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려 조수석 쪽으로 돌아가 보니 사이드미러가 골목 입구 벽에 긁히면서 사이드미러의 껍데기 플라스틱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사이드미러가 아예 꺾여버리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그 사소한 사고 하나로 내 기분은 순간 우울해졌다. 원래 이렇게 좁은 곳에 들어갈 때는 사이드미러를 미리 접고 들어가야 하는데, 접는 시점을 순간 놓친 것은 분명 내 잘못이었다. 화물을 받을 사람은 마치 그 골목으로 차를 후진하게 만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연신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미안함은 현실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하늘도 눈이 부시게 환한 그런 날, 나는 나의 부주의 때문에 사고를 당했다. 상대 차량도 없는 나 혼자만의 자손 사고였다.

돌아오는 길에 정비센터에 들러 알아보았더니, 떨어져 나간 사이드미러 껍데기만 따로 새것으로 끼워 넣을 수는 없고 사이드미러를 통째로 교체해야 한다는 소리에 나는 또 한 번 우울해졌다. 그와 동시에 혹시 자동차회사에서 일부러 사이드미러 어셈블리를 부분적으로는 교체할 수 없게 통으로 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도 해 보았다. 차는 싸게 판매하고 부품값에서 돈 버는 것이 아닌, 차도 비싸게 팔면서 부품값까지 비싸게 팔아 돈 버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다. 아무튼 이러니 저러니 해도 오늘 하루 종일 일한 일당이 고스란히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당신 오늘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해.”

“왜? 무슨 말이야?”

되묻는 나에게 아내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아, 글쎄. 아침에 당신 컵을 씻어서 싱크대 위 건조기에 올려놓고 돌아서자마자 컵이 떨어져서 깨진 거야. 그렇게 컵이 떨어질 일이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당신에게 오늘은 운전 조심해서 하라고 말해 주려다가, 혹시 그런 말을 해서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몰라 말을 안 했거든. 그러니 그냥 사이드미러 하나로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일을 액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

“아니 좋다 이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데 컵은 당신이 깼는데, 사이드미러 값은 내가 내야 하는 거야? 뭔가 계산이 이상한데?”

아내는 웃으며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자 딸도 오늘 차창에 날아가던 새가 실례해서 자기도 그 새똥을 긁어냈다고 하면서 아내의 ‘액땜론’을 거들었다. 새똥과 사이드미러와의 관계성은 모호했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사례 비유인 것 같았다. 그렇게 사소하게 언짢았던 일들이 모여서 나에게 닥칠 수도 있을지 몰랐던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런 일들을 ‘액땜’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주머니 속의 돈은 부서졌어도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이드미러 일은 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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