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제안은 개미지옥

by 정이흔

글 쓰는 사람의 가장 우선적인 바람은 자기 이름의 단독 저자인 책을 출간하는 일이다. 물론 출간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시간과 돈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한 출간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명작가가 그렇게 글을 써서 출간했을 때, 과연 책이 많이 팔릴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출판사에 투고하는 것이다. 출판사는 책을 만들어서 판매해 본 경험이 있는 조직이므로, 투고 작가의 글을 읽어 보면 과연 책으로 출간했을 때 팔릴 만한 글인지 아닌지 곧바로 판단할 수 있다. 만일 책이 잘 팔릴 것 같은 글이라면 출판사에서 출간에 드는 비용과 마케팅이든 홍보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여 책을 출간해 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출판사는 작가에게 자비로 출간할 생각이라면 인쇄를 해 줄 수 있다고 하든지, 아마 그 둘 중의 한 가지 형태로 출간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그런 두 가지 방법 이외에 절충안도 있다. 요즘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이른바 반기획 출간이라는 방식인데, 이는 자비 출간을 교묘하게 포장한 출판 형태이다. 즉, 출판사는 작가가 최소 판매 수량을 처분해 준다면 그 이후부터의 판매분에 정상적으로 인세를 지급하겠다고 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작가가 200부 정도를 소화할 수 있다고 하면, 그 200부에 해당하는 인세로 일정 금액을 작가에게 지급한 후 만일 작가가 200부 판매를 소화하지 못한다면 남은 수량의 책을 작가가 인수하게 하는 방법이다. 결국 작가는 자비로 200부를 인쇄하는 꼴이고, 출판사는 200부 판매 대금으로 이미 인쇄에 들어간 비용을 모두 회수하였으므로 손해는 전혀 없는 방법이므로 이것 또한 자비 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할당된 200부를 소화하기 위하여 사방팔방 스스로 홍보하고 아는 사람에게 책을 사달라고 해야 한다. 이는 영업사원의 연고판매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자기의 글이 널리 읽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자비 출간이건 반기획 출간이건, 아는 사람이 산 책을 제외하면 추가로 더 책이 팔릴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책을 출간하는 의의가 거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출판사에서 자기 글을 읽고 냉철하게 평가하여 판매 가능성을 타진해 주기를 원해서 투고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출간 제안은 중독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작가의 글이 출판사로 쇄도한다. 글을 검토하는 직원은 거의 글 검토에 도가 터서 자기만의 검토 방법을 가지고 있다. 어떤 글은 아예 읽지도 않고 메일째 삭제다. 혹은 읽어 보더라도 그 글을 자기가 책으로 기획했을 때, 조금이라도 판매에 자신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글 역시 삭제다. 물론 작가에게 검토 결과 회신은 검토자 마음이다. 회신해도 좋고, 안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명색에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출간 제안을 한다. 적당한 출판사 리스트를 취합해서 투고하는데, 보통 100여 개 출판사에 제안한다. 그러면 그래도 절반 정도는 출간이 곤란하다는 회신을 보내준다. 나머지는 수신확인은 되는데, 응답은 없다. 아마 메일이 통째로 휴지통으로 옮겨졌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거절당할 것이 뻔한데도, 시간이 흐르면 다른 원고를 투고한다. 그리고 또 거절당한다. 그렇게 계속 반복이다. 투고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비 출간이나 반기획 출간은 할 생각이 없으니, 그냥 계속 글을 쓰는 대로 출간 제안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출간 제안은 개미지옥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초에 딸이 쓴 글을 투고해 주겠다고 하면서 원고를 받았다. 나름 출판사 이메일 리스트가 있으므로 간단히 투고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되었다. 며칠 전 딸이 심각하게 물었다.



“아빠! 그런데 내 책 언제 출간해 주는데? 원고를 준 지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잖아.”



하긴 딸이 그럴 만도 하다. 그전에는 원고만 주면 POD로 출간해서 딸에게 주었는데, 이번에는 출판사에 투고해서 정식으로 출간을 시도해 보자고 한 사람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일단 말을 뱉었으니, 약속은 지켜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그만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았어. 일단 투고해 보고, 안 되면 이전처럼 POD로 출간해서 책으로 만들어 줄게.”



나는 그렇게 딸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처럼 아침 시간에 출판사 리스트를 다시 꺼내서 수십 군데 딸 이메일로 출간 제안서를 보냈다. 1월 안에 연락이 오는 곳이 없으면 설이 지나고 나서 POD로 출간해야 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