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나의 이야기: Cambodia phom penh에서
홀로 두 번째 캄보디아에 갔을 때는 TAKEO에 약 열 명의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마중 나왔다. 생애 처음 느껴본 전율이 흘렀고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기억을 잊지 못해서 그 열 명의 친구들이 전부 어떤 성격을 갖고 있고 여자 친구는 누구며 집은 어딘지 알게 되고. 그 친구들 중 대다수와 사이가 대면대면 해질 때까지 캄보디아에 갔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데스크에 있던 DUNG이란 친구를 사귀었다. DUNG의 금방이라도 분해될 것 같은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슴을 졸이며 간신히 구한 집이었다. 덩은 먼저 내게 말을 걸며 다가왔고 khmer24시에서 본 집 나를 너무나 외롭게 만들었다. 아래층에 사는 주인집이 삼겹살을 구워 먹는 냄새가 내 방으로 올라왔다. 계약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겨 1층으로 잠깐 내려갔는데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삼겹살을 먹는 모습에 왈칵 눈물이 났다. 순간 그곳이 한국인 줄 알고 한 점 먹어보라고 해줬으면 내심 바랐다. 지금 생각하면 나 스스로에게 참 어이가 없다.
외로움이라는 게 척추에 스며들어 그 더운 나라에서 뼈가 시리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인지 처음 알았다.
옆방에 사는 우크라이나 혼혈 독일인 스탠 씨는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을까? 밥은 맨날 뚤꼭 시장 구석지에서 시커먼 기름에 튀긴 500원도 안 되는 빵과 바나나 튀김만 먹었다. 이사 첫날 옆 방에도 외국인이 있다는 소식이 얼마나 기뻤는데 스탠은 내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만 가르쳐주고 눈길도 주지 않았다.
원래 친했던 친구들은 모두 자기 삶에 바빴다. 당연한 일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잔투와 소티가 대학생이 되었고 잔투는 수의학 소티는 변호사가 되려고 법을 공부했다. 캄보디아도 역시 대학 등록금이 물가에 비해 많이 비쌌고 takeo에서 살던 친구들은 프놈펜의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했다.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고 공장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기도 미안했다. 그런데 잔투와 소티, 똘라가 갑자기 주말에 또 다른 친구들 두 명과 함께 찾아왔다.
모서리 다 까진 노트북으로 반쯤 얼굴을 가린 스탠 씨를 힐끔 훔쳐보거나.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달팽이 와이파이로 네이버 접속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진이 빠져 빤야샤트라 대학교 영어과정 개강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손가락을 세어보고 있었는데. 바쁜 와중에 갑작스럽게 나를 보러 와 준 사람들이 아이들이 정말 고마웠다. 주머니에 뭉쳐둔 달러들을 꺼내서 한대 모았다. 시장에서 밥이랑 간장에 조린 말린 생선이랑 나물무침같이 생긴 반찬들을 사 와서 옹기종기 둘러앉아 먹었다. 주말에 나를 보러 와준 사람들과 같이 먹는 밥은 참 꿀 맛이었다. 스탠이 웬일로 노트북을 하다 말고 내 방에 와서 이렇게 친구들이 많았냐고 물어봤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잔투 친구 티아라와 똘라 친구를 오늘 처음 봤지만 스탠에게 다 내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놀고 가라며 다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날은 금방 어스름해졌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아이들은 또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갈 하루를 위해 집으로 일찍 돌아갔다. 집 근처 파고다에서 녹음된 불경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이 금방 노을로 빨개졌다가 가라앉고 땅거미가 빠르게 내려앉았다. 1층에서는 단란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2년째 동남아를 여행 중인 스탠과 아예 한번 살아볼 작정으로 세 번째 캄보디아를 방문한 두 외국인이 2층에서 섬처럼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1층과 2층 사이를 유일하게 연결해주는 느티나무 같은 망고 나무의 풍성한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끝에 큰 망고 하나가 달려있는 여린 가지가 내 쪽으로 넘어올랑 말랑했다.
내 손에 어느새 설익은 초록 망고가 들려 있었다. 주인집이 보진 않았는지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때 삼겹살 한 점 주셨더라면 이렇게 망고를 서리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주인집은 오늘도 고기를 구워 먹는 듯했다. 이번에는 다른 냄새가 났다. 나는 서리한 초록 망고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전기를 아끼려면 일찍 자야 했다. 캄보디아의 삼월은 아마존에 서식할 법한 전투적인 모기 때와 낮에는 살인적인 땡볕이 너무 힘들었다. 그 둘을 해결하려면 계속 선풍기를 틀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내게 너무 전기세가 비쌌다. 밤 7시에 잠들어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일을 한 달 동안 반복했다.
새벽녘에도 파고다의 불경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런 생활 패턴을 가진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집에서 좀 떨어진 파고다가 궁금해졌다. 구글 지도를 꼼꼼히 외워둔 후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녘에 노랫소리를 따라갔다. 1층이 두 겹의 철문으로 잠겨있어서 개 구멍을 찾아 나갔다.
파고다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층에서 저런 지붕을 보고 구글 지도와 비교하며 길을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동이 트고 학교 가는 아이들이 보였다. 조금 당황스러워 바이싿쯔룩, 1000원짜리 돼지고기 볶음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밥과 함께 따듯한 국물이 나왔는데 엄청난 맛집을 찾은 것 같아서 파고다를 찾은 것보다 더 감격스러웠다. 알고 보니 전부 거기서 거기였던 길을 짚고 짚어서 간신히 집을 찾았다.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을 하루가 다시 또 완전히 밝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