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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Aug 09. 2017

어른이 되지 않아

패피







몇 년 전 서랍안쪽에 있 작은 상자 하나를 열어보니, 

대학시절 풋풋하지만 촌스러운 나와 친구들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띠며 한참을 보다가

한결같이 촌스러운 우리들 중 독보적으로 세련되어 보이는 한  친구에게 시선이 갔는데,     

그 시절 의외로 꾸미고 다니는 것에 무관심하기가 유별났던 친구여서 

약간의 신선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유행이라는 것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 듯 매일 단조로운 자기 스타일의 옷만 고집하던 모습의 친구가 

이제 보니 그 많던 당시의 패피들 중 오히려 가장 세련되어 보이는 심플한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니! 




사실 그 사진 한 장으로 내 패션 관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바로 ‘유행 무용지론’.  

        

지름신이 강림 하던 날이면 하루 종일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며 쇼핑의 열정을 불살랐건만

다 무색 하게도 지난 사진 속 난 그녀보다 촌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유행이란 게 뭔지, 뒤쳐져 보일세라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것을 좇지 않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 적이 많았다.

모두가 나팔바지를 입을 때 폭이 좁은 바지는 왜 그리 어설퍼 보이는지. 

또 금방 모두가 스키니진을 입을 때 혼자 나팔바지를 꺼내 입을 용기도 나지 않고...



하지만 요즘은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그저 패션산업의 부추김에 장단을 맞추고 있는 느낌도 적지 않고,

어느 때 보다 유행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선도하고 있다는 느낌이 옅어져 보인다. 


비단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유행이라는 것을 좇기에 여념이 없어 보이진 않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패션과 모든 것에 있어 자기 주도 시대가 뚜렷해 졌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남 눈치 보며 바지통을 늘였다 줄였다 하느라 멀쩡한 청바지를 매번 다시 사기보다

과감히 자신이 선호하는 옷을 입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디선가 미는 유행,

이런 것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히 눈에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거리의 패션은 일괄적이지 않고  다양해 졌으며 덩달아 나또한 

패션을 좆는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분이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것, 그만큼 자기 소신의 시대가 온 것 아닐까 싶다.



패션을 쫒기에 급급했을 때 나의 옷장이

한가득 쌓인 옷들 사이에서도 항상 막막하고 공허한 공간이었다면, 이제 간추려 적어진 옷들 사이에서도 쓱 걷어 입고 나가기 편해진 실용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게 몇 년 전과 다른 또 하나의 변화이다.      

무심한 듯 아닌 듯,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공들여 차려 입고 나온 것인지, 그 안에 다분히 담겨진 그들만의 철학이나 멋이 얼마나 흘러넘치고 있는지 새삼 눈에 보이는 날,

그리고 누구보다 앞서 꿋꿋하게 소신의 패션을 주도 했던 그 친구가 생각나는 날이다.               



글·그림 반디울

                                                      https://www.instagram.com/band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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