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니까! 난 잡초 같은 남자가 아니고! 전남편이야
잡초론 6
잔디인 척 숨어 있는 새싹 잡초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몸을 낮춰 잡초와 눈 맞춤을 한 후에야 잡초는 생을 다한다. 마당에 있는 잡초를 뽑는데도 요령이 있듯 요즘 강의는 전통적 수업과 함께 최신 기법을 동원해야 학생과 눈 맞춤이 간신히 가능하다. 그런 연유로 새로 설강한 강의에 맞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겨울방학에 시작한 일이 의욕보다 더한 작업을 요한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다. 겨울! 난방이 여의치 않은 실습 준비실에서 3주 연속 동영상을 찍을 당시만 해도 자신 있었다. 기본 소스를 만들면, 그다음 일은 술술 풀리지 않겠나 했다. 학기 전 호기롭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핵심 실습 내용을 오픈한다 하니, 학생들의 반응은 좋았다. 혹 수업시간 집중을 못해도 핸드폰으로 보며 진도를 따라갈 수 있고, 땡땡이를 쳐도 실습 내용이 유튜브에 있으니, 학생들은 그저 방실방실 했다. 이 말과 함께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는 그 지난한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실습 동영상과 다양한 자료를 함께 올렸기에 나의 일은 적지 않았다. 저녁마다 잡초 뽑기, 식사 준비 및 두 시간 운동, 심야 인코딩과 동영상 업로드를 반복적으로 하며 학기를 마무리 해갈 즈음 몸에 문제가 생겼다. 잡초 뽑을 때는 식은땀이 나고, 인코딩 시는 오한이 났다.
일요일 저녁, 아들을 데려다주고, 집 정리를 하니 피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여보 몸이 아파! 너무 피곤해” 했더니 남편은 잠시 얼굴을 보곤 “그니까 잡초 그만 뽑고 쉬라니까? 아스피린 먹어! 여기 두 알” 하며 타박을 한다.
“일단 먹고 자, 오늘은” 한다.
이른 저녁부터 잠을 잔 터라 늦은 밤 눈을 뜨니 침실 TV에 당구게임을 틀고 한 손에는 핸드폰 게임을 하던 남편이 이마에 손을 대보곤 “낼 이면 되겠네”하며 이불을 덮어준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온갖 사람들을 봐온 남편으로선 몸살 정도는 귀여운 이벤트다. 아침이 되니 몸이 한결 가벼워져 ‘역시 나의 탄성 회복력이 좋구나.’ 생각했다. 아스피린 두 알을 이틀째 먹은 화요일 아침 다시 열이 올랐다. 남편은 “수업만 하고 집에 와서 무조건 쉬어! 난 당직, 알지?”하곤 운동복을 챙겨 “밥 잘 챙겨 먹고, 아프면 응급실로 와! 풀 서비스해줄게” 하며 경쾌하게 집을 나갔다. 오전 수업과 학생상담 후, 집에 와 자기 시작했다. 밤이 되니 찬바람이 몸에 들러붙어 마치 보이지 않는 한기 캡슐에 갇힌 것 같았다. 이빨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 귀로 들으며 이게 바로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구나’ 했다. 이불을 고치처럼 말아도 손발끝이 칼에 베는 것같이 시렸고, 잠을 잔 것인지, 깨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수요일 아침 당직을 끝내고 들어온 남편은 깜짝 놀라 병원으로 향했다.
생애 첫 과로에 의한 입원! 종강을 2주 남긴 상황이었다. 꼬박 4박 5일! 잠자기, TV 시청, 창 밖 하늘 보기를 했다. 남편은 그저 생글거렸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시키고는, 병원식을 뺏어먹고, 내 베드에 누워 낮잠을 자고, TV를 보며, 혈압과 체온을 재러 온 간호사들과 전문용어가 뒤범벅인 대화를 했다. 아들은 걱정이 들어찬 눈으로 병원에 왔다.
“너무 힘들게 살아요. 엄마는, 좀 쉬세요” 한다.
“그랬나 아들?”
“그럼요. 엄마는 푹 쉬셔야 돼요.”
“여기선 뭘 할 수가 없구나. 잡초도 못 뽑고, 인코딩도 못하고.”
“그러게요. 그냥 쉬세요.”한다.
입맛이 없다 하니 남편은 “배식은 내가 먹을게, 난 좋구먼, 뭐 먹고 싶어? 사 가지고 올게.” 한다.
“비가 많이 와서~ 먹으러 나가기도 뭐하네, 아들! 뭐 먹을래? “
“전 아무 거나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김밥과 떡볶이 어떨까?” 했더니, 남편은 천연덕스럽게 “들었지?” 하며 신용카드와 우산을 아들 손에 준다. 아들은 쏟아지는 빗속을 걸어 김밥과 떡볶이를 사 오고, 남편은 내 침대에 누워 내가 까주는 귤을 먹고 졸았다.
창가에 떨어지는 빗물이, 내가 없는 작은 마당의 이 짧은 휴가가, 잡초들에겐 일생일대의 자유이며 평화일 것임을 생각하니, 이 또한 잡초에겐 넉넉한 생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집에 오니 잡초가 한가득! 한눈에 잔디밭 사이 오뚝오뚝 솟은 잡초가 보였다. 둥근 잎의 잡초는 팔을 벌리듯 성큼 자라 예쁘기 그지없다. 나의 부재를 틈탄 잡초의 당당한 성장! 비 온 후 잡초는 생명 그 자체다. 오늘 하루도 그저 잘 쉬기를! 비가 그친 저녁 남편과 팔짱을 끼고 집 주변을 걸었다. 2년 전부터 수레국화를 가득 심어 놓은 택지를 지나가며, “예쁘네! 여보, 내년에는 수레국화를 담벼락 근처에 심어 보자. 수레국화가 많이 번졌네” 했다.
남편은 “그러게, 놀랍네” 하며, 수레국화에 매달린 씨앗을 만지며
“이 씨들이 사방에 퍼져 수레국화가 펴도~ 이게 여기서나 대접받지~ 다른 곳에서는 잡초지~~ 알아볼 수 없으니” 한다. “그렇지, 우리 집 마당에 날아와도 다 뽑힐 테니.. 내가 의도하여 심지 않으면 아무리 예쁜 꽃도 잡초지, 몰라서 그럴 수도, 알아도 원치 않으면 그런 거지”
내가 작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넓은 택지 한 중앙, 홀로 서 있는 우리 집을 빼면 주변은 잡초 투성이었고, 우리 둘은 동시에 그 넓은 택지의 잡초들을 빙 둘러봤다.
“봐도 봐도 놀라워, 잡초의 생명력! 그렇지?”
남편은 내 어깨를 감싸며 “그러게 잡초는 정말 잘 자라네” 한다.
따스한 남편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세상에 수많은 남자도 내겐 그저 잡초 같은 거고, 당신도 내 울타리 안에 있으니 남편이지, 뽑혀 나가면 잡초와 다름없지. 나도 그렇고” 했다.
남편은 살짝 경직되듯 자세를 고치더니 “아니지! 아니야!” 한다.
“뭐가 아니야? 잡초 같은 남자, 잡초 같은 여자가 되는 거지”
남편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아니라니까! 난 잡초 같은 남자가 아니고! 난 전남편이야!! 전남편이란 네이밍이 있다고!” 한다.
퇴원 후 기운 없이 집 주변을 살살 걷다 남편의 전남편이란 외침에 배를 잡고 웃었다. 남편은 등을 고추 세우곤 날 보며 입을 앙 다물었다. 한 손은 배를 잡고, 한 손은 남편 얼굴을 가르치며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찔끔 베었다. 남편의 다물어진 입에 결의가 있어 더 웃겼다.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50대 남자라!
“알았어, 알았어! 잡초 같은 남자가 아니라, 당신은 전남편이야. 전남편!”
그제야 남편은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