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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Feb 14. 2021

이 집 짓는데 얼마 들었수?

집짓기 15: 정원에서 나무에 물을 주다가 만나 사람들!

2017년 가을 조성된 택지 위에 덩그러니 집을 지으니 주변 비어있는 택지엔 개망초(달걀 꽃)와 달맞이꽃 천지였다. 정원을 꾸며 주신 분이 정원을 만들 때 넣은 흙이 좋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산자락 땅을 퍼온 것인지 흙에 돌이 제법 들어있어 잔디를 밟다 보면 발밑에 돌이 밟혔다. 남편이나 나나 일머리를 모르고 출근했다가 퇴근을 하니 나무와 잔디가 심어졌고 그러려니 했다. 이사를 한후에 마당 흙을 보니 너무 거칠었다. 마음 같아서는 잔디를 다 걷어내고 흙을 바꾸고 싶었지만 남편은 "자랄 것은 다 자란다고 내버려 두라." 했다.


남편은 무심하게 정원을 바라봤고 나는 시간만 나면 돌을 골라 잔디를 야무지게 앉혔다. 날마다 돌을 골랐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돌을 골라냈다. 너무 고생한다면 그만하라 하던 남편도 잔디를 밟아보더니 골라낸 곳이 좋긴 하다며 자신도 하겠다 했다. 딱  한 평 고르더니 손을 놨다. 내게 "여보 잔디가 왜 잔디겠어, 밟아도 밟아도 잘 자라~ 걱정 마. "했다. 난 잔디도 생명인데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사서 고생이라 그만하라 해도 쑥쑥 자랄 잔디를 생각하며 돌을 골랐다. 돌과 잔디만 생각하니 온갖 잡념이 사라졌다. 무상무념에는 단순 노동만 한 게 없다. 절간을 들어간들, 성당을 들어간들 무상무념이 쉽겠는가? 내 집 마당에 앉아 무상무념을 얻기란 식물 가꾸기만 한 게 없다.  

2018년 첫 해 마당 모양. 반송을 심었는데 죽어 꽃나무 걸이를 했고. 잔디도 열심히 자라는 중이었다.
2018년 가을의 정원.. 잔디도 촘촘해 지고

그렇게 마당 가꾸기를 시작했다. 시아버님이 천안에서 갖다 준 주목과 남편이 바득바득 우겨 심은 개나리와 내가 반해버린 스카이로켓 향나무는 울타리가 되었다. 나무도 이사를 온 것이니 잘 자랄 것인지 죽을 것인지 모를 일이었고 나는 잔디와 나무에 물을 주며 나무들 하나하나를 보고 '잘 살아라, 함께 잘 살아보자.' 고 말을 걸었더랬다. 나무 울타리이니 개와 고양이가 나무 사이로 제집 드나들듯 오고 갔다. 시부모님이 오셔서는 "야 울타리는 해야지 이거 이래서 아무나 들어오겠다." 했고, 친정 엄마도 오셔서는 "그래도 울타리는 해라." 했다. 남편이 웃으며 "내 천천히 해볼게요." 했고 우린 3년에 걸쳐 기다란 나무화분을 직접 만들어 울타리를 만들었다.

2018년 늦가을 나무화분을 만들어 개나리를 옮겨 심고.

2018년 봄 퇴근하며 꽃들을 사들였다. 수국, 동백, 라일락, 마가렛, 송엽국, 사계 국화... 야들야들한 포트에 담겨있는 꽃들이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마당 한편에 심어놓으니 그리 맘이 좋았다. 주말에는 넋 놓고 잡초를 뽑다 보고 또 봤다. 바람에 살랑이는 꽃들, 벌들이 윙윙 거리며 수분하는 모습! 그냥 보고만 있어도 싱그러웠다. 그때는 택지에 우리 집만 덩그러니 있어 집 앞 인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가끔 연세 있는 할머니가 손녀, 손자 손을 잡고 한나절 걸어갈 듯 주변의 갈대를 꺾어 손녀 손에 쥐어주고는 그냥 배회하듯 걸을 뿐이었고 개 주인들이 개를 산책시키고자 줄을 잡고 배회할 뿐이었다.

 2018년 7월 스카이로켓 향나무 앞에 심어진 코스모스

첫해 남편은 코스모스 씨를 사다 스카이로켓 향나무 아래에 가득 뿌렸고 7월이 되니 코스모스는 일 미터도 넘게 쑤욱 자랐고 커다란 꽃이 피었다. 스카이로켓 향나무에 뿌려놓은 유박의 영양분을 코스모스가 모두 끌어간 게 아닐까 의심이 들도록 코스모스는 번창했다. 그즈음 사람들이 집 앞을 많이 걸어 다녔다. 걸어가던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도,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가족도, 그냥 혼자 걸어가던 아주머니도 꽃 사진을 찍었다. 황망한 택지의 잡초들 사이에 코스모스가 가득 피었으니 말이다. 날마다 하루 한두 시간 잔디 사이의 잡초를 뽑고 꽃을 심곤 했다.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머리를 숙이고 한참 땅을 파던 내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잠시 우물쭈물하다 늘 물었다.


이층 안방과 서재 베란다에 있던 제라늄은 참 잘 자랐었다.

"아이고 집 짓고 마당 만드니 좋으시겠어요?"로 시작된 질문들은 짧게는 2분 길게는 10분이 넘는 대화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여자분들은 주로 마당 가꾸기가 힘들지 않냐? 하고 남자분들은 마당이 있으니 건강에도 좋고 참 좋겠다 부러워하셨다. 부부가 함께 묻는 경우는 남편은 집을 짓고 싶은 의사를, 여자분은 내가 마당일 까지 해야 쓰겠냐며 그 짧은 대화에도 견해 차이가 스스럼없이 보였었다. 남자분들은 사모님이 일을 하시니 남편분이 얼마나 좋아요! 하고 여자분들은 벌레가 많아서 할만하세요? 했다. 집을 짓자고 한 것도 마당에 잔디를 식재하자고 한 것도 나니 나는 그냥 웃었다. 잔디나 꽃도 나무도 다 생명인데 내가 조금 거들뿐 그들은 그들의 생명을 유지할 뿐인데 내가 엄청 정성 들여 키우듯 생각하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2019년 뒤꼍의 루드베키아... 질투의 화신인지 남편은 노란 꽃을 너무 좋아한다.

식물도 영악하다. 서로가 싸우면서도 잘 산다. 기후가 맞지 않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닌 나의 잘못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기후만 맞으면 가물 때 물만 주면 나머진 그들이 알아서 뻗어나가고 그들끼리 싸우며 자랄 뿐이다. 우리 집도 마당일은 내가 주로 하기로 했으니 지나가던 여자분들이 속으로 웬 고생을 그리 사서 하나 했겠지 싶다. 질문들이 오가다 보면 늘 질문의 귀결은 두 가지 정도로 귀결되었는데 대지와 집이 몇 평이냐는 것이었다. 대지와 집의 평수를 알려드리고 나면 연세 드신 분은 모두 한결같이 물었다.


"그래 이 집 짓는데 얼마 들었수?" 했다. 생전 처음 보신 분들이고 나는 일하던 중 그분들이 말을 걸어 쪼그려 앉아 잡초를 캐다, 꽃에 물을 주다, 돌멩이를 줍다 고개 들어 처음 뵌 분들인데 그분들은 몇 분 만에 이 집이 얼마짜리 집인지를 물었다.


처음엔 얼마나 당황했는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형편에 맞춰 집은 지을 수 있는 거라서요. 자재에 따라 평수에 따라 집의 구조에 따라 집 짓는 가격은 천차만별이라서요." 하고 에둘러 집 짓는 총비용을 말하려 하지 않는데도 그분들은 꼭 집 가격을 알고 가겠다고 작심한 듯 "그러니까 평당 얼마여서 모두 얼마 들었소?" 했다. 대지와 집의 평수를 미리 말한 터이니 평당 가격을 말하면 집의 가격이야 산수만 해도 알 수 있으니 그분들은 다짜고짜 이제 네 집의 가격을 알고야 말겠다는 듯 말을 접지 않았다. 참 난감했고 지금도 난감하다. 그냥저냥 대략의 가격을 말씀드리면 알았다 하며 그제야 발길을 돌렸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수많은 정보가 널려 있는데도 그랬다.


2019년의 마당. 잔디가 촘촘하고.. 나무화분 사이에 가벼운 담을 꽂고.
잔디는 물만주면 잘 자라고..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삼 년이 지나 사 년째이지만 실제 옆집에 집을 짓고 들어오시는 이웃은 묻지 않는 질문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길가던 나그네들이 물어보니 너무 궁금했다. 묻는 이유가? 사실 엄청난 금액으로 으리으리하게 지은 집도 아니니 뭐 숨길 것도 없지만 질문을 받았을 때의 느낌은 좀 뭐랄까? 내가 입고 있는 옷의 가격표를 그냥 알려달라고 조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게 궁금한지 모르겠다.


가끔 집이 춥지는 않은지, 조용한지, 아파트처럼 편안한지, 관리가 어렵지 않은지 묻는 분들은 이해가 가고, 집을 지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드는지, 집 짓는 회사는 어디로 하는 게 좋은지, 마당 관리는 하루에 몇 시간 드는지, 나무에 물 주기는 힘들지 않은지, 꽃들은 어디서 사는지 묻는 분들이 있지만 그런 질문들은 되려 쪼그려 앉아 일하다 반갑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데 두어 마디 말을 나누고 집값을 물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젊은 사람들은 좀처럼 집값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동료들은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며 찬찬히 말을 하다 자연스레 집 짓는 비용을 말할지라도 말이다. 우리 집 앞을 산책하다 내게 질문한 많은 분들 중 집값을 대놓고 묻던 분들은 다 연세가 있던 분임을 발견했다. 마치 딸이나 며느리에게 묻듯 스스럼없이 말이다. 나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그분들은 참 스스럼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은 인근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이었는데 정말로 집을 짓는 가격이 궁금하고 지어볼까 하는 생각들이 있었던 듯하다. 어디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기도,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도 애매한 연령대여서 그분들은 몇 번을 오가다 큰 용기를 내어 물어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냥 호기심에 물어봤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2019년 가을 꽃들이 나무화분에 심겨지고

삼 년이 지난 요즘 지나가다 집 가격을 묻는, 집 짓는데 평당 얼마 들었수? 하고 묻는 분들은 없다. 아마 묻고 싶다면 주변에 지어진 새 집들의 주인들에게 말을 붙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정원 가꾸는 일이 점점 준다. 쪼그려 앉아 잡초를 뽑을 만큼 많은 잡초가 잔디 사이에 살지 못한다. 잔디가 워낙 촘촘해 잡초가 자랄 틈이 없으니 말이다. 정원일은 삼 년 정도 하니 꽃을 심거나 시든 꽃을 따주거나 한여름 가물 때 물을 주는 것 이외에 별로 손이 가지 않는다.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제 때의 꽃을 구경하고 나뭇잎을 줍고 시든 꽃을 따주면 그만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멍 때릴 것을 찾느라 고생인데 작은 정원이 있으면 '물멍'(물주며 멍때리기)을 실컷 할 수 있다. 한여름 나무에 물을 주자면 두어 시간은 주는데 해질 무렵 물을 주면 물들이 수도관을 타고 나와 뜨거운 공기를 잠시 만났다가 뜨거운 땅을 지나 나무뿌리를 거쳐 나의 사랑스러운 스카이로켓 향나무의 가지 속으로 여행할 것을 생각하면 물의 인생과 나무 인생 그리고 나의 인생이 한여름의 오후 한때를 관통해 만나는 것이 좋을 뿐이다.

스쳐 지나가시며 묻던 "이 집 짓는데 얼마 들었수?" 하셨던 그 많은 사람들은 집을 지었을까 싶다. 너무 당혹스러운 질문들을 하셨던 그분들이 자신들이 상상했던 집을 짓고 살고 있으면 싶다. 생각만큼 힘든 일이 아니고 생각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니 여건만 허락한다면 자신만의 멍 때리는 공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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