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도 만들어 달라는 시어머니!
집짓기 16: 공간은 무엇으로 완성될까?
2003년 가을 둘째 돌이 지나 이태리로 일 년간 유학을 다녀온 후 대전에 집을 짓고 살아볼까 땅을 알아봤었다. 어머니가 아들과 딸을 일 년 돌봐주었기도 했고 딸은 얌전했지만 아들이 뛰어다닐 때 뛰지 마라 하고 싶지 않아 단독주택에서 살까 했다. 시부모님과 함께 살기엔 아파트보다 주택 일이층 공간에 사는 것이 좋을 듯하여 남편에게 집을 짓고 부모님과 일이층을 나눠 사용하면 어떤지 물었다. 아이들이 어리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가니 말이다. 남편은 외아들이니 좋아라 했다. 둘이 주말이면 택지를 알아봤다. 살고 있는 아파트를 팔면 집 지을 비용은 될듯했는데 땅이 문제였다. 마침 좋은 자리가 나 시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시아버지는 천안 근거지를 옮기기 싫다 하셨고 시어머니도 반신반의했다. 시부모님은 남편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간 빌라에서 몇십 년을 살고 계셨는데 천안역도 가깝고 성당도 가까우니 좀처럼 움직이길 거부했다.
우리가 2015년 택지를 사서 집을 짓겠다 하니 어머니는 내게 "단독주택은 관리가 어려운데 그냥 아파트에 살지 왜 그러냐." 했다. 옛날 주택에 살 때 너무 추워 고생하던 얘기며, 도둑이 들어 깜짝 놀란 동료 교사의 얘기며, 마당청소며, 손볼 것 많은 주택 단점을 주~욱 늘어놨다. 그냥 편하게 살지 왜 단독주택에 들어가서 고생하려는지 했다. 남편이 요즘 집들은 따스하게 지어질뿐더러 택지로 조성된 곳이어서 도시가스에, 전기배선에, 지중화 작업이 되어있어 전봇줄이 없는 곳이라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셨다.
택지를 계약한 후 시부모님은 2016년 늦봄 택지를 보시겠다 오셨다. 아버님이 막대기를 들고 열심히 걸어 다니시더니 "수맥이 흐르지 않는 곳"이라며 나를 보고 "참 잘 골랐다. 수맥도 없고 남쪽에 높은 건물도 없이 멀찍이 동, 북, 서 방향에 높은 아파트가 산처럼 둘러싸여 좋구나!" 하셨다. 어머니는 "앞에 큰 건물이 없어 볕이 잘 들겠구나!" 하며 택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며 밝은 표정을 지으셨다. 나를 보며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택지여서 앞쪽에 상추와 고추를 심으면 좋겠구나." 했다. 남편은 "뭘 길러 먹어요." 했고 어머님은 "농약도 안치고 친환경으로 푸성귀를 먹으면 좋지~." 했다.
아버님은 택지가 조성된 곳을 걸어보시곤 "방은 몇 개 만들거니?" 했다. 남편은 "방 많으면 뭐해요. 얘들도 다 컸고 딱 세 개만 만들려고요." 했다. 아버님은 머리를 끄덕이고 어머님은 질문공세를 펼쳤다. 아들 직장이 몇 분 거리에 있는지, 주변에 마트를 걸어갈 수 있는지, 큰 대형 몰은 어느 정도 거리인지, 손자 학교는 몇 분 거리인지, 버스 터미널에서 한 번에 오는 버스노선이 있는지, 기차역에서 오는 방법은 편리한지 등. 아들 직장이 차로 7분 거리고 살살 걸어 큰 마트가 5분 거리에 있고 대형 00 마트가 차로 7분 거리고 손자 학교는 차로 10분이면 된다 하니 어머님은 "그럼 됐다." 하시며 "조용은 하냐?" 물었다.
내가 "어머니, 새로 조성된 곳이고 아파트가 적당히 떨어져 있어 차가 거의 없어 조용해요. 6차선 도로도 멀찍이 떨어져 있어 당직 끝내고 집에 와 낮에 쉴 때 소음 걱정은 없을 듯해요." 했다. 시부모님은 아들이 힘들게 당직서고 다음날 얼마나 편안하게 쉴 수 있는지가 제일 큰 걱정이었는데 한낮에 집터에 있어도 무슨 소리라곤 들을 수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올라가셨다.
건설사와 계약을 하고 설계도면을 뽑는다. 남편이 전화를 드리니 어머니는 남편에게 밝은 목소리로 "얘 거기가 양지바르고 조용하니 좋을 듯하더구나. 내가 돈 줄게 내방하나 만들어주렴." 했다. 남편이 전화를 받다 날 쳐다봤다. 남편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그렇게 단독주택을 지으면 고생이라 하시던 어머니가 당신 방을 만들라니 남편이 웃으며 "엄마! 빌라 팔고 아파트로 가라 해도 안 가시더니. 이제 와서? 얘들 어려 우리가 함께 살자 할 땐 안 합치고? 그럴 거였으면 대전에서 집 짓고 살았어야지요. 그때 그냥 한 소리 아닌데, 엄마가 일층에 살고 우리가 이층에 살자고 할 땐 싫다 하시고 이제 와서? 우리가 살자 할 땐 단칼에 거절하시더니? 함께 살기 어려워요. 천안에서 이사 오실 거면 가까운 아파트에 계셔요." 했다. 참 모진듯한 말이지만 남편은 단호하지만 살갑게 말했다. 아들이니 가능한 일이다. 내가 옆에서 봐도 남편 말은 얄미웠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현실이니 말이다.
사람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각자 요구가 있어서다. 아이들이 한창 손이 필요할 때(딸이 1학년, 아들 두 살 때) 시부모님은 합가를 거부하셨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청소며 빨래, 다림질을 하러 집에 오면 어머님이 이것저것 일을 시키곤 했었다. 나나 남편이나 집안일을 부탁하려 시부모님께 합가를 하자고 한 게 아니었다. 조부모의 존재 자체가 주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빈 집을 열고 들어가지 않는 따스함, 누군가 늘 자신들을 기다린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를 주고 싶었는데 두 분은 그땐 젊어 일주일에 이틀이나 삼일만 잠시 머물다 가고 싶어 했다. 사실 남편이야 자신의 부모였으니 편안했겠지만 내게 있어 시부모님은 늘 어렵고 모셔야 하는 분들이었느니 맘은 살얼음판 같았다. 정이 든 것과 책임과 의무는 다른 영역이다. 오래 알고 지냈다 하여 불편함이 사라지고 편안함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부부만의 집을 짓겠다 하니 시어머니가 방을 만들어 달라하니 며느리인 내가 뭐라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남편은 확고하게 의사 표명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남편은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너무 모진 것 아냐?" 하니 남편은 "나야 부모님이 늘 걱정되지. 그리고 함께 살면 부모님은, 특히 엄마는 좋겠지, 그런데 당신이 어디 그래? 당신이 편하게 살고 싶어 짓겠다고 나선 일인데,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했다.
공간을 만들고 나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 공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지저분한 공간에선 사람들의 행동이 지저분해지고 깨끗한 공간에선 깨끗함을 유지한다. 공간 자체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공간 또한 사람에게서, 사람 관계에 의해 지배받는 곳이다. 집은 물리적 공간만 있는 게 아니다. 관계에 의해 형성된 무형의 무드, 공기가 있다. 가족들이 만든 공기의 흐름은 집을 따스하게도 차갑게도 어눌하게도 무겁게도 만드니 말이다. 집속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 설정에 따라 공간은 사랑의 증폭, 불편함의 증폭을 유발함을 나는 안다. 어떤 관계도 일방향은 어렵고 곤혹스럽다. 진정한 관계는 쌍방향의, 동등한 소통의 관계만이 발전적이고 힘이 있음을 말이다.
요즘 아들이 서울 기숙사에서 지내 집은 남편과 나의 공간인데 그리 편할 수 없다. 자식은 아무리 예쁘고 좋아도 성장하면 자기 공간을 만들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싶다. 아직은 주말마다 내려오는 아들을 보고 남편은 "나는 대학 때는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갈까 말까 했는데 너는 왜 그리 자주 내려오니?" 해서 내 눈총을 받았다. 내가 "여보! 나 때는 하면 당신 늙은 거야. 내려오고 싶으니 내려온 게고 보고 싶다 해도 못 볼 때가 생길터인데. 왜 내 아들 보고 잔소리를 하세요?" 하며 내가 눈을 흘겼다. 나도 안다. 이틀 함께 지낸 아들이 서울에 가면 얼마나 좋은지! 다 때가 있다.
공간을 만들고 나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그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그에 앞서 좋은 인간관계는 인생을 지배할 수 있음을... 아름다운 공간보다, 멋있는 공간보다,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집을 지으며 배웠다. 진정 공간을 지배하려면 사랑해야 함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