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양로원에 왜 가니? 아들이 있는데!
남편의 세계 16: 알다가도 모를 남편의 세계
지난주 금요일 서울에서 아들이 내려오니 남편은 "아무리 비대면 수업이라 대학생활 별것 없다 해도 왜 자꾸 내려오냐."며 투정을 했다. "아들 내려오니 난 좋구먼! 왜 툴툴대시나요?" 하며 "아들이 왔으니 맛난 것 먹어야겠네." 하니 남편이 내게 눈을 흘겼다. 일주일 만에 보는 아들은 반갑고도 귀엽다. 대학 합격 소식이 나자 아들은 졸업도 하기 전 "염색을 하고 싶어요." 했다. 밥을 먹다 남편이 "염색?" 했고 나는 "요즘 아이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다양한 색으로 염색을 하더구나." 하며 "무슨 색으로 할 거니?" 하니 아들은 "그러게요. 무슨 색이 좋겠어요?" 했다. "네 맘대로 하렴. 빨강이던 노랑이던 파랑이던 초록이던. 몇 달에 한 번씩 색을 바꿔 보던지. 엄마가 첫 염색만큼은 돈을 주지." 하니 아들은 좋아라 웃고 남편은 샘을 내며 "넌 좋겠다." 했다.
딸이 결혼하여 아들만 데리고 사니 밥을 먹어도 가까운 산을 가도 뭔가 빈듯하다. 온전한 넷이 그립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생이란 그런 것 아닌가? 아들이 온 주말 "점심에 뭐 먹고 싶냐?" 물었더니 "혼자 먹을 수 있는 것 말고 여럿이 먹으면 맛난 칼국수가 어때요?" 했다. 남편이 "칼국수 좋지! 너 거기 가봤던가? 금강하구둑 철새조망대 근처 000 칼국수집 말이다. 거기가 국물이 아주 좋고 면도 맛나더라. 자전거 타며 엄마랑 가봤나?" 했다. 나도 기억이 오락가락하여 "거기 갔었나? 아들?" 하니 아들은 "아뇨~ 거기는 엄마랑 자전거로만 지나쳤고 들어가 먹지는 않았어요." 했다. "그래? 그럼 오늘 가자. 거기 참 좋더라! 밥 먹고 살살 철새 조망공원을 걸어도 좋지." 했다. 아들은 "일단 가요. 걷는 건 가서 생각하죠." 했다.
칼국수 집은 이미 4인 이하 가족과 손님들로 붐볐다.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80에 가까운 어르신들, 60대 은퇴자분들, 부모를 모시고 나온 가족 등이었다. 드문드문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한 칸 뛰어 앉기를 해서 그런지 넓은 홀은 한산한 듯 붐볐다. 큰 냄비에 담긴 국물이 가스불에 끓여지는 동안 전식으로 나온 찹쌀 보리밥을 열무김치에 비벼 몇 숟가락 먹었다. 남편은 핸드폰을 잡고 기사를 읽고 있었고 아들은 맛나게 밥을 먹으며 나를 보고 살포시 미소 지었다. 내가 "아들 맛있지? 난 이 집의 찹쌀 보리밥이 참 맛나더라. 작은 보리쌀이 찰지고. 고추장이 어쩌면 이렇게 보리밥과 잘 어울리는지. 괜찮지?" 했다. 아들이 "네, 그러네요. 맛있어요." 했다. 내가 "늙어 이가 시원치 않아도 이런 보리밥은 잘 먹을 것 같네." 했다.
내 오른쪽 테이블엔 나이가 70대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있었고, 왼편은 70대가 넘은 분들이 맛나게 칼국수를 드시고 있었다.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여기는 좋아할 것 같다. 그지?" 하니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그렇지? 내려오시면 여기도 한번 와야겠어." 했다. 내가 "여보! 이번 주 브런치 글엔 어머니, 아버님 얘기가 있으니 당신이 보고 발행하지 말라면 안 할게. 지금 한번 봐." 했다. 남편이 "그럴까?" 하며 내 핸드폰을 받아 브런치 작가의 서랍 속 글을 읽었다. 몇 분 흐른 후 남편은 씁쓸한 미소와 함께 "발행해. 없던 일도 아니고.(내방도 만들어 달라는 시어머니!)" 했다.
내가 "그때 당신이 그렇게 말해서 어머님이 정말 서운했을 거야." 하니 남편은 "객관적 현실은 인정해야지." 했다. 내가 "아니 아버님은 일 년 전인가? 집에 오셔서 친구분들은 양로원에 하나둘 가는데 난 양로원에 안 간다. 하셨을 때 나는 뭐라 대꾸하기가 어려웠는데 당신이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보고 참 그랬는데." 했다. 남편은 "사람이 얼렁뚱땅 대충 넘기려면 무슨 말을 못 하겠어. 그럼 안되지. 현실을 직시해야 돼." 했다. 아버님이 양로원에 안 간다 할 때 남편은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부모님께 조곤조곤 말했었다. "아버지! 양로원에 안 가시면 집에서 누가 보살펴요! 혼자 있어요? 집에 혼자 있는 노인들이 가장 불행한 거예요. 좋은 양로원에 들어가면 친구들도 있고 다양한 시설도 이용할 수 있는데 왜 안 가요." 했다. 남편은 응급실에서 수많은 노인환자들을 봐온 터였다. "제가 응급실에서 보면 혼자 집에 있다 거동이 불편해 밥도 굶고 아파도 아 소리도 못하다 오는 노인분들이 가장 불쌍해요. 자식이 바쁘면 돌본다 하지만 문을 잠그고 나가요. 그게 어디 사는 거예요? 잘 보살피는 곳에 가서 여러 어르신들이 함께 있는 게, 돌봄 전문가들과 함께 있는 게 좋은 거예요." 했다. 내가 그 말을 다시 한번 전하며 "당신은 참 담담하게 말하더라고." 하니 남편은 "원래 인생 그런 거야." 했다. 아들은 조용히 우리말을 듣고 있었다.
남편은 "모진건 아무도 모르게 외면당하는 게 모진 거야. 잘 모실게요 해놓고 집안에 가둬놓듯 하는 게. 그럼 당신이 하루 종일 붙어서 간호할 거야?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해. 어림도 없지. 운이 좋아 좋은 돌봄인을 만나는 게 그렇게 쉬워? 개별화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사람이야"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나를 보며 "엄마는 미리미리 좋은 양로원 알아봐 두세요." 했다. 내가 "그럼~ 네가 엄마가 벌어놓은 돈에 욕심만 내지 않으면 엄마는 모아놓은 돈으로 깨끗하고 시설 좋은 양로원에 들어갈 거야. 그게 속편 하지. 아빠가 따라오든지 안 오든지 말이다." 했다. 아들은 "알았어요. 욕심 안내요." 했다.
내가 "허긴 우리 미국 연수기간 중 텐트 치고 넷이 여행할 때 사주 본 것 생각하면 딸, 아들이 그리 효도한다고 나와 있었잖아. 텐트가 떠나가게 좋아서 웃었었는데 아들이 얼마나 효자 인지 궁금하네." 했다. 남편이 눈을 반짝이며 "그랬지. 그때 사주에 그렇게 쓰여 있었지. 어려서도 효도 하지만 커서 더 지극히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주라고. 부모 입장으론 최상의 자식 사주다 했던 기억이 나네." 했다. 내가 "어쩌다 텐트 치고 사주를 봤더라?" 하니 남편이 "그냥 우리 사주 얘기하다 얘네들이 궁금하다 하여 사주를 본거지. 와이파이 켜서 보는 인터넷 사주니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여하간 기분은 최고였지. 부모에게 지극한 효를 행한다 하니 말이야." 했다.
남편이 신이 나서 말을 하고 국수물이 남편의 신난 맘을 받아치듯 뽀글뽀글 끓고 있었다. 내가 면을 밀어 넣고 국수를 휘휘 젓어 풀었다. 내가 웃으며 "얘네들이 효도한다고 했는데 다 했지 뭐. 건강하게 자라면 효도지. 자식의 최대 효는 건강하고 정신도 바르게 자라면 그게 효도야. 딸도 결혼해 잘 살고 아들도 찹쌀떡처럼 한 번에 대학에 붙고 말이야." 하며 내가 "아들 네가 효자다. 다 했다. 효도!" 하니 남편은 "무슨 소리! 이제부터 시작이지. 내가 키우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며 건강한 건 당연한 거고 이제부터 우리 죽을 때까지 효도를 해야지. 사주팔자에 그리 나와있는데 다 했다니?" 했다. 내가 너무 웃겨 "당신 욕심이 장난 아니네. 그지 아들?" 하니 아들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눈빛이었다. 내가 "여하간 아들 엄마는 가고 싶은 양로원 잘 아아봐서 알려줄게 걱정 말아라." 하니 아들은 안도의 눈빛으로 옆에 있던 아빠를 쳐다보며 "아빠는요?" 했다.
남편은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내가 양로원에 왜 가니? 아들이 있는데!" 했다. 아들 눈동자가 그리 흔들릴 줄이야. 눈앞에서 몇 년 전 봤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입을 앙다물듯 입술을 당기더니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양로원에 가셔야죠!" 했다. 너무 웃겼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내가 "여보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당신은 아버님이 그리 말할 때 양로원에 가셔야죠 하곤 집에 방치되는 노인들의 실상을 그렇게 읊어놓곤 아들이 있어 왜 가냐니? 양로원에. 참 한 입 갖고 두말하는 것. 그거 유전이야 유전!" 했다. 남편은 크게 웃으며 "내가? 한 입 갖고 두말? 그런가? 그런 건가?" 했다.
아들은 칼국수를 먹으며 "엄마가 좋은 곳 알아놓을 테니 그곳에 함께 가셔야죠. 떨어져 있을 거예요?" 하니 남편은 "엄마는 죽기 전까지 내가 잘 데리고 있을 거라니까? 엄마가 내가 먼저 아파하다 죽는 꼴을 어찌 보냐. 하루라도 내가 살아서 엄마를 잘 보내줘야지!" 했다. 내가 익은 칼국수를 그릇에 담아주며 "누가 그래! 내가 먼저 죽는다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들도 어이가 없어 그저 웃고 남편과 나도 크게 웃었다. 우리의 도달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서로 맘을 준비하며 웃었다. 아들이 "좋은 양로원에 가셔야죠." 하는 말로 엄마, 아빠의 늙은 미래를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차를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아들이 지나가듯 한마디 던졌다. "건강하게 사세요. 일 너무 많이 하시지 말고요. 아빠! 당직 너무 힘들어요. 옮기셔야죠."
딸, 아들이 모두 성인이 되니 맘이 자유롭다.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큰 효도를 받았다. 그리고 이리 웃으며 밝게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하는 것도 효도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 미흡한 것을 안 볼 수 없지만 자식 스스로 보지 않는다면 부모는 그저 스스로 볼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계절이 차지 않았는데 여물지 않은 사과를 보고 빨리 익으라 한들 익겠는가 말이다. 다 자기 시간이 있다.
남편이 "내가 양로원에 왜 가니? 아들이 있는데!" 하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요즘도 밤에 침대에 누워서는 내가 놀려먹는다. "아들이 있는데 양로원에 왜 가냐고? 그리고 하루라도 날 일찍 보내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하시네요." 남편은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좀 놀려먹으려 말한 거야! 그걸 가지고 그렇게 날 놀려?" 했다. 내가 "뭔 소리. 부전자전이라고 당신 아버지를 보는 줄 알았어!" 했다. 요즘 밤마다 남편 놀려먹는 재미로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