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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Mar 28. 2021

아내는 못 바꿔도 씨앗은 일 년마다 바꿀 수 있잖아요!

남편의 세계 17: 동네 주민을 만나 수다를 떨다.

봄이되니 함께 사는 동네 주민분들이 정원을 가꾸느라 모두 바쁘다. 포트 하나에 천원 이천원하는 마가렛, 팬지, 바이올렛, 사계 국화를 사다 빈 마당 곳곳에 심으니 말이다. 작년에 집을 짓고 처음 봄을 맞이하는 동네 어르신은 시간만 나면 군산 대야시장, 개정동 시장을 찾아 일찍 핀 수선화, 수국, 천리향, 시네라리아를 사다 심어 마당이 화사해졌다. 주변에 모여있는 몇 안 되는 집들이 봄을 맞이하여 꽃과 나무를 사다 심으니 저녁마다 걷는 길이 새로웠다. 동네 주민들은 저녁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다른집 마당을 구경하고 있다. 우리 부부도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엔 근처 식물원에 가 꽃을 사다 심고 동네를 돌아다닌다. 꽃도 유행을 탄다. 봄이면 처음 보던 꽃들이 나온다.  


처음 집을 짓고 마당에 꽃을 심는다 하니 남편은 두세 포트만 사서 심으면 되지 자꾸 이것저것 심는 나를 마뜩잖아했다. 내가 "꽃은 내가 알아서 심을 게 그냥 구경이나 하세요." 했다. 꽃 한판이라고 해야 만원을 넘지 않았다. 커피값, 점심 한 끼 값인데 꽃을 피우기 위해 농부가 겨우내 들였을 정성을 생각하면 너무 싸다 생각되는데 남편은 많이 산다 구박했다. 집을 짓고 두 번째 겨울 남편은 자신이 씨앗을 길러 보겠다 나섰다. 첫해 봄 담장에 코스모스와 루드베키아를 가득 뿌려놓았던 남편이었다. 여름이 되니 일 미터가 넘게 꽃들이 자라 남편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씨앗들이 며칠 간격으로 집에 도착했다. 실내 발아용 포트가 도착하니 남편은 정성껏 발아 포트에 씨앗 하나하나를 넣었다. 작년 초에는 썬룸에 40여 개의 씨앗 포트와 넓은 화분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 씨앗이 발아됐는지 살펴보고 시간 날 때마다 물을 챙겨주고 햇볕을 가려주고 했다. 씨앗이 발아되어 쑤욱 올라오니 남편 어깨는 새싹 쏟듯 올라갔다. "거봐 이렇게 하면 발아가 잘 된다니까? 그냥 사다 심는 것보다 얼마나 좋아! 이렇게 발아해서 키우면 돼지." 했다. 2월이 됐을 때 발아했던 씨앗들 키는 조금씩 자랐지만 다 그만그만했고 3월 초가 되니 마가렛 심었던 장소에서 자연 발아 씨앗이 쑥쑥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여보 뭔 발아를 한다고 그 정성을 들여요. 그냥 그 씨앗을 마당에 뿌리면 되지. 집안에서 그걸 발아시킨다고 생 난리를 하시고. 그냥 다 알아서 자라니 다음부터는 밖에다 심어요." 했다. 남편은 "두고 봐! 당신이 화원에 가서 꽃을 사지 않아도  터이니~ 날 믿어!" 했다. 2020년 초봄의 일이었다.


작년 3월 말 발아된 씨앗들은 성장을 멈추고 그대로 있다 모두 돌아가셨다. 남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왜 그렇지? 싹이 잘 트곤 왜 그냥 죽는지 모르겠네." 했다. 나도 모르고 남편도 모르고 3월 말에 다시 화원에 가 꽃들을 사다 심었다. 남편이 구매한 씨앗은 하나에 천 원, 이천 원 하던 것도 있었는데 조그만 꽃은 한 개에 천오백 원이었다. 내가 꽃을 사 오며 "아이고 참 화원에서 전문가가 하게 내버려 두지~그렇게 난리를 펴더니 하나도 제대로 산 게 없네. 당신 맘은 알겠는데 그만하세요." 했더니 남편이 민망하게 웃으며 "그래야 하나?" 했다.


작년 겨울 다시 남편이 분주해졌다. 아름다운 제라늄 씨앗을 사서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제라늄을 키워주겠다 장담을 했다. 씨앗 사이트를 내게 보여주곤 "어느 것이 맘에 들어. 골라봐! 내가 다 키워줄게~. 내가 알았어. 왜 그런지." 했다. 내가 맘에 드는 꽃을 고르곤 "그럼 이번에 잘 키워줘요." 했다. 작년에 다시는 씨앗을 키우지 않을 듯하여 플라스틱 포트들을 다 버린 터라 다시 택배가 줄을 이었다. 작은 도시락 만한 크기의 12개로 구획이 나뉘진 포트에 새 흙을 넣고 보내준 고급진 씨앗을 하나하나 정성 들여 심어줬다. 시작이 좋았다. 추우면 안 되니 거실 한편에 물을 촉촉하게 넣고 쉽게 마르지 말라고 뚜껑까지 잘 덮어 줬더랬다. 며칠이 지나자 새싹이 고개를 드밀고 올라왔다.


2021년 3월 6일 제라늄 씨앗의 성장... 기들기들

남편은 아침마다 일어나 새싹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내게 마당 어디에 심을지 장소를 정해달라 재촉했다. 내가 "일단 여기서 잘 자라면 장소 정해줄게요. 이거 다시 비들 거리 지는 않겠지? 작년에도 발아는 잘 됐지만 그 뒤로 계속 고만고만하다 다 죽었잖아." 하니 남편은 "이제 그럴 일은 없어 걱정하지 마!" 했다.


일주일이 넘으니 발아된 새싹이 2cm는 됐고 가운데 새잎이 나오려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마당에도 마가렛 씨앗은 건강하게 올라오고 있었고 하루게 다르게 쑤욱쑤욱 자랐다. 3주 전 사온 루콜라 씨앗도 마당에 그냥 대충 뿌리자 하니 썬룸 화분에 심어야 한다며 화분 흙을 다듬고 뿌렸는데 씨앗이 남아 내가 마당 한편에 땅을 긁고는 그냥 씨를 부렸더랬다.  역시 루콜라 씨앗의 발아는 화분이 빨랐다. 썬룸의 온도가 마당보다는 높으니 루콜라 떡잎은 썬룸 안에서 빠르게 올라왔지만 역시 마당에 심긴 루콜라는 하루게 다르게 성장하더니 지금은 썬룸의 루콜라보다 건장하게 자라고 있다. 정성의 문제가 아닌 땅의 힘이 문제인듯한데 남편은 자신의 정성으로 씨앗을 잘 컨트롤할 수 있다 여겼다.

2021년 3월 11일: 고급진 제라늄 꽃을 보여주겠다는 남편의 빅 픽쳐!

마당의 씨앗들이 다 돋아나고 있는데 2월에 심어놓은 비싼 제라늄 씨앗은 고만고만하게 자라고 있어 남편은 기가 죽었다. 이러던 차에 동네 주민 부부가 우리 집 앞을 걸어가다 우리와 인사를 하곤 집에 들러 차를 마시게 됐다. 민들레차와 커피를 내려 어둑어둑해지는 정원을 바라보며 정원 가꾸기를 뽐내듯 남편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앞집 아저씨는 우리보다 7개월 먼저 집을 짓고 사시던 분이었는데 처음부터 정원 가꿀 생각이 없어 넓은 뒤 마당을 맹지처럼 놔두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과 우리 옆집이 들어서고 정원 가꾸는 모습을 보시더니 작년 봄부터 대대적으로 나무와 꽃들을 심기 시작하셨다. 우리야 작은 정원이지만 그 집은 택지 두 개를 갖고 계셨고 이미 한 부지는 집을 짓고 사니 나머지 빈 택지부지에 몇십 그루의 철쭉, 몇십 개의 백일홍, 천일홍, 팬지, 매리골드 등을 심기 시작했다.


올해 2월에 가보니 좋은 흙을 한가득 사 정원 흙을 올리곤 본격적으로 정원 꾸미기를 할 태세를 했다. 지난주 동네를 산책하다 만난 앞집 아저씨는 금잔화를 50개 정도 사다 심고 흰색, 노란색 수선화를 심고 계셨다. 인사를 하며 "사모님과 차 마시러 오세요." 했었는데 저녁 산책 중 두 분을 만나 집에 초대한 것이었다.  사모님과 남편분이 우리 부부와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고 아이들 성장도 거의 같아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자식은 타지로 나가고 부부만 살고 있었는데 우리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낮에는 바쁘고 금요일 오후나 주말이 한간한 사람들이었다.


차를 마시며 우리 부부가 "정원 참 잘 가꾸셨더라고요." 하니 앞집 남편분은 "저는 집 짓고 처음엔 정원 가꿀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을 구경하다 보니 좋더라고요. 그래서 몇 그루 나무와 꽃을 심었는데 자라는 것을 보니 그리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했다. 앞집 사모님은 "글쎄 눈만 뜨면 정원에 가 있고 저녁마다 뭘 사 가지고 와서 심고 아주 정원에 폭 빠졌어요." 했다. 남편이 커피를 내려 대접하며 앞집 아저씨를 보고는 "그렇죠? 새싹 나는 게 너무 예쁘죠. 저도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고것들을 보면 너무 좋더라고요. 제 와이프는 그냥 화원에서 사다 심으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구접스럽게 싹을 내냐고 하는데. 그걸 몰라요. 싹을 틔워서 보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했다.


2021년 3월 15일 제라늄...

차를 마시며 앞집 아주머니는 "노상 꽃을 사다 심고 꽃만 쳐다보고 있어요. 요즘." 하기에 내가 웃으며 "꽃은 쳐다보는데 우리 눈은 안보죠?" 하니 아주머니는 "눈요? 눈을 마주쳐요? 말도 없어요? 이이가 신혼 때는 엄청 잘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하며 앞집 아저씨를 쏘아봤고 아저씨는 미동도 않고 남편과 눈을 마주치며 "자라나는 식물을 보는 게 그리 좋은 줄 몰랐어요. 그걸 그냥 앉아서 쳐다보면 맘이 좋더라고요." 했다. 내가 "남편도 아침마다 새싹 보느라 넋이 나가는데 문제는 계속 죽여요. 잘 키우지 못하면 그만해야 하는데 계속해요. 그냥 화분을 사다 심어도 되는데 말이죠. "하니 남편은 "아니 집사람은 그걸 몰라요. 새싹이 나오는 순간의 그 기쁨을 말이죠. 얼마나 좋아요! 그죠?" 했고 앞집 아저씨도 강력히 동의한다는 의미의 고갯짓을 했다.


내가 "아니 계속 죽이면서 뭘 자꾸 새롭게 새싹을 낸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니 남편이 "새싹은 일 년마다 새롭게 시도해 보잖아요. 일 년마다 새로 시작하는 게 뭐가 있어요?" 했고 내가 웃으며 "무슨 정성인지. 물을 하도 줘 뿌리가 다 썩어 죽더구먼." 하니 남편은 지나가듯 "아내는 일 년마다 못 바꿔도 씨앗은 일 년마다 바꿀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하며 앞집 아저씨를 봤다. 앞집 아저씨 눈이 그 순간 너무 밝게 반짝였다.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저씨도 "그렇죠." 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편도 보란 듯이 웃으며 "그렇죠!?" 했다.


앞집 부부가 가고 난 후 내가 "뭐라 하셨드라? 본심이 막 잘도 나오시대요. 씨앗은 일 년마다 바꿀 수 있다고? 참." 하니 남편은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그냥 웃자고 한 얘기 갖고 왜 그래? 재미있잖아." 했다. 내가 남편 눈을 쳐다보며 "그러게 아저씨 눈빛을 봤는데 정말 당신 말에 옳구나 하던대!" 했다. 커피잔과 접시를 퐁퐁으로 닦으며 옆에 있던 남편 옆구리를 뚝뚝 쳤다. 내가 "진즉 얘길 하시지~. 날 못 바꿔 씨앗이라도 바꿔 심는다고. 그리 말했으면 내가 뭐라 했겠어?" 하니 남편은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여보~~ 장난한 걸 가지고 왜 그러셔?" 했다. 한동안 우려 먹어야겠다.


이러건 저러건 포트에서 자라고 있는 제라늄은 잘 자라 꽃을 피우길 바래본다. 남편의 정성도 정성이거니와 힘들게 땅을 뚫고 나온 생명 아니겠는가? 죽지 말고 잘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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