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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Feb 07. 2021

인테리어! 추억을 밟고 미래로!

집짓기 14: 집을 꾸미는 소소한 방법

집을 짓고 이사를 하니 집이 깔끔했다. 그래서 심심했다. 뭐 돈을 들여 장식할 생각이 없었으니 한 달은 모든 벽이 비어 있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출근과 퇴근을 하며 흰 벽들을 보며 '뭘 붙여보나?' 했다. 비어있는 딸방에 짐을 쌓아두고는 남편과 집안을 어정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짐 속에 숨겨져 있던 딸 그림들이 생각났다. 2014년 미국 연수 기간 딸은 CMU(Central Michigan Universty)에서 어학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이며 시각디자인 전공인 딸에게 "그림 좀 그려볼래?" 했더니 딸은 "그럴까요? 뭘 그려볼까요?" 했다. "그냥 아빠 엄마를 한번 그려보지 그러니?" 했다. "그래 볼까요?" 하고 네 개의 그림(제목: 부모, 엄마, 아빠, 할아버지)을 그린적이 있었다. 

딸이 그린 부모의 모습

부모란 그림을 처음 그려 우리 앞에 내놓았을 때 아들은 "누나 이건 종교 그림 같은데, 성모상의 재해석이랄까!" 했다. 색상과 구조가 종교 느낌이 물씬 나긴 했지만 딸은 웃으며 "그래?" 했고 남편은 "내가 엄마를 사랑으로 감싸 안고 있는 거지?" 했고 나는 "그 반대 아냐?" 했다. 남편은 확신에 차서 "내가 당신을 품에 안고 있네!" 하며 좋아했고 딸은 "알아서 생각하세요." 했다. 그림이란 게 원래 설명을 붙이면 더 그럴싸해지고 이해의 폭이 깊어진다고는 하지만 딸의 그림에 더 이상 그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여하간 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라니 "그렇구나." 하곤 좋았다. 가끔은 말보다 그림 자체가 설명을 대신하지 않는가?

부엌에서 바라본 중문 옆 딸의 그림

 그림을 집 입구에 붙였다. 딸 그림을 날마다 본다. 저녁나절 산책을 하러 외벽 등을 켤 때 끌 때, 출근과 퇴근을 하며 일상으로 본다.  가끔은 남편이, 가끔은 내가 서로를 사랑으로 품는 존재가 되길 바란 딸아이의 희망을 담아 실내로 들어오는 첫 장소 옆에 걸어놨더랬다. 난 그 그림이 참 좋다. 딸아이의 소망과 우리 부부를 보는 딸의 시선이 말이다. 


딸이 그린 아빠? 엄마?

이 두 그림을 그려준 딸이 "누가 엄마? 아빠?일까요?" 했다. 우린 서로가 이건 엄마고 이건 아빠지? 하며 물었지만 딸은 뭐가 엄마인지, 아빠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우리 부부가 서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볼뿐이다. 지금도 남편과 나는 서로 누구일까? 하지만 강한 색상이 나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부엌 벽면에 그려진 엄마? 아빠? 그림

이 그림은 부엌 벽면에 붙여 놓았고 밥을 할 때마다 식사를 할 때마다 부엌 불을 켜고 끌 때마다 본다. 이 두 그림을 함께 배치하면 다른 느낌이지만 일단 이렇게 걸어 놨다. 

딸이 대학 때 그린 일각고래 그림

거실 안쪽 벽에는 딸이 대학 때 그린 그림을 붙였다. 딸이 고래를 원래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각고래를 그렸는데 색이 좋았다. 딸이 환경보호 캠페인을 위해 그림을 그리곤 스캔하여 에코백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느낌도, 색상도, 구도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나중에 그림을 가져간다 하면 주어야겠지만 이 그림은 바닷속을 생각하게 해 주어 좋다. 

거실의 안쪽에 있는 일각고래 그림

그래도 모든 벽이 깨끗하니 여행 다녀오며 샀던 추억의 소품으로 벽면을 장식했다. 2017년 한창 집이 지어지던 기간 딸, 아들과 함께 갔던 스페인 여행에서 구매한 작은 소품들로 집안을 장식했다. 

 톨레도에서 구매한 시계와 코르도바에서 산 옷걸이  장식 

톨레도를 돌아다니며 들어간 기념품 가계에서 구매한 원형 세라믹 시계와 코르도바에서 구매한 옷걸이로 거실 한 편의 벽면을 장식했는데 딸의 고래 그램과 비슷한 계열 색상이어서 좋았다. 시계를 살 때 아들이 "엄마 이걸 어디다 쓸려고 사세요?" 했었고 나는 "집을 짓고 있으니 달곳이 있지 않겠니?" 했더랬다. 모두 합해서 40유로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대륙을 건너와 우리 집에 다니 느낌이 좋았다. 집에 들어설 때마다, 시계를 볼 때마다 딸과 아들과 함께 뜨거운 톨레도를 걸으며 구경했던 톨레도 거리가 생각나니 말이다. 


아이들과 스페인 톨레도, 남편과 크로아티아, 나 홀로 시칠리아를 다녀온 여행 기념품들이 식당 벽에 붙어 있다.
부엌 벽면에 장식된 여행 기념품들

 식당 창문 옆은 아이들과 스페인 톨레도에서 구매한 세라믹 장식과 나 혼자 시칠리아섬의 팔레르모 박물관에서 구매한 세라믹과 2019년 남편과 크로아티아 여행 중 두브로브니크 기념품 상점에서 구매한 세라믹으로 장식했다. 혼자 한 여행도, 아이들과 한 여행도, 남편과 한 여행도 모두 즐겁고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가장 좋았던 여행은 혼자 한 시칠리아 여행이 아니었는지 한다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하는 여행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올 기대를 갖기에 말이다. 

 

남편과 함께 한 이집트 여행에서 구매한 기념품

이층 서재 벽엔 2019년 일월에 다녀온 이집트 여행 기념품을 걸어놨다.  치안을 걱정하며 돌아다닌 단체여행이었는데 참 살 것이 마당 하지 않았더랬다. 


뒤꼍 공간에 소소한 가족여행 사진들을 모아 두고..  

뒤꼍을 정리하고는 한동안 상자 안에 쌓여있던 추억 어린 소품들을 펼쳐놨다. 너무 좋았다. 장식을 하면서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버려진, 빈 공간이었던 뒤꼍이 새롭게 변해서 좋았다. 

딸이 그린 그림과 페루, 터키, 캄보디아, 아르헨티나, 네덜란드를 여행하며 싼 소품들을 뒤꼍에 모아 두고...


소소한 여행 기념품들..
딸이 고등학교 때 그린 그림들... 


내가 대학 때 만든 동방박사의 예배 (파라핀 염색)

물건이 없으면 추억을 소환하기도 힘든 시간이 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자 속에 들어있던 소품들을 꺼내면서야 아 그랬었지? 하니 말이다. 남편이나 나나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많은데 얘기 실마리를 풀려면 서로가 한참 배회한다. 지명, 인명, 시간이 모두 흐릿해서 "거기 말이야, 그게 언제더라?" 하고 묻고는 한참 헤매고 나서야 서로 "아 그래?" 하니 말이다. 그런데 작은 소품은 그걸 함께 보자마자 바로 그 시간과 공간으로 우릴 단번에 안내하니 말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딸과 아들이 그린 저학년 그림일기를 모두 버린 것이다. 조금 가지고 있었더라면 몇 개 정도는 액자로 만들어 놓아도 좋았을 터인데 말이다.  대단히 비싼 소품들로 집을 장식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리고 그 소품이 소품이 아니라 투자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최선은 가족의 추억이다. 최상의 소품은 우리 스스로의 삶이 아니겠는가?    


집 내부는 소소한 추억이 깃든, 딸의 정성이 깃든 물품으로 장식했는데 아직까지는 그래서 더 좋다. 아직도 깨끗한 벽면이, 추억이 깃들 공간이 많아서.... 딸의 가족사진과 아들의 가족사진을 기다리는 공간이 많아서 좋다. 비어있는 공간이 새롭게 채워질 것을 기대해서 말이다. 내게 있어 최상의 인테리어는 우리 가족의 추억이며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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