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13: 여기저기 집 구경!
대전 아파트에 살며 시간만 나면 주택 구경을 다녔다. 동학사 도자기 마을, 동학사 가는 길에 있는 반포 마을, 대전 죽동, 반석동, 도룡동 등 수많은 택지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단독주택을 구경하는 재미는 뭐라 할까 목표점을 갖고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남의 집 구경처럼 편안한 게 없다. 정원이 예쁘게 조성된 집, 사방이 막혀 안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 위압적인 집, 마당에 시멘트를 깔끔하게 쳐 놓은 집, 정원이 잔디로 예쁘게 조성된 집, 가족이 함께 할 공간이 고려되지 않은 집, 어린 얘들이 실컷 놀게 구성된 집, 정원이라기보다는 텃밭에 가깝게 마당을 구성한 집, 나무가 너무 커 나무를 위한 집인지 사람을 위한 집인지 구별이 안 가는 집 등등 너무도 많은 집을 구경했다. 틈만 나면 남편과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경했다.
2014년 미국 연수기간 나는 미국 주택을 살펴봤었다. 재미난 사실은 그들은 택지가 조성된 곳에서 향과 무관하게 도로를 기준으로 현관을 내고 집을 앉힌다는 사실이었다. 택지로 조성된 곳이 아닌 강가나 산기슭의 집은 일단 자기 맘대로 집을 앉혔고 모양도 자기 맘대로 집의 크기도 맘대로였다.
연수기간 중 남편과 카누를 빌려 탄 적이 있었다. 여름 비가 휘몰아친 이틀 후라 카누 대여는 우리 부부밖에 없었다. 안내원이 차를 태워 상류에 내려주며 귀중품과 핸드폰을 넣을 방수팩을 주며 싱긋 웃으며 재밌게 타라 인사했다. 물이 생각보다 많아 카누는 자주 주변 나무에 박히기 일쑤였고 남편과 나는 호흡이 안 맞아 삼십 분은 고생하던 때였다. 이러다 물에 빠져 죽어도 세상모를 듯 강가 주변은 척박한 땅이었는데 삼십 분이 지나니 멀쩡한 저택이 강가에 떡하니 서 있었다. 강가에 나무 선착장처럼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곳부터 집까지 계단을 만들어 집주인이 시간 날 때마다 집에서 강가로 오가며 일상을 즐기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 뒤로 한 시간 반을 내려오는 길 양 옆으로 띄엄띄엄 집들이 강을 싸고돌며 앉아 있었는데 '아 잘 지어진 집들이 이곳에 숨어 있구나.' 싶었다. 일반 도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집들이었다.
향을 가리지 않고 작은 강을 따라서는 즐비하게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작은 카누나 카약 등 물놀이 기구들이 있었다. 집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자연과 더불어 있었다. 집의 평수는 대략 100평이 넘는 삼층 구조였다.
미국에선 강을 따라 양 편으로 지어진 집이거나, 택지로 조성된 집이거나, 길가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집이거나, 향보다는 그냥 이게 내 자리야 하고 널찍하게 앉은 것이 집이었다. 심지어 2층이나 삼층으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도 향보다는 그냥 편안하게 지어졌다는 느낌 그 외에는 없었다. 그런 집들을 실컷 구경하고 와서 그런지 집이란 게 풍수와 향에 너무 구애받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 그냥 편안하게 지어지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년을 넘게 남이 지어진 집들을 구경했다. 한국에서야 주로 대전 인근과 군산 인근 단독주택을 구경했고 미국에서 잠시, 여행 가서 유럽의 집들을 구경하였는데 모르는 사람들의 집을 구경하면서는 한 번도 집주인과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건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좋았다. 미래의 어느 순간엔 나도 집을 지을 것 같아서, 그냥 언젠가는 작은 마당이 있는 조그만 집을 짓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잠들고 깨고 어느 시간이나 세탁기를, 청소기를, 샤워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대전 황실 아파트에 딸과 둘이 살 때 아랫집에서 인터폰이 왔다. 아이 발소리가 신경 쓰이니 조금 조심해 달라는 부탁이었고 알았다 했다. 알고 보니 아래층 아저씨는 형사여서 가끔은 야근 후 낮에 휴식을 취하는데 아이 발소리가 단잠을 깨운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갔다. 낮에 잠들기란 쉽지도 않고 한번 예민해진 신경이 더욱 잠을 쫓았을 터이니 말이다. 죄송하다 했다. 조심하겠다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럼 아이를 방에 묶어 두어야 하나? 아니면 집을 나가야 하나? 했더랬다. 두어 번 전화를 주시고는 연락이 없었고 딸아이는 그 뒤로 조심히 걸었다.
두 아이와 대전 누리 아파트에 살 때는 아랫집 부부가 아이가 없어 큰 양해를 해주었어도 늘 조심스러웠다. 여자아이 발소리와 남자아이 발소리가 다르게 울림을, 남자아이들의 활동량이 생각보다 많아 그 에너지를 어찌하기 어려움을 알았다. 아들은 뛰기를 좋아했는데 침대 위에서 뛰거나 소파 위에서 뛰었다. 뭐 유별난 게 아니라 기분이 좋으면 그냥 뛰었다. 다행히도 소파와 침대에서 뛰면 소리가 내려가지는 않았다. 아들은 피아노를 유치원 때부터 좋아해 시간만 나면 피아노를 쳤는데 어느 날 위층 아주머니가 인터폰을 주셨다. "아들이 올해 고3이 돼서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알겠다 하고 바로 일반 피아노를 팔고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해 아들에게 저녁 6시 이후에는 이어폰을 쓰고 연주하라 했다. 아들은 날마다 이어폰을 끼고 연주했다.
아이들이 한참 자랄 때 나도 한참 일을 할 때니 주택으로 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주택에서 3년 살아보니 세상 편하다. 너무 편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주택에서 살지 않은 게 미안할 지경이다. 마당에 물을 받아 놓고 실컷 물놀이를 할 기회를 주지 않아서, 잔디밭에 뛰어다니는 여치며 메뚜기를 날마다 구경하고 뛰고 싶으면 날마다 뛰게 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아파트에 살 때는 내가 살았던 부모님 집이 너무 추워 아이들을 추운 곳에서 키우기 싫다는 이유와 편의시설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 핵심적으로 집을 지을 돈이 없었다는 이유 등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을 바꿔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끼고 서라도 집을 졌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이미 아이들은 다 자라 버렸고 뒤꿈치를 들고 다녀 버릇하며 유년기를 보낸 뒤니 말이다.
10년 넘게 남의 집 구경을 하고 내 집을 지었는데 요즘도 집 구경을 다닌다. 인근에 지어진 집들을 구경하며 어린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후회가 밀려온다. 나도 일찍 집을 지었다면, 어린아이들이 편히 큰소리를 내며 놀게 했더라면 하고 말이다. 요즘도 아들은 가끔 새벽 한 시에 피아노를 친다. 마음 컷 건반을 두드린다. 아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곡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집값이 오르니 남편이 대전 월평동 누리아파트 집값을 보곤 눈이 왕방울 만해졌다. 우리가 팔지 않았다면 정말 돈을 벌었겠으니 말이다. 군산의 주택이 무슨 매력이 있어 집값이 오르겠는가? 내가 웃으며 남편에게 "대전 집에서 살았으면 돈 좀 벌었겠다. 그지? 당신 아깝다 생각한 것 아니지? 하니 "아깝긴~ 그렇단 얘기지. "했다. 내가 "우리도 오른 게 하나 있잖아. 삶의 질 동의해요?"하나 남편은 "그렇지, 삶의 질"했다. 삶은 공평하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