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워요. 깊은 땅속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
마당을 거닐다 땅이 갈라지고 새싹이 올라와 '뭐지?' 했다. 이게 무슨 새싹인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지난봄 화원에서 구근을 사다 심고 참 예쁘다 했던 기억이 났다. 한참을 생각해도 몰라 카카오스토리를 찾아보니 크로커스란다. 이름 참 낯설다. 달맞이꽃, 계란꽃 같이 정겨운 이름이 아닌 크로커스라니....
은목서를 빙 둘러 심은 크로커스가 비죽 빼죽 솟아나고 있었다. 땅속에서 어찌 지내고 있었을지. 지난봄 구근을 심으며 한해 살고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했는데 얼굴을 쑤욱 내밀고 있어 너무 반가웠다. 작년에 연보라색, 진보라색을 심었었는데 어찌 나올지도 궁금하다.
구근의 매력은 큰 힘 들이지 않고 그들이 한겨울 나고 스스로 자라나는 데 있다. 작년 여름 긴 장마에 구근들이 다 썩지 않았을까 싶었다. 비가 와도 너무 와서 구근을 캐어 보관한 튤립을 빼고 무슨 구근이 남아있을까 싶었는데 이리 얼굴을 내미니 그 반가움이란.... 시간 날 때마다 아침 햇살에, 저녁 해저 물 녘에 살금살금 나가 새싹을 쳐다본다.
처음 정원을 가꿀 때는 꽃이 예쁘고 강렬한 색상을 내는 시네라리아, 마가렛, 백일홍, 데이지, 비올라 등을 사다 심었는데 작년 구근을 처음 심어봤더랬다. 꽃이 화려하지 않아도 구근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겠다. 언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새싹을 올리는 그들의 힘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났다.
튤립을 남편과 처음 10개를 구입하여 심고 참 귀한 꽃이다 했다. 색상이며 모양이며 그리 귀할 수가 없었다. 꽃의 크기도 크고 물감을 풀어도 저리 강렬할 수는 없을 듯한 색상이며... 한 구근에서 쑤욱 솟아나 꽃 한 송이를 피우니... 남편과 구근을 캘 때 처음 샀던 구근의 크기는 오간데 없고 작은 몇 알로 번식한 것을 보고는 큰 튤립 꽃을 보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을 배웠다. 튤립은 크면 큰 데로 작으면 작은 데로 아름답다.
작년 늦가을 남편이 알리움을 사 와선 심어보자 했다. 무슨 꽃이냐 했더니 예쁜 꽃이란다. 그 흔한 인터넷으로 알리움을 찾아보지도 않았다. 올해 기다리면 꽃을 얼굴을 보지 않겠는가? 기다랗게 내미는 새싹이 장하다. 어찌 자랄지 궁금도 하다.
노란 수선화와 하얀 수선화를 작년에 들여 심고 한동안 좋다 했는데 올해도 열심히 싹을 내미니 너무 반갑다. 내가 얇게 심어 윗동이 보인다며 남편이 땅속 깊게 심어놨던 터라 죽었나 살았나 모르던 차에 땅을 갈라 올라오니...
땅을 밀치는 새싹의 힘은 어떨까? 힘이 들까? 할만한 일일까?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너도나도 말하는 요즈음 수선화에게 묻고 싶었다. 너도 죽을 둥 살 둥 하며 땅을 헤치고 나온 건지 하고 말이다.
나는 하는 게 없이 마당을 그냥 어정거리다 쪼그려 앉아 쳐다보는 것밖에는... 잘 자라는지 보는 것만이 내가 하는 일이다. 새싹의 자람을 보며 든 생각은 성장이란 그저 조건만 잘 맞으면 다 자기 몫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식물들이 원하는 조건이라야 땅, 물, 바람, 햇볕뿐이지 않겠나. 내가 거들 수 있는 것이라곤 잡초를 제거하고 가끔 힘을 내라 물을 뿌리고 유박 같은 영양분을 조금 던져주는 것이지 않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잘 자라는 마음과 관심...
어제 화원에 가니 히야신스가 눈길을 끌었다. 종이 상자에 가득가득 담긴 히야신스가 색깔별로 웃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 때 정성껏 키웠는데 한해를 넘기지 못했었던 구근이었다. 몇 개를 들여 심었다. 적당한 관심과 정성을 줄 요량으로 말이다. 땅을 파고 심으며 몇 마디 혼잣말을 했다. 얘들아 잘 지내보자꾸나. 하고 말이다.
울타리를 돌다 보니 벌써 꽃잔디에 꽃송이가 폈다. 참내 뭘 그리 서두르는지 아직도 바람이 매서운데 꽃잎을 내고 웃고 있어 귀했다.
서두를 것 없는데 무얼 그리 일찍 얼굴을 드밀까 싶지만 꽃이 자기 생을 알아 폈겠지 싶다. 이른 봄에 펴기 시작해 늦봄까지 펴고 지기를 반복할 꽃잔디에게 올봄을 잘 부탁할 뿐이다.
매화 봉우리가 수상쩍다. 필 듯 말듯하던 매화 봉오리가 다음 주에는 피지 않을까 싶다. 이른 봄 자락을 하얗게 알리는 매화를 기다리며 올 한 해도 모두가 건강한 한 해를 보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