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왈 " 내가 미쳤나 봐!!"
구박을 받으며 철쭉을 심다니!!
작년 여름 긴 장마 탓이었을까? 삼 년 전 심어놨던 백철과 분홍 철쭉이 시름시름했다. 가을에 보니 잎이 마르고 가지가 말라버렸다. 올봄 다시 살펴보니 앓던 철쭉이 모두 죽었다. 정원을 거닐며 남편과 죽음의 이유를 생각해봤다. '한쪽 철쭉은 잘도 살았건만 백철과 분홍 철쭉은 왜 죽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리저리 궁리해 봐도 원인을 모를 일이다. 분홍 철쭉이 죽어 다른 쪽에 심겨있던 붉은 철쭉을 옮겨 심었는데 올봄 보니 마저 죽었고 올봄 꽃을 볼까 하여 늦가을 백철을 사다 심었었는데도 함께 죽어버렸다. 남편이 지나가듯 "누가 독을 뿌렸나? 왜 여기만 이리 죽어?" 했다. 참 모를 일이다.
작년에 남편이 삽으로 흙을 퍽퍽 파내고 철쭉들을 옮겨 심을 때 난 잔소리를 했었다. 흙이 좋지 않은 듯 하니 흙을 갈아주자고, 철쭉 심긴 곳이 낮으니 흙을 사다 높여주자고 말이다. 남편은 흙이 문제 일리 없다 했다. 제일 낮은 곳에 심긴 철쭉이 살아있으니 꼭 물 빠짐 문제만도 아니라 했다. 나나 남편이나 정원 가꾸기는 처음이지만 나는 엄마 따라 밭고랑 만들고 잡초를 뽑았던 경험이 있으니 고랑을 만들듯 높이를 주면 좋겠다 했다. 작년 겨울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 했다.
지난주 죽은 철쭉을 모두 뽑고는 흙을 다섯 포 사다 섞어주었지만 내 보기엔 낮아 보였다. 남편은 "그만하면 됐다." 했다. 봄에 서는 나무 시장에서 어제 백철과 분홍 철쭉을 25주씩 사 왔다. 흙도 더 사 왔다. 그때까지는 참 좋았다. 흙을 섞어 조금 더 올려 심자 하니 남편은 충분하다며 그냥 심자 했다. 잠시 서로 눈을 봤다. 남편은 흙은 더 넣을 의사가 없었고 난 큰 소리로 우겼다. 생각이 달랐는데 내 고집을 꺾기 싫었다. 이 년 동안 남편이 옮겨 심었던 철쭉들은 모두 죽었고 그 원인은 둘 다 모르지만 다시 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인은 모르지만 나는 흙을 바꾸고 높이를 주고 싶었다.
내가 큰 소리로 "그러다 또 다 죽어." 했고 남편도 큰 소리를 내며 "그만하면 됐다." 했다. 둘 다 화를 냈다. "그럼 작년이랑 뭐가 달라져? 흙을 완전히 갈고 싶은데 됐다 하고 높이도 더 높여 물 빠짐이 좋게 하고 싶은데 몇 센티 높이곤 됐다 하고... 참~. 내가 알아서 할게!" 했다. 남편은 삽을 들곤 "내가 심을 테니 끈이나 풀어줘!" 했다. 내가 "아니 내가 심을 거야. 당신이 끈 풀어줘." 했다. 남편은 "그렇게 심으면 안 된다니까?" 하며 구시렁거렸다. 나무를 심고 있으니 옆에 있던 남편이 흙을 더 넣어줬다. 한 40분 철쭉을 심는 내내 "그리 심으면 안 된다."는 남편 말을 들었다. 고추 밭고랑보다 낮은 높이인데 높게 심는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심으면 안 된다니까? 참 말 안 듣네. 너무 높으면 안 돼!" 했다.
원래 오래 산 부부는 별것 아닌 것 같고 죽자고 사우나 보다. 사실 나무를 심을 때나 지금도 별것 아니라 생각지 않는다(생명이 죽고 사는 문제고 잘 사느냐 근근이 사느냐의 심각한 문제니 왜 나무심다 싸우냐고 웃지 마시기를...).
계속 잔소리를 해 "호수를 꺼내 물 줄 준비나 해달라." 했다. 쪼그려 앉아 50개의 철쭉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양을 보고 크기를 보고 높이를 보며 심었다. 남편은 일은 잘하지만 모양을 보며 찬찬히 나무를 심지 않는다. 가지가 제각각인데 손이 잡히는 데로 심어 종종 가지들이 눈에 거슬렸고 잔디 깎기 기계에 계속 걸렸다. 그러니 내가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상을 탓하지 않는 가장 쉬는 방안은 스스로 만족하게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무를 다 심고 물을 주니 높아 보이기만 했던 땅이 내려앉았다. 잔디보다 5센티 높을까 싶어 졌다. 허리를 펴고 물주는 남편을 보니 아직도 얼굴이 굳어 있어 "왜? 맘에 안 들어?" 했다. 남편은 "아니 이렇게 높게 할 필요 없다니까?" 하며 말이 땅이 가라앉듯 힘이 빠졌다. 물을 주니 땅이 내려앉고 있었다. "쌈밥이나 먹으러 가요. 힘드네." 했다.
식당에 가 앉으니 남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봤다. 점심을 먹으며 "여보! 열심히 일하는 날 그렇게 구박해서 속이 시원해? 왜 그렇게 날 구박하고 그래? 당신 보고 심으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데 왜 그렇게 바득바득 그러면 안된다고만 해.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왜 그러는데?" 했다. 남편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게 내가 미쳤나 봐! 그렇게 심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너무 높아 보여서 말이야." 했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데 그리 구박을 하다니!" 쌈밥 먹으며 둘이 웃었다. 남편이 "그렇지?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봐!" 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 간이 큰 것임엔 틀림없다.
밥을 먹고 집에 오니 흙이 내려앉아 높이가 더 가라앉았다. 높지도 낮지도 않아 되려 조금 더 높게 심어야 했나 속으로 생각했다. 남편이나 나나 40대 중반에는 나이 들면 서로 더 넓은 아량을 갖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로 얘기를 하다 발견한 사실은 나이 든 사람일수록 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량과 속이 더 좁아진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었다. 어제 둘이 철쭉을 심으며 다시금 깨달았다. 늙어감이, 오래같이 함께 하는 삶이 서로에게 더 넓은 이해의 지평을 줄 것이라는 환상을 아직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과 의견에 쉽게 동의할 것이라는 착각을 갖고 있음을 말이다. 함께 오래 산다는 것은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으로 서로의 경직된 사고를 깨는데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고 마당을 걸으며 "하도 구박을 받아서 머리가 아프네" 했다. 남편이 웃으며 "이제 쉬어. 미안해" 했다. 내가 "하도 구박을 받아 철쭉꽃이 펴도 머리가 아플 것 같네." 했다. 남편이 오래간만에 살갑게 웃으며 "여보 내가 정말 미쳤었나 봐. 일 잘하는 마누라를 그리 구박하고. 정신이 어디 갔나 보네." 했다. 내가 "그러게 이번에 내가 알아서 심는다 하는데 그리 구박을 해." 했다. 남편은 "아니 불만은 무슨, 내가 미쳤다니까?" 하며 손사래를 쳤다.
오늘 글을 쓰며 어제 상황을 돌아보니 내가 작업을 시작하며 큰 소리로 흙을 더 넣자 했고 남편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짜증이 나 버린 거였다. 작년 남편이 심은 철쭉 가지가 제 각각이라 잔디 깎기에 계속 걸렸던 것이며 옮겨 심거나 새로 심은 모든 나무가 남편이 심은 것이니 내가 심어야 살 것 같은 착각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 목소리에 이미 그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그러니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나는 애당초 들을 생각이 없었다. 개진 도진이었다. 원인제공을 내가 먼저 하고 왜 구박하냐고 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 마당을 서성이다 서로 웃었다. 택지에 인근 주민들이 나와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밭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크로커스가 어느 날 문득 보니 꽃이 폈어요. 마음의 여유도 상대적이다. 내가 여유 있어야 여유 있는 대접을 받는데 나이 듦과 함께 스스로의 여유를 소홀이 하고 있었음을 철쭉을 심으며 배우니 말이다. 철쭉을 볼 때마다 마음의 여유를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
새로 심긴 철쭉들이 한 해 한 해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봄마다 화사한 꽃들과 함께 벌과 나비를 만나고 집 앞을 지나는 동네 주민들의 맘에 여유와 화사함을 한가득 안겨주길 작게 소망해 본다. 철쭉은 이미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으니 참 고마운 존재다. 맘에 여유가 없을 때마다 철쭉을 보면 조그마한 여유라도 더 챙기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