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그건 흰색 철쭉이 아닌데요?

흰색이라더니 알고 보니 빨강이라네..

by 정루시아

대학 신입생 아들이 서울서 일주일 기숙사 생활을 하다 내려왔다. 고등학생 때와 같은 생활이지만 물리적 거리 때문인지 반가운 맘이 크다. 오늘 저녁 올라가는 아들이 초밥 먹고 싶다 하여 초밥 전문점을 들려 점심을 먹고 은파 호수를 걸었다. 군산에 내려와 산지 6년이 되었지만 정작 은파 호수에서 오리배를 탄 적은 2007년이었던가 친정 식구와 함께 군산 나들이를 할 때였다. 한여름 땡볕에 아무도 오리배를 타려 하지 않았는데 아들이 친정아버지 손을 잡고 오리배 앞에 가서 섰다. 아들이 외할아버지 얼굴을 바라보며 오리배를 가리키자 아버지는 봄바람처럼 웃었었다. 한여름 땡볕인데도 친정아버지는 흔쾌히 아들과 함께 오리배를 타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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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누가 오리배를 탔을까 싶어 선착장을 살펴보니 오리배와 선착장이 모두 사라졌다. 간간히 오리배를 타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코로나 19로 장사가 어려웠나 보다. 익숙한 하얀 오리배가 없으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군산에 이사와 주말에 가끔 은파호수를 거닐면 늘 오리배들이 여기저기 떠 있었다. 연인들이나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소소하게 타던 오리배는 호수 이곳저곳을 바지런히 돌아다녔는데 모두 사라지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원예조합 나무시장을 잠시 들린다 하니 아들은 차에 있겠다 했다. 남편이 꽃도 많고 나무도 있으니 구경 하자 아들을 졸랐다. 내가 웃으며 말렸다. 차에 있겠다 생각하였으면 그냥 있게 하면 그만인데 설득도 하지 못할 말을 해서 뭐하는가 말이다. 세상이 변했다. 부모가 움직인다고 자식이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다. '오라 하지 말고 다가갈 궁리'가 차라리 빠른데 부모들은 자식들이 순종하기만을 바란다.

20210307_123916.jpg 오리배를 타던 매표소만 덩그러니....

나무시장엔 개장한(2월 26일) 날보다 많은 나무들과 꽃이 들어와 있었다. 살랑살랑 구경하다 매장을 운영하는 여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직원은 몇 년 안 된 앳된 나무를 잠시 흙으로 덮어놓고 있었는데 옆에 며칠 전 사간 백철인 듯 보이는 철쭉이 있었다. "저기요~ 지난번에 제가 저 철쭉을 사 갔는데 혹시나 해서 여쭈는데 저 나무가 백철 맞죠?" 했다. 30대 초반의 초롱한 눈망울을 한 직원이 "저 흰 끈으로 묶인 철쭉요? 저걸 사가셨다고요? 저건 백철이 아니고 붉은색 철쭉인데요?" 했다. 투닥거리며 남편과 백철과 분홍색 철쭉을 사서 심고 며칠 전 내가 "백철은 분명 가지가 매끈하고 이파리 색상이 초록인데 이 백철은 이파리 색이 왜 붉지?" 했었었다. 남편이 "여보! 철쭉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데. 백철이겠지. 백철이 아닌데 흰색 철쭉이라고 팔았겠어?" 했었다. 내가 "허긴 그렇지. 흰색 철쭉을 달라는데 설마 다른 색 철쭉을 팔았겠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직원이 언제 사갔고 얼마나 사갔냐 물었다. 여직원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고 그 당황함이 눈에 보였다. "아니 일주일 전에 사갔어요. 여기 나이 드신 직원분이 백철과 분홍색 철쭉을 산다 하니 자신 있게 백철과 분홍색 철쭉을 가리켜 각각 25주씩 사갔고 잘 심었는데... 혹시나 해서 여쭤 봤죠? 이걸 어쩌죠?" 했다. 직원분은 "그럼 바꿔 심으셔야 되나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했고 남편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걸 심는데도 큰 소리가 오갔는데 다시 25주를 심는다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순간 난감했다. 나무가 자리를 잡으면 맘에 안 든다 하여 살아있는 것을 내다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생각한 색상의 꽃을 포기하는 것도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다. 직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남편과 나는 "어쩌겠어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실 테고. 어쩔 수 없죠." 했다. 여직원이 머리를 숙였다. 그녀의 책임이 아닌데도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몸 둘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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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 국화나 비올라가 나왔으면 화단에 심어보려 잠시 들렸다 진실을 듣고는 그리 난망할 수가 없었다. 흰색과 붉은색은 색상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철쭉 중에 가장 일찍 펴는 꽃이 붉은색, 다음은 진분홍, 연분홍, 흰색 순이라 마당에는 진분홍과 연분홍 사이에 흰색 철쭉을 심었었고 흰색 철쭉 자리에 매화가 3월에 펴니 가장 늦게 백철이 피어도 진분홍과 연분홍이 꽃망울을 펴 정원의 전체적인 발란스가 맞게 세팅되어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장 일찍 펴는 꽃인 매화 앞에 다시 가장 일찍 펴는 붉은 자홍 철쭉이라니... 맘을 비울 일이다. 어찌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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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난처하게 웃으며 "혹 화분 사시고 계산하실 때 잠지 저를 불러주세요. 화분이라도 하나 드릴게요. 참 죄송합니다." 했다. 예쁜 노란색, 보라색 사계 국화와 흙을 사고는 바깥에서 작업 중인 여직원에게 "화분 몇 개 사 가지고 가요. 어찌하겠어요. 그것도 그 철쭉 복이고 저희들 복이니 일단 잘 키워야 하지 않겠어요?" 했다. 여직원분이 잠시 있으라 하더니 총총 뛰어가 연분홍 미니 장미화분을 들고 왔다. 꾸벅 인사를 하며 "죄송합니다." 했다. 집으로 오는 5분 흔들리는 차 안의 미니 장미가 방긋 웃었다. 장미향이 향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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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실수를 뭐라 해야 하나? 정원에 와서 사계 국화와 죄송한 맘이 담긴 미니 장미를 심으며 무슨 연유로 나이 든 직원분은 붉은 철쭉을 흰 철쭉이라 생각했는지 어찌하여 꽃색이 뒤바뀌었던 것인지 궁금했다.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착각했을 것이고 그런 착각은 종종 있는 일이니 말이다.


20210305_134317.jpg 매화꽃 사이로 벌들이 윙윙거리며 수분을 하고 있고...


20210302_142847.jpg 산수유... 노란 꽃이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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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커스가 활짝.. 꽃봉오리 안의 꿀벌... 행복하겠구나!

2년 전 남편이 처음 넝쿨 장미 노란색과 붉은색을 주문하여 봄에 심고 가을에야 처음 꽃이 피었는데 두 나무 다 붉은 장미여서 둘 다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분명 네임 택에는 노란색 장미, 붉은색 장미라 쓰여 있었는데 둘 다 붉은색 장미였다. 그렇다고 심어서 한참 자란 장미를 농장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세상엔 의도치 않은 작은 실수들이 종종 발생하고 그 의도치 않는 실수들에 의해 의외의 풍경을 보게 됨을 정원을 가꾸다 보니 알겠다. 이 작은 정원도 의도치 않은 실수들이 중첩되니 말이다. 올해는 철쭉꽃이 그러한 신세가 되었다. 올해는 첫해라 정착하기 바빠 많은 꽃송이를 구경할 수 없으니 내년 풍성하게 자란 철쭉의 본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랬든 저랬든 죄송함을 담은 미니 장미가 무탈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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