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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루시아 Dec 01. 2019

24년째 함께 목욕하는 부부의 현주소

목욕은 사랑의 대화 7


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 때가 됐을 때, 우린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정원을 어찌할까 고민했다. 처음 집을 짓기도 하거니와 전문가의 도움 없이 정원 형태와 나무 구성 등을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원을 만드는 일은 공간에 대한 이해,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생각 차이’를 발견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공간을 이해하는 방식과 행해지지 않은 미래 노동 등이 모두 어우러져 논의는 계속 겉돌았다.


깔끔한 담을 하자는 내 의견과는 반대로 남편은 담을 싫어했다. 잔디와 대리석 석재를 적당히 섞어 마당의 기본 틀을 잡자는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관리의 편의성으로 잔돌을 깔자는 남편, 담이 없다면 집의 정면만은 울타리가 될 나무를 심자는 나와는 달리 수수하고 잘 자라는 개나리를 심자는 남편, 작은 데크를 만들어 야외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내게 집안에서 놀면 되지 데크는 불필요하다는 남편, 아들 방 앞 작은 반송을 놓자는 나와는 달리  꽃 화단을 만들자는 남편, 생각의 차이는 같은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지의 다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공간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색상과 형태에 대한 차이도 커, 그 어느 것 하나도 유사한 것이 없었다.


더더욱 화가 났던 것은 남편은 “그럼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말해 놓고는, 저녁을 먹거나 차를 마시며 정원 얘기를 하면, 다시 원점의 논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파워포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을 찾아 카카오톡으로 공유를 해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개나리의 번식력과 돌을 깐 정원의 편리성을 굽히지 않아, ‘아! 내가 결혼한 이 남자는 내가 아는 남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맞춰 제 색을 갖는 작은 정원, 작지만 하루에 세 번 이상은 나와 거닐고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정원, 적당히 시야를 가릴 수 있는, 호기심이 깃드나 그 이상은 쉽게 보기 어려운 그런 나무로 마감된 담장. 오래 살 집이지만 시간에 모든 것을 맡겨 언젠가 나무가 자라겠지가 아닌 지금도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나무! 생각의 차이를 요약해보면 그랬다. 남편은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작은 나무도 성장하여 자리를 잡을 것이고, 가꾸는데 수고롭지 않은 노동과 경비가 최소로 드는 정원을 상상했다. 반대로 나는 5년, 10년의 미래가 아닌 현재, 수고스럽지만 가꾸어지는 초록의 정원, 가끔은 벗을 초대 하여 차를 마실 수 있는 정원을 상상했다.


생각이 다르니, 토론이 논쟁으로, 논쟁이 싸움처럼 변질됐다. 남편은 싸움 같은 대화 마지막에 늘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했지만, 다시 생각한 바를 정리하여 말하면, 또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말이 돌고 돌았다. 한 달이 넘어 두 달이 갈 때 즈음, 저녁 후 차를 마시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아휴 못살겠네. 목욕을 못하겠어. 당신이 너무 낯설어서. 내가 아는 그 남자가 아니네. 목욕 금지야”.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무슨 소리! 정원은 정원이고 목욕은 목욕이지”, “아니 이제 보니, 보는 것도 다르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다르고, 내가 착각을 했네. 내가 아는 그 남자가 아니야! 다시 잘 생각해봐야겠어. 이렇게 다른 사람하고 계속 살아야 하나” 하고… 남편은 “알았어, 알았어, 그냥 당신 하고 싶은 데로 해”. 그날은 정말로 화가 나서 남편이 컴퓨터에 앉아 있는 동안 후딱 목욕을 해버렸다. 정말로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머리 말리는 나를 보며, “아니 혼자 목욕을 하다니 반칙이야! 당신 하고 싶은 데로 하라니까” 하며 남편은 모든 것을 나의 결정에 따를 것처럼 풀이 죽었다.


며칠이 지나고, 정원을 결정하여야 할 때, 욕조에 물을 한 가득 받았다. 좀처럼 쓰지 않던 라벤더향이 가득 나는 솔트를 넣고, 우린 욕조속 대 타협을 했다. 개나리는 정면 담의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은 2미터 높이의 시야를 가리는 스카이 로켓 향나무를 심고, 데크는 작은 테이블을 놀 수 있는 크기로 만들고, 화강석 디딤돌은 사각과 원형을 섞어 동선과 시각적 움직임을 고려하여 잔디 사이에 놓기로 했다. 잔디를 심었다 몇 년 지나 시멘트를 치는 수많은 사례에 대한 두려움은 내가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는다는 선언으로 타협점을 찾았고, 아들 방 앞의 화단은 정면의 화단으로 이동하여 내가 가꾸고 남편은 나무와 화단에 가끔 창궐하는 곰팡이와 진드기를 퇴치하는 농약을 살포하는 역할로 타협점을 찾았다. 남편은 다가올 정원 가꾸기의 노력으로부터 자신의 손을 가볍게 하고 난 내 욕심만큼 내 손을 흙에 담그기로 합의한 샘이었다.


라벤더향이 가득한 욕조속 타협 덕에 만 2년이 넘은 정원은 계속 색을 달리하며 계절을 마주하고 나와 남편에게 말을 걸고 있다. 요즘 남편은 커피잔을 들고 작은 정원을 걷다, "당신이 정원에 대해 말할 때, 난 그게 무슨 색인지, 무얼 원하는지, 무얼 상상하며 말하는지 잘 몰랐어"라며 웃는다. 난 "이렇게 커피잔을 들고, 이런 색이 있는 이런 정원을 원했는데" 했더니, 남편이 머리를 연신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한다.


만 24년 된, 24년째 함께 목욕하는 부부의 현주소는, 우린 그저 늘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며, 같은 공간에 다르게 살며, 함께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타협할 수 있는 욕조란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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