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루시아 Jun 07. 2020

사랑의 기술

남편의 세계 0:인연(因緣)



사랑의 기술이라니! 요리의 기술, 생존의 기술, 싸움의 기술, 육아의 기술도 아닌 사랑의 기술이라니! 대학교 1학년 때(1986)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1956, 에리히 프롬:1900-1980)이란 책이 학생들 사이서 유명했다. 책 살 돈이 넉넉지 않아 서너 번 도서관 대여 리스트 작성 후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사랑도 기술이 필요하구나.' 했다. 실존적 지혜를 엿본듯해 좋았다. '에리히 프롬이 인간은 동물이지만 이성을 갖춘 사회적 존재로 사랑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발상과 과학적, 철학적 전개가 좋아 언젠가 사랑을 하면 있는 기술, 없는 기술 다 부려 보리라 했다. 그리곤 잊었다. '사랑의 기술'을 하기에 앞서 '연예의 기술'이 필요했기에 말이다.

 

남편을 만나 결혼하니 실로 사랑의 기술이 필요한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결혼을 하며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신의와 사랑, 존경으로 가정을 지키겠다.' 하였으니 한 남자를 사랑하며 존경할 일이, 사랑의 기술을 구현할 일이 끝도 없이 펼쳐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혼식은 끝도 없는 인생길 앞에 서서, 기껏 대문 손잡이를 살짝 밀어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딘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한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일은 보통 대간한 일이 아니다. 25년을 살아보니 '힘들다', '어렵다'가 아닌 참 '고단한 일'이다. 신의, 사랑, 존경이란 좋은 단어들 뒤에 인내, 외로움, 수행이란 단어가 숨어있으니 말이다.

 

사랑의 기술!


무심코 생각하면 사랑의 기술은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니 상대에게 사랑을 주는 것처럼 여겨지는데, 잘 생각해보면, 기술 사용 목적은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다. 그러니 대충 하다 말 기술이 아니라는데 고단함이 숨어있다. 이기적이어도 보통 이기적인 기술이 아니다. 그러나 재미나고 요사스런 것은, 사랑은 대상을 만나면 끝은 내가 좋아야 하되, 과정은 타자의 만족, 기쁨, 해소, 평안과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정말 해괴하기 그지없는 사랑의 기술은, 한껏 기술을 사용하되, 그게 기술로만 보여서도 아니 되고, 사랑의 기술 대가의 반열에 오르려면 지치지 않는 '실천'과 '단련'으로 끝없는 사랑의 기술을 연마하되 연마하지 않은 듯 보임이 미덕이란 사실이다. 그러니 까놓고 말하면 사랑의 기술은 다 '나 좋자고 하는 일'이지만 이게 결국은 '상대도 좋아 죽을 지경이 돼'야 하니 '참 어려운 문제'다. 다 같이 좋은 게 어디 쉽겠나?


나를 사랑하기 위해 상대를 사랑하고, 진정한 나를 알기 위해 상대를 알아가야 하니,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으로 연결된 결혼생활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緣起說)과 닿아있다. 불교뿐이랴?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 하였는데 남편이 이웃만 못하겠는가? 부처와 예수가 나를 사랑하고자 해도 상대를 사랑하라 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니 공(無)을 이루던, 영혼(Spirit)을 구하던 인생의 이웃인 남편을 사랑하다 보면 뭐든 건질 것 같았다. 참 쉽다. 사랑만 하면 된다니... 그래서 결혼하며 크게 다짐했다. 남편을 잘 사랑해 사랑의 기술을 구현해보리라 말이다.  

 

생각은 참 쉽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결혼생활은 고공 외줄 타기보다 어렵다. 고공 외줄 타기는 안전고리를 걸고 몇 백 미터 가면 끝나지만 결혼은 끝도 모르고, 아이를 등에 지고, 머리에 꿈을 이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깔린 유교문화에서 배우자를 균형대처럼 잡고 걸어가는 것이니, 최상급 고공 줄타기보다 난이도가 높다.   


결혼 후 남편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남편의 거울에 비친 내 세계를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게 있어 결혼은 인간을 이해하는 창, 사랑을 실천하는 장, 결국 '나를 파악하는 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시절 졸며 배운 변증법을 바닥에 깔고 사랑의 기술을 펼쳐 보일 수 있음이 얼마나 큰 복인가?  


한 인간이 생각하고 펼칠 수 있는 삶이 얼마나 궁색하고 편협하겠는가? 그래도 내가 겪은 남편의 세계를 펼쳐보는 것도 어떠랴 싶다. 남편을 통해 사랑의 기술을 '실천'하며, 25년의 시간을 통해 사랑의 '인내'를 배웠으니 말이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남겨진 과제를 남편과 함께 진단하기 위해 '남편의 세계' 문을 열고자 한다.  


  


작가의 이전글 24년째 함께 목욕하는 부부의 현주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