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산다!

남편의 세계 1: 물적 토대 구축

by 정루시아


아이들이 모두 집을 나갔다. 딸은 결혼하여 2시간 30분 거리 도시에 살고, 아들은 기숙형 고등학교로 갔으니 집은 남편과 나만 있다. 둘이 결혼하여 둘을 만들고 둘만 남아 있게 되었으니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딱 그만큼 재생산과정을 거친 부부다. 고3 아들은 토요일 오후 빨래를 싸들고 와선 일요일 저녁 옷을 챙겨 기숙사로 들어가고 딸은 집에 분기별로 한번 올까 말까 하니 직장 동료들의 집 방문보다 못하다.


그렇게 얘들이 집을 나가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대학시절 교양강의는 왜 그렇게 졸렸는지 강의가 끝나면 참 잘 잤다 싶었다. 귀를 쫑긋하려 했지만 출석 후엔 나도 모르게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젊어서 그랬지 싶다. 너무 젊어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셔, 아침나절 소설책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점심에 든든하게 밥을 먹어, 교양 수업 시간엔 휴식이 필요했다. 너무도 중요한 인생철학을 배우니 무의식에 차곡차곡 쟁여 넣으려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닌지..


그 시절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은 좁은 동아리실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물적 토대 구축을 통한 정신적 토대 공고라든가, 한국 사회구성체 특성이라든가, 변혁 운동의 핵심과제는 무엇인가를 죽자고 토론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선배들은 한 번 시작하면 세네 시간 열기를 뿜어냈으니 그 정열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80년대는 한국 민주주의가 광주 시민을 시작으로 전국 대학의 순수한 젊은 피를 먹고 성장하던 시기였고 학생들은 다가올 미래를 위해 사상논쟁을 하던 시절이었다. 매캐한 최류가스가 교정까지 장악하던 시절 난 삶에서 00주의, 00철학 등이 개인 삶에 실천되지 않으면 그건 '다 개소리(사기)란 생각'을 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독재를 휘두르는 전두환 정권과 권력자들을 보니 그리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교양 시간 배운 '고독을 입는 인간은 어느 때 자신의 실체를 정면으로 느낄까?' 했고, 선배들이 말하던 '반 발작 혹은 함께 걸어가는 전술은 나의 삶에서 어떻게 타자와 사용해야 될까?' 궁금했다. 그때 이 두 가지를 잘 결합하기만 하면 긴 결혼생활도 잘 살아 나가 지지 않을까 했고, 남편이란 존재가 생기면 반 발자국 앞에 선 전술로 슬기로운 부부생활을 달성해 보리라 생각했으니, 20대의 나는 젊고 겁 없이 귀여웠던 것 같다. 본아를 쉽게 꺼내놓을 수 있는 상태로 반 발자국만 나가 있는 나만의 전술 무기를 사용해보겠다 했으니... 참!


교양 시간 배운 철학과 선배의 가르침을 용케 잊지 않은 나는 29살에 결혼하며 슬기로운 부부생활 달성을 위해 부부 목욕 전술을 쓰기로 작정했다. 참으로 소박하고 쉬운, 지금 생각해봐도 탁월한 전술 채택이었다. 물과 인체가 자연스러운 접촉점을 형성하는, 그리하여 자신을 쉽게 드러내고 서로가 숨거나 외면할 수 없는, 작은 공간에서 헐벗은 남편의 반 발자국 앞에 선 부부 목욕 전술! 물리적 토대 구축을 통한 정치(서)적 토대 형성이란 말들이 난무하던 대학생활에서 배운 실천으로 참~ 실리적이다.


장성한 얘들이 나가니 우리 집 안방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탁월한 전술에 비해 기술은 별게 없고 효과는 참 좋다. 서로 등을 미는 목욕은 정말 일차원적 시간, 공간, 시각 공유다. 무슨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심지어 무슨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수도시설은 세계가 자랑하는 청정 물을 365일 값싸게 공급하니 거창한 뭔 시설이 필요치도 않고 심지어 도시가스 시설도 좋아 따스한 물을 값싸게 쓰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니니 목욕만큼 쉬운 일이 없다.


어느 부부나 힘든 시기가 있다. 정말 힘든 시기가 있다. 그러기에 부부는 힘든 시기를 함께 헤쳐나갈 일상적이며 쉬운 무기를 처음부터 만들어야 한다.


신혼 때부터 남편은 함께 목욕을 하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건 어디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미소가 아니다. 그러니 그 미소를 값싼 수도세와 함께 부부생활의 물적 토대로 깔기에 충분하지 않나? 남편은 아무리 피곤해도, 업무와 응급환자에 의해 지친 감정상태에서도 목욕을 하자면 1초도 마다하지 않고 그러자 한다. 밥상을 차려놓고 몇 번을 불러야 식탁에 오고, 커피를 내려놓고 마시자 해도 핸드폰에 넋 빠져있기 다반사인데 목욕을 하자면 벌떡 일어나 훌러덩 옷을 벗는다.


남편이라고 짜증이 없겠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남편도 내가 얄밉고 싫은 적이 없겠나? 남편이나 나나 서로를 보기도 싫은 날이 어찌 없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함께 목욕한다. 전술은 쉽게 바꾸는 게 아니다. 폐기되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말이다. 사랑의 기술을 구현할 첫 번째 전술을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없지 않겠나? 그런 인내로 어찌 '나를 사랑'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하다. 뇌가 말랑말랑 했던 대학 교양수업에서, 선배들의 술자리에서 듣고 배워 채득 한 철학과 실천의지는 정말 중요하다.


고3 아들이 코로나 19로 거의 넉 달을 집에 있는 동안 남편은 갑갑해했다. 어려서 꼼꼼하게 목욕하는 방법을 배운 아들은 한 시간 가까이 샤워를 했고 남편은 아들 눈치를 보며 목욕을 한다며 구시렁댔다. 저녁 운동 후 나는 일층에 있는 아들에게 "엄마, 아빠 목욕한다." 소리치고 목욕을 했다. 서로 시간이 겹치면 일층의 우선권으로 우린 찬물을 뒤집어쓰고 아들 목욕이 끝날 때까지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거나 찬물로 비누 거품만 대충 닦아내고 샤워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등교하니 남편은 세상 살만하단다.


고3 아들이 기숙학교로 가니 안방 침대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

5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남편은 요즘 샤워가 끝나면 물기를 대충 닦고 TV 앞에 앉아 스포츠를 관람한다.


아! 깜작이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포즈다. 아이들이 나간 집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들어와 앉다니. 눈이 즐겁고, 맘이 즐겁다. 프랑스 로뎅 박물관에서나 봄직한 나체를 이리 사사로이 즐기다니... 부부생활 만 25년간 쌓은 물리적 토대의 결과물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참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추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몸이 좋습니다.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남편 몸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좋을까요? 아닙니다. 남편이 '생각하는 사람' 포즈를 취한다는 의미 합니다. 물적 토대를 깔아 놓으니 물살인 남편이 물 흐르듯 자연스레 자신을 드러낸다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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