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세계 2:변증법 세계에 들어서서
매캐한 최루가스가 콧속을 간질던 대학 1학년! 교양 철학 수업 시간엔 내로라하는 철학자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태평이 앉아 존재, 인간, 신의 탄생에 대해 공부하던 때, 아이러니하게도 교정 입구에선 조각난 벽돌이 날고, 하늘로 치솟던 화염병들이 불꽃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뭐가 뭔지 싶었다. 서양철학사 교수님의 나긋한 강의 소리와 선배들의 구호 소리, 그리스의 신들이 거닐며 진리를 논할 것 같은 몽환적 수업내용과 펑펑 최루탄 발사 소리가 뒤엉켜 비키니 섬의 세 스핑크스(살바도르 달리:1947) 그림 같이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았다. 이상한데 이상하지 않던 그 모습은 대학 4년 내내 이어졌다.
졸며 듣던 수업인데도 헤겔의 정반합(正反合)은 알듯 모를 듯 뇌리에 남았고 선배들은 '먼저 배운 데로 민주화를 위해 한국사회의 모순(矛盾)과 대립을 지양(止揚)하고 고차(高次) 사회를 구현하고자 죽어라 싸우고' 있었다. 철학자들(헤겔과 마르크스)이 말한 대로 학생들의 투쟁은 피의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소기의 성과를 낼 것이란 태평한 생각을 했다. 설익은 배움 때문이었을까? 오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처절한 사진이 학생회관 로비에 가득 붙어있었어도 낙관적 실천주의가 가득 찼었다. 젊었다. 그때, 그 시절, 뭘 알고 뛰어다녔던, 그냥 휩쓸려 뛰어다녔던, 오가다 전경의 곤봉에 맞지 않으려 뛰었던, 날아오는 최루탄을 피해 뛰었던, 선배들을 따라 뛰었고, 막차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수업에 지각하지 않으려,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 죽어라 뛰어다녔다. 나는 운동화만 신고 다녀 운동권 학생이었다. 시장표 운동화를 신고 4년 내내 화염병과 벽돌 잔해를 피해 뛰어다녔다.
대학 2학년 때 넓은 잔디밭을 성큼성큼 걸어 지나갈 때 남자, 사람, 친구가 큰 소리로 날 불렀다. 후배들과 동문 모임을 하고 있던 남편 선배는 "시간 되면 막걸리 한잔 따라주고 가라." 했다. 그게 뭐 어렵겠는가? 물이 잔뜩 오른 초록 잔디밭 광장 한가운데 동그랗게 앉아 넙죽 막걸리를 받던 새내기 중 하나가 지금의 남편이었다. 눈이 빛나고, 눈썹이 짙으며, 붉은 입술에 선이 강한 남편을 보곤 '참 깔끔하고 귀엽게 생겼다.' 생각했었다. 술 한잔 따라주고 '의미 있는 대학 생활하세요.' 하곤 난 도서관으로 갔었다. 그게 첫 만남이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운동화 색은 짙어졌다. 뛸 일이 많았다. 87년! 봄학기의 시작과 함께 학생들은 온 곳을 뛰어다녔다. 선배들도 뛰고, 동기들도 뛰고, 독서모임을 하던 친구들도, 심지어 갓 들어온 새내기들도 무얼 아느지 모르는지 뛰어다녔다. 전국의 학생들이 체력훈련에 들어간 듯 수업거부를 하네, 시험거부를 하네 하며, 늦가을 햇볕에 말려논 꽁 깎지를 타작하면 꽁알이 사방으로 튀듯 학교 교정에서, 시내 한복판에서 구호를 외치고 뛰어다녔다. 한 한기 내내 뜀박질을 하던 그 시절 나와 남편은 서로 다른 사람들과 뛰어다녔었다.
마르크스는 그의 대표 저서인 자본론(대표적 불온서적으로 학생회실의 책꽂이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책)에서 "역사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은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물질에 토대한 생산양식"이라 지적했지만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마치 우리들의 뜀박질같이 느껴졌다. 선배들과 친구들과 잘 뛰어다니기만 했는데 629 선언이 발표됐다. 대중의 달음박질이, 대중의 함성이, 대중의 연대가 역사를 바꾸다니! '아 헤겔이던 마르크스던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했다. '정말 새로운 사회는 물질적 생산양식을 기반한 인간의 의식적 집결과 행동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구나!' 했다. 독재권력과 민주 권력의 충돌, 이윤 독식과 소득분배 요구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대 우린 끈질긴 투쟁으로 현실 문제의 지양을, 고차 사회에 이르는 과정을, 전 국민이 함께 경험했으니, 시작도 변증(辯證), 다시 돌아도 변증(辯證) 임을 배웠다.
초록 잔디밭 광장에서 만난 남편과 나는 그때부터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자식을 둘 낳아 가족 구성원을 늘렸고, 물적 토대가 바뀌었고, 부모님이 늙었으며, 다양한 직장생활로 다양한 인간관계를 거쳤으니, 우린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해갈 존재라는 사실만 남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사실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2001년 '봄날은 간다.'는 영화를 보고 남편은 혀를 찼다. 배우 유지태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하며 슬픔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배우 이영애를 보니 이영애는 사랑이 사라진 사막 같은 눈으로 유지태를 보는 장면은 사랑이 관념, 추상이 아닌 그 자체로 살아움직이는 현실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 하며 날 바라봤고, 나는 "그렇지 사람이 변하는데, 물적 토대가 변했는데, 어떻게 사랑이 변하지 않을 수 있어?" 하며 맞장구를 쳤다. 남편의 변증적 사고와 자세가 좋았다.
변치 않는 사랑, 변치 않는 관계는 참 슬픈 일이고 힘든 일이다. 변치 않는 사랑은 죽음이거나 죽기 직전까지 죽도록 서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신의와 사랑과 존경으로 배우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남편, 아내가 사랑을 위해 늘 새롭게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하겠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지치고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닌 사랑을 위한 변화의 첫발이며 서로 변화하겠다는 그지없는 맹세일 뿐인데, 영원한 사랑을 선언하는 수많은 동화와 눈먼 문화교육은 우리를 엄청난 착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여 우리를 결혼 후 쉽게 눈먼 암살자(마거릿 애트우드: 2000년 장편 역사 소설)가 되도록 하는 게 아닌가 한다.
몇 년 전 겨울, 저녁 회의 후 친한 동료 교수 몇 명과 늦은 밤 우리 집 근처 맥주집에서 술을 마셨다. 사는 얘기를 두어 시간 한 후 젊은 동료 교수 한 분이 대리운전기사님을 기다려야 해 잠시 집에 들러 차 한잔을 마신 일이 있다. 집에 있던 남편은 정성 들여 차를 내주었다. 동료 교수는 차를 마시며 자신의 고민을 남편에게 짧게 말하곤 대리기사와 집으로 갔다. 동료 교수는 취기와 찬 겨울바람 탓에 사랑이 식은 듯 변해버린 아내의 냉랭한 태도와 권태로운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고 남편은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동료 교수가 간 후 남편은 내게 말했다. "결혼할 때의 그 여자는 없지, 지금의 와이프는 결혼할 당시의 그 여자가 아닌 것을, 이제는 다른 여자인데, 현재를 안 보고, 자신이 사랑한 과거의 여자를 생각하는 거지"했다. 참 맞는 말이다.
몇 주 후 회의에서 만난 동료 교수에게 남편 말을 전하니 그 교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했다. 내가 웃으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여 새로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하곤, "남편이 그리 의기양양하게 말해서 제가 한마디 덧붙였어요. 그거 알아?, 나도 당신이 결혼한 그 여자가 아니야, 그니까 똑바로 봐! 했더니, 남편은 아닌 밤에 홍두깨를 본 것처럼 동그랗게 눈을 뜨곤 당황하더라고요." 동료 교수는 크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자 했다. 참~. 그게 좋은 일인가는 모르겠지만 손을 부딪혀 주었다.
동료 교수가 방문하고 간 날, 남편은 놀란 토끼눈을 하곤 늦은 밤 멍하니 날 바라보다 웃었다. "나야 늘 당신을 한결 같이 사랑하지." 하며 그 흔한 레퍼토리를 읊었다. 나는 그 흔한 레퍼토리를 한 번도 믿은 적이 없다. "봄날은 가고, 당신이 사랑한 그 여자도 가고 없어." 했다. 남편은 웃으며 "그렇지 당신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듯, 별이 뜨고, 달이 기울듯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해서 우린 가까운 사람일수록 동일시와 변치 않는 사랑을 말하는가 보다. 모든 게 너무 변화하니 그 가운데 나만을 사랑하는 남편, 아내, 자식, 가족을 소유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람과 현실을 혼동하면 슬프게도 행동은 무례하고, 상대의 마음을 쉽게 다치게 하니 참 힘든 일이다.
우린 늘 자신을 다 안다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을 잘 모르고, 불만족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쉽게 타인의 행동으로 탓하며, 친밀한 가족에게 저도 모르게 화살을 쏘며 그것이 화살인 줄 모르니 말이다. 허긴 자신에게 화살을 쏘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인생 참 짧은데 결혼생활은 참 길다. 만 25년을 산 결혼생활 참 길다 생각하면서도 아이들 성장을 빼니 짧기 그지없다. 우리 가족 모두가 자라고, 변화했고 남편이 그중 가장 많이 변했다.
남편은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순한 사람이었고 가사노동은 남의 일로 여기고 공부만 했던 청년이었다. 남편 스스로 말하길 본인은 농구를 잘했고, 운동을 좋아했으며, 잡다한 일도 많이 했다 하는데 그걸 어찌 믿겠는가? 나는 말을 덥석 믿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배운 데로 내가 본 것과 경험한 것만 믿는다. 남편은 덮고 자는 이불도 어머니가 새벽마다 챙겨줬으니 그 고운 손은 뭘 한 건지, 일 좀 했다는 남편 말을 믿을 수가 있는가 말이다.
결혼해 시댁에 가니 시어머니는 남편이 부엌 근처도 못 오게 방어막을 쳤다. 첫애 임신 7개월 때 추석 음식을 하고 식탁을 차려 밥을 먹은 후, 남편이 하루 종일 앉아 놀고 있다 설거지를 하려 일어나니 "남자가 부엌에 왜 들어오냐!" 시어머니가 면박을 줬다. 남편은 귀가 빨개지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순한 남편은 엄마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총총 거실로 나갔었다. 설거지 후 포도와 사과를 깎아 차를 내가니 남편 눈에는 미안함과 슬픔이 차 있었다. 엄마에게 말대꾸 한번 하지 않고 순종하며 지낸 착한 남편은 둘째가 태어나자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했다. 어머니의 잔소리도 아랑곳 않고, 음식 장만을 돕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남편은 의지는 있으되 집안일은 잘 못했다. 설거지를 하면 잔뜩 물을 사방에 튀기고 여기저기 고춧가루를 남겨 한 10년은 내가 웃으며 "정말 고마운데 프로근성이 10% 부족해요." 했다. 결혼 15년 즈음 몸살감기로 콩나물 국을 끓여달라 하니 요란하게 국은 끓였으되 먹을 음식이 못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때 마음이 참 섭섭했다.
결혼 전까지 설거지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고, 국을 끓여본 적도, 식탁을 자신이 주도적으로 차려본 적이 없었던 남편이 성의를 다했다 생각했지만 결혼해 15년을 산 사람이 국하나 끓이지 못한다는 현실이 슬펐다. 그렇게 보수적인 친정아버지도 국을 끓일 줄 알았고, 80 연세에도 엄마가 아플 땐 된장국, 김칫국을 맛나게 끓였으니 말이다.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 만 25년이 된 지금, 남편은 기가 막히게 맛있는 미역국을 끓인다. 고깃국물을 내고 미역을 불려 참기름에 볶아 간을 맞춰 끓이고, 설거지를 한다. 그냥 설거지를 한다 수준이 아니다. 사방에 물을 튀기고 개수대에 고춧가루가 이곳저곳 묻어있어도 "설거지 끝~" 하곤 쌩 들어가던 남편이 개수대가 반짝반짝 윤이 나게 잘 닦고 음식물 분리수거를 꼼꼼히 한다.
빨래를 각 지게 접어본 적도 없고, 땅을 파 나무를 심어 본적도, 농약을 쳐본 적도 없던 남편이었다.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대충 접어 개념 없이 서랍장에 넣던 옷들을 각 접어 서랍에 일렬종대를 세우고, 이제는 옷 많은 내 서랍장을 타박하려 든다. 잡석을 깔자던 작은 정원에 퍽퍽 삽질을 해서 나무를 심고, 자리가 좁아진 정원수들을 재 배치하고, 사시사철 창궐하는 벌레와 곰팡이를 살펴보곤 인터넷 정보를 죄다 찾아 약을 친다.
집을 짓고 처음 맞이하는 봄에 대청소를 하자 내가 나서니, "깨끗한데 뭔 청소냐."며 햇볕 좋은 봄날, 호수를 들고 집 청소하는 나를, 의자에 앉아 쳐다만 보던 남편이, 3년이 되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올봄! 주택 외벽과 거실 창문, 폴딩도어 청소를 시작하니 남편은 척 나서서 긴 장태에 거품을 가득 묻혀 높은 이층의 유리창도 쓱싹쓱싹 밀며 있는 힘, 없는 근육 쓰며 땀을 뚝뚝 흘리며 웃는다. 거품 뭍은 유리창에 시원하게 물을 뿌리며 남편의 장대 잡은 팔의 이두박근, 삼두박근을 바라보니 섹시하기 그지없다. 그 잠자던 근육들이 내게 불끈불끈 말을 거니 말이다. 어디서 그리 쉬이 50대 중년 남자의 팔뚝을 봄날에 넋 놓고 구경하겠는가?
샌님 같던 남편! 50대 중반 장년의 섹시함을 갖추다니! 참 좋다. 남편은 알까? 여름, 가을 사방에 집을 튼 거미줄을 긴 장대로 휘휘 쳐내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땀을 뚝뚝 흘리며 삽질을 하곤 무거운 나무를 번쩍 들어 옮기는 모습은 완숙한 장년의 아름다움임을 선사하고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우린 모두 변한다. 살아가는 형태도, 우리 몸의 세포도, 단단한 뼈로 감싸인 뇌세포도 끝없이 변화하며 우리를 만든다. 가끔 농담으로 남편을 보곤 말한다. 이제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멋진 남자가 됐다고 말이다. 20대 죽어라 운동화를 신고 함께 콩알처럼 뛰며 역사 변화의 현장에 있었던 우리는 변화를 관통하는 삶을 살며 죽어라 변하고 있다. 아이들이 다 성장하여 나간 요즘 진짜 결혼생활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어떤 제약도 없이 서로 변해갈 일만, 변할 수 있는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둘만 남겨진 우리 삶에 진정 변할 것이라곤 우리밖에 없으니 그 끝이 참 궁금하다. 유물사관적 변증(唯物史觀的 辯證)에 의거하여 철저히 살아갈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